[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안식일의 주인 (마태12,1-8)

2020. 7. 17. 오전 5:18:23

글자


2020717일 금요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안식일의 주인 (마태12,1-8)

1독서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이사38,1-6.21-22.7-8)

1 그 무렵 히즈키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2 그러자 히즈키야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말씀드렸다.

3 “,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히즈키야는 슬피 통곡하였다.

4 주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내렸다.

5 “가서 히즈키야에게 말하여라. ‘너의 조상 다윗의 하느님인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6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서 너와 이 도성을 구해 내고 이 도성을 보호해 주겠다.’”

21 이사야가 무화과 과자를 가져다가 종기 위에 발라 드리면, 임금님께서 나으실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22 히즈키야가 내가 주님의 집에 오를 수 있다는 표징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7 “이것은 주님이 말한 일을 그대로 이룬다는 표징으로서, 주님이 너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8 보라, 지는 해를 따라 내려갔던 아하즈의 해시계의 그림자를 내가 열 칸 뒤로 돌리겠다.” 그러자 아하즈의 해시계 위에 드리워졌던 해가 열 칸 뒤로 돌아갔다.


화답송 이사 38,10.11.12ㄱㄴㄷㄹ.16(17참조)

주님은 멸망의 구렁에서 제 목숨 건져 주셨나이다.

나는 생각하였네. “한창 나이에 나는 떠나는구나. 저승문으로 불려 가, 남은 햇수를 지내야 하는구나.”

나는 또 생각하였네.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을 뵙지 못하고, 이제는 이 세상 사람 아무도 못 보겠구나.”

양치기 천막처럼 뽑혀, 나의 거처 치워졌네. 나는 베를 짜듯 나의 삶을 엮는데, 그분은 베틀에서 나를 잘라 버리셨네.

주님, 저는 당신만을 바라오니, 제 목숨 구해 주소서. 저를 고쳐 주소서. 저를 살려 주소서.


복음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12,1-8)

1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5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제1독서(이사38,1-6.21-22.7-8)


그 무렵 히즈키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러자 히즈키야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말씀드렸다. ",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히즈키야는 슬피 통곡하였다. 주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내렸다. "가서 히즈키야에게 말하여라. '너의 조상 다윗의 하느님인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자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1~5)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네 집을 정리하라' 혹은 '너는 너의 집을 위하여 명령하라'로 번역한 '차우 레베테카'(tsau lebetheka)에서 '차우'(tzau)의 원형 '차와'(tsawa)는 명령을 내리거나 정돈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그리고 '네 집'에 해당하는 '레베테카'(lebetheka)의 원형 '빠아트'(baath)'가정', '가문', '왕조','국가' 라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의 표현은 히즈키야가 자신의 집에 관한 모든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정해 주는 것은 물론, 자신의 왕궁 안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한 지시 사항을 자기 신하들을 통해 정리하는 등, 왕으로서 마지막 해야 할 일을 다 하라는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그의 사후 왕위 계승 쟁탈전이 벌어지지 않도록 후계자를 정해 놓으라는 의미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자신의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의 문제와 제반 문제들을 아직 정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히즈키야가 지금까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그런 측면에서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 본문의 명령은 그에게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임에 틀림없다.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원문은 본문이 이유 접속사 ''(ki)로 시작하고 있으며, 이것은 왜 히즈키야가 자신의 집을 정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임을 나타낸다.

본문은 히즈키야의 죽음을 긍정문과 부정문을 사용하여 강조해서 표현할 뿐만 아니라 강한 부정의 의미를 가진 부정어 ''(lo)와 미완료 형태의 동사를 사용하여 반드시 죽을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강조적, 확정적 의미를 지닌 예언은 히즈키야에게 절망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간절한 기도를 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생명을 연장받게 된다(9).

이같은 사실은 본서 전체의 예언을 닫혀진 미래의 일로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하느님 대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제시하는 말씀으로 보아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자 히즈키야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말씀드렸다'(2)


앞선 1절은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이사야 예언자가 히즈키야에게 가서 죽음을 예고하고 유언을 권면한 내용이었다이제 2절과 3절은 이러한 말씀을 전해들은 히즈키야가 하느님을 향해서 진심으로 기도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내용의 본절에서 사용된 두 동사는 계속적 '와우'(wau)가 사용되어 예언자로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기도에 전념하였음을 보여준다.


히즈키야는 죽음이 선고된 순간 절망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 주 하느님께 간구하였다.

사실 이 당시 히즈키야는 39세의 젊은 나이였으며, 그의 왕위를 이을 므나쎄가 42세에 태어났으므로(2열왕21,1), 그에게는 후계자가 될 직계 자식도 없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국가는 아시리아의 침공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이러한 모든 상황 역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게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자신을 죽음을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께 매달렸다.


한편, 히즈키야의 기도의 자세는 매우 독특하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하였다.

'쪽으로 돌리고'에 해당하는 '와이얏세브'(waiyasseb)는 계속적 '와우'(wau)'돌이키다'(turn)라는 의미를 가진 '싸바브'(sabab)의 사역형이 결합한 형태이다.


히즈키야의 즉각적이고도 강한 의지를 보여 주는 이 표현은 ''이란 단어와 함께 사용되어 이전의 불신앙적 태도에서 완전히 돌이켜 온전히 주 하느님만을 의지하였음을 형상화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다시 말해서 '벽쪽으로 돌리고'란 표현은 히즈키야가 모든 세상적 방법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끊고 오직 하느님께 전적으로 매달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도 보았다'


같은 뜻의 대구로 되어 있는 본문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전지하신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다 보고 계시며, 모든 사람의 말을 다 듣고 계신다.


본문의 '들었고''보았다'는 이러한 의미에서 듣고 보고 계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여기서 '네 기도들''네 눈물을'에 해당하는 표현 각각에 사용된 2인칭 접미어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중에서 구별하여, 히즈키야 개인에 대해 가지신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과 애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 해 주겠다'

 

', 내가'로 번역된 '히느니'(hinni)는 문자적으로 '보라, 내가'(behold I)라는 의미이다이것은 이어 전개되는 말씀들이 놀라운 것이며 매우 중요한 것으로 주의깊에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죽음을 목전에 둔 히즈키야의 즉각적인 회복은 기적적인 일이며 국가의 운명과도 관련된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그리고 '너의 수명에다 열 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너의 날들 위에 15년을 추가할 것이다'이다.

이런 표현은 히즈키야의 정해진 날이 끝났으나 하느님의 은혜로 15년을 더 살게 되었음을 나타낸다즉 아무런 소망이 없던 히즈키야가 제2의 인생을 살게 하셨음을 보여준다.


한편, 열왕기 하권 205절에는 '이제 내가 너를 치유해 주겠다. 사흘 안에 너는 주님의 집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라는 예언이 본문의 내용 바로 앞에 있다이것은 이사야가 히즈키야에게 치유의 말씀을 전한 날로부터 3일안에 그 병이 기적적으로 완전히 치유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복음(마태12,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6)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제가 성전에서 일을 하는 것에는 안식일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예를 구약 성경(민수28,8.9)을 근거로 해서 드신 다음에 마태오 복음 126절의 의미심장한 말을 하신다.


'더 큰 이가'에 해당하는 '메이존'(meizon; one greater)''(large), '위대한'(great)이란 뜻을 지닌 '메가스'(megas)의 비교급 중성 단수로 번역되는데, 그 뜻은 어떤 뜻일까?


어떤 학자는 성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어떤 일이라고 해석했고, 어떤 학자는 마태오 복음 127절의 제사보다는 자비를 더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해석했으며, 어떤 학자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모두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과 임재라고 해석했다.


어떤 해석을 취하든, 여기서 성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안식일의 규정도 예외로 할 수 있는데, 하물며 그러한 성전보다 크고 위대한 어떤 것, 즉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바로 그것을, 사람의 자유를 구속하는 안식일의 인위적인 유전이나 전통으로 어찌 단죄할 수 있는가라는 뜻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죄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7~8)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라는 말씀은 호세아서 6장 6절의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에서 인용한 것이다여기서 '자비'로 번역된 '엘레오스'(eleos)는 불쌍한 자와 고통받는 자를 향하여 그들을 구제하고자 원하는 호의나 친절을 말한다.


사실 안식일 규정도 안식일 그 자체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노예살이를 하며 진정한 안식을 누리지 못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과거를 기억하게 하여(신명5,15)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들이 쉬게 해주지 않으면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계속 일만 해야 하는 남녀 종을 비롯하여 소나 나귀모든 집짐승이방인 나그네 등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일주일 중에 하루를 쉬게 하는 규정을 주신 것이다(신명5,14).

안식년과 희년의 규정도 이처럼 말 못하는 땅과 종들의 노고를 풀어주고그 해만큼은 자유롭게 쉬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레위25,1~22).


하느님께서는 안식일의 규정을 안식일 그 자체를 위해 제정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포함한 당신의 사랑하시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제정하신 것이다.

그런데도 유대 율법학자들은 율법에도 없는 안식일 금지 사항을 39가지나 만들어 사람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피곤하게 했는데이것은 안식일 제정에 대한 하느님의 원래 의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더욱이 지금 제자들이 배가 몹시 고픈 상태에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바리사이들이 안식일에 대한 하느님의 깊으신 뜻을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제자들의 행위를 범법행위로 비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태오 복음 12장 1절에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동행하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라고 나오는데여기서 '뜯어'로 번역된 '틸레인'(tillein; to pluck)의 원형 '틸로'(tillo)는 손으로 곡물의 이삭 따위를 따거나 뜯는 것을 말한다.

제자들은 낫이나 주머니칼과 같은 도구로 많은 이삭을 자르지 않고다만 소량의 이삭을 손으로 찍접 따서 먹었던 것이다.


신명기 23장 25~26절에 의하면극빈자를 위해서는 이런 것은 허용하고 있다.

"너희가 이웃의 포도밭에 들어갈 경우원하는 만큼 배불리 포도를 먹을 수는 있지만 그릇에 담아서는 안 된다너희는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경우손으로 이삭을 자를 수는 있지만 이웃의 곡식에 낫을 대서는 안 된다."(신명23, 25~26)

그러니까 타인의 곡식밭에 들어가서 이같은 방법으로 곡물의 이삭을 따먹는 행위는 절도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모세 율법이 금하는 것은 낫을 사용하여 대량으로 베어가는 행위였다제자들의 행위는 법적으로 하자가 없었던 것이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라'(탈출20,8)로 규정되어 있고, '너희는 엿새 동안 일하고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밭갈이하는 철에도 거둠질하는 철에도 쉬어야 한다'(탈출34,21)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손으로 이삭을 따먹는 사소한 행위는 노동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율법학자들은 모세의 율법을 자기 식대로 해석함으로써 지나치게 세분화해서 안식일에는 39가지나 되는 노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이 규정에 의하면 손으로 이삭을 자르는 행위는 추수 금지 명령을 위반하는 것이고손으로 비빈 행위는 타작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이며이삭 껍데기를 입으로 부는 행위는 키질 금지 규정을 위반한 행위로 간주했다.

이처럼 인위적으로 만든 전통을 이어받아 이것을 절대 진리로 생각하고 이것을 고수했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위를 안식일 규정의 위반으로 보고예수님을 책잡을 수 있는 호기로 삼았던 것이다.


한편레위기 23장 3절에 의하면안식일은 주님께 속한 것이라고 했듯이 예수님께서는 그 안식일의 소유권을 메시야이신 당신에게 귀속시키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권한을 월권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人子)이 안식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잘못 해석하여 사람들에게 무의미한 형식적 안식일 규정으로 무거운 짐을 지우는 바리사이인들에게 올바른 권위로 책망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과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 2장 27절에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이것은 인위적인 안식일 규정으로써 주객을 전도시켜 오로지 인간을 억압하는 유대교의 형식주의에 대한 엄중한 비판이다.

하지만 여기 본문에서 이러한 내용이 생략되어 있는 것은 안식일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밝혀서예수님께서 안식일 규정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메시야이시며 바로 하느님 되심을 강조하기 위한 마태오 복음사가의 의도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17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 안식의 예수님 >

(마태12,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해서는 안되는 일이 아니라 해야 되는 일이다안식일에 그 밀빹에서 그 밀을 반듯이 먹어야 하는 것,

밀 이삭열매곧 그 밀(베들레헴)빵으로 그리고 구유(죄인들의 먹이)에 오신 예수님,

다시 죄인들의 밀 양식으로 오신 예수님을 생명의 양식(말씀)으로 깨닫도록 배워그 깨달음 그 열매를 먹어야 되는 것이 안식일에 신앙인이 마땅히 해야 할일인 것이다.

그래서 3절 이하에서 그 뜻을 깨닫도록 설명하시는 것.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5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성전의 제단제물등불 등 모든 것들은 메시아를 뜻하고 말하고 있다그 성전은 곧 예수님이시다(요한2,21)

그 예수님(성전)안에서는 죄가 없다그분의 대속으로 모든 율법의 죗값을 다 치루셨기에~~

 

(2코린5,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얻는 용서생명구원은 창세전에 이미 약속되어 있었던 것.(에페1,4 히브4,3 2디모1,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율법의 성전보다 더 큰이라 하신 것율법의 모든 조항도 예수님을 품고 있는 것이지요.

 

(루가24,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요한5,39-40)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바로 그 성경(율법)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 독서에 히즈키아는 자신의 수명에서 열다섯 해를 더 받았지만(이사38,5) 그 또한 끝나버릴곧 영원한 생명이 아니기에~

 

(이사38,22) 히즈키야가 내가 주님의 집에 오를 수 있다는 표징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이사야서 38장의 결론곧 히즈키아의 영생의 질문으로 끝나는 것,

안식일에 영원한 생명이신 그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진리로 먹지 못하고 그저 주일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 그 발바닥 신앙이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제사)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사를 열심히 드리는 그 행위가 아니라제사 안에 들어있는 십자가의 대속그 자비를 깨닫는다면그 십자가로 율법의 법이 완성되었음을그래서 그 율법의 윤리로 사람들을 판단하는 그 죄를 범하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신 것.

(하마뜨리아)란 과녁을 빗나간 것곧 하느님의 뜻 대속의 십자가의 길이 아닌 사람의 뜻계명법의 길을 구원의 진리로 가는 것이 죄인 것이다.(티토1,14참조)

 

(요한16,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일은 농부이신 하느님께서 하시고 그 창조 마지막 날에 사람을 지으신 후미리 준비해 놓으신 그 모든 창조물을 누리도록곧 안식을 누리도록 주셨듯이 말입니다그러니까 하느님의 창조물 안에 들어있는 구원의 약속을 배워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로마1,20참조피조물들의 행위그 어떤 일이 필요 없는 것(루가10,38~42 참조)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얻는 용서그 안식그 복음을 구원(생명)의 길진리의 빵()으로 먹는 것 뿐.

어린아이가 부모가 주는 양식만을 받아먹듯 말이다하느님나라는 그 어린이가 들어가는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우리 모두 열심히 받아먹는 신앙을 삽시다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요나 예언자의 표징 (마태12,38-42)20.07.20조회 57[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예언을 이루시려고 (마태12,14-21)20.07.18조회 55[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안식일의 주인 (마태12,1-8)20.07.17조회 63[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무거운 짐 진 자 (마태 11,28-30)20.07.16조회 59[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철부지들 (마태11,25-27)20.07.15조회 41[연중 제15주간 화요일]<심판 날에는>(마태11,20-24)20.07.14조회 54[연중 제15주간 월요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마태10,34─11,1)20.07.13조회 66[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증언 (마태10,24-33)20.07.11조회 68[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아버지의 영 (마태10,16-23)20.07.10조회 65[연중 제14주간 목요일] 거저 주어라 (마태 10,7-15)20.07.09조회 69[연중 제14주간 수요일]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마태 10,1-7)20.07.08조회 58[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일꾼은 적다.> (마태 9,32-38)20.07.07조회 51[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마태 9,18-26)20.07.06조회 42[연중 제13주간 토요일] 단식 (마태 9,14-17)20.07.04조회 42[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하느님! (요한 20,24-29)20.07.03조회 53[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중풍 병자 치유 (마태9,1-8)20.07.02조회 54[연중 제13주간 수요일] 마귀 들린 사람 (마태 8,28-34)20.07.01조회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