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일꾼은 적다.> (마태 9,32-38)

2020. 7. 7. 오전 5: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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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7일 화요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일꾼은 적다.> (마태 9,32-38)

   

1독서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호세 8,4-7.11-1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4 임금들을 세웠지만 나와는 상관없고 대신들을 뽑았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들은 은과 금으로 신상들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망하려고 한 짓일 뿐이다.

5 사마리아야, 네 송아지를 내던져 버려라. 내 분노가 그들을 향해 타오른다. 그들이 언제면 죄를 벗을 수 있을까?

6 송아지 신상은 이스라엘에서 나온 것 대장장이가 만든 것일 뿐 결코 하느님이 아니다. 정녕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조각이 나리라.

7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줄기에 이삭이 패지 못하니 알곡이 생길 리 없다. 알곡이 생긴다 하여도 낯선 자들이 그것을 집어삼켜 버리리라.

11 에프라임이 제단들을 많이도 만들었지만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요 그 제단들은 죄짓는 제단일 뿐이다.

12 내가 그들에게 나의 가르침을 많이 써 주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낯선 것으로만 여겼다.

13 그들은 희생 제물을 좋아하여 그것을 바치고 그 고기를 먹지만 주님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제 주님은 그들의 잘못을 기억하고 그들의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야 하리라.”


화답송 시편 115(113 ),3-4.5-6.7ㄱㄴ8.9-10(9)

이스라엘아, 주님을 신뢰하여라!

우리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며, 뜻하시는 모든 것 다 이루셨네. 저들의 우상은 은과 금, 사람 손이 만든 것이라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네.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네. 만든 자도 믿는 자도, 모두 그것들 같다네.

이스라엘아,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님은 도움이며 방패이시다. 아론의 집안아,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님은 도움이며 방패이시다.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마태 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제1독서 (호세8,4-7.11-13)


"사마리아야, 네 송아지를 내던져 버려라. 내 분노가 그들을 향해 타오른다. 그들이 언제면 죄를 벗을 수 있을까? 송아지 신상은 이스라엘에서 나온 것, 대장장이가 만든 것일 뿐, 결코 하느님이 아니다. 정녕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조각이 나리라.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8,5~7)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우상을 두번씩이나 '그것'(it) 이라는 의미의 대명사 ''(hu)로 칭하신다.

우리 가톨릭 새 성경은 '그들'이라고 번역했으니 느낌상 너무나 들어 높인 잘못된 번역이라 생각된다.


주님께서 송아지 우상을 '그것'(it)이라고 부른 것은 당시 이스라엘이 그것을 인격적 존재로 신적 권능을 지닌 것으로 여긴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지적하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즉 그것은 인격적 존재도 아니며 신적 존재는 더더욱 아니고 인격이 아예 없는, 생명 없는 물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바로 '그것'이라는 대명사를 반복 사용하여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것이 '대장장이가 만든 것일 뿐'(6)이라는 표현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우상이나 조각품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기술자가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그들은 주님의 명령을 받아 만든 것이 아니라 북부 이스라엘의 창건자 예로보암 1세의 지시로 만들었다.


예로보암 1세는 북부 이스라엘 백성이 남부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 희생 제물을 바치러 올라갔다가 남부 유다 임금에게로 마음이 돌아설까봐 북부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킬 축제일을 새로 정하고, 베텔과 단에 성소를 새로이 세운다(1열왕12,25~33).

그러고 나서 성소 두 곳에 금송아지를 하나씩 세워 둔다.


본문에 '이스라엘에서 나온 것'(6)이라는 진술에서 이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

이처럼 사람이 고안하고 사람이 명을 내려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그것이 신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에 신성을 부여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다.


본문에서 '참된 신'에 해당하는 '엘로힘'(elohim)'하느님'을 지칭하는 장엄 복수형 표현으로 전능하신 하느님 자신을 지칭한다(창세1,1).

그 우상이 '하느님'이 아니라는 진술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금송아지 우상을 '하느님'으로 생각했거나 '하느님'과 대등한 어떤 신적 존재로 인정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임금의 정책을 지지하고자 그처럼 거짓된 주장을 사실처럼 왜곡시키는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정녕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조각이 나리라'(6)


'정녕'으로 번역된 ''(ki)는 많은 경우 이유 접속사로 사용되지만 문맥에 따라 이어지는 문장을 강조하는 부사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본문에서도 바로 이러한 용례로 사용되어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산산조각 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반드시 그같은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이 바로 이 ''(ki)라는 부사를 통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산산조각이 나리라'에 해당하는 '셰바빔 이흐예'(shebabim yihye)는 번역 그대로 그 우상이 박살나버릴 것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생명 없는 우상이 맞이할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그러한 사실을 모른 채 오래 동안 헛된 망상을 쫓아 스스로의 멸망을 재촉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장차 필연적으로 박살나버리고 말 것을 참 하느님으로 착각하면서 하느님처럼 떠받들며 살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그것이 무참하게 파멸될 때마다 비로소 그것이 믿고 의지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을 것이지만, 그때의 상황은 결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늦은 것이 되고 만다.


'그들은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7)


본문은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바람'이란 이미지를 사용하여 부각시킨다. 그들은 '바람'을 심고 '회오리바람'(광풍)을 거두는 자들로 소개된다.

즉 여기서는 씨 뿌림과 수확의 원리가 나타난다. 봄에 씨앗을 뿌리면 가을에 수확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정하신 자연의 이치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경우 '바람'을 심는다고 진술된다. 여기서 '바람'은 비유적으로 '공허함','덧없음','허망함'등을 의미한다.

즉 이스라엘이 바람을 심는다는 말은 그들이 열과 성을 다해 하는 모든 일들이 허망하고 공허한 일들 밖에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들의 우상 숭배와 그들의 간음과 탐욕 등은 아무 결실도 맺을 수 없는 공허하고 덧없는 것들일 뿐이다.

사마리아의 우상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나 국제 관계 속에서 아시리아나 이집트 등에 의존하는 것은 공허한 행위일 뿐이다.


'회오리바람'에 해당하는 '쑤파타'(suphatha)는 매서운 폭풍이나 거친 회오리바람, 광풍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본문에서는 하느님의 무서운 심판을 상징하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자주 죄인들에 대한 의로우신 하느님의 진노의 심판을 상징하는 용법으로 사용된다(시편83,16; 잠언1,27; 이사66,15; 나흠1,3).


주님께서 준엄한 심판으로 산산조각 내리라고 하신 우상들은 바로 우리 인생의 궁극 궁적이신 하느님의 자리에 살아가는 방편이요 수단인 돈, 권력, 쾌락, 지식, 명성등을 올려 놓는 것이다.

바로 목적과 수단의 가치 전도 및 자리바꿈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른 자리, 제자리를 찾지 않고, 우리 마음을 하느님 아닌 것에 두게 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주인으로 도무지 역사(役事)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복음(마태9,32~38)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3~34)


'말못하는 이'에 해당하는 '코포스'(kophos; dumb)'둔한', '무딘'이라는 뜻을 지니며, '벙어리'(마르9,25; 루카11,14) 뿐 아니라 '귀머거리'(마태11,5; 루카7,22)도 가리킨다.

여기서도 귀먹고 말못하는 복합 장애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본 적이 없다'에서 ''에 해당하는 '에파네'(ephane; it was seen; has been seen)'보다'라는 뜻의 '파이노'(phaino)3인칭 단수 직설법 과거 수동형이다.

그래서 직역하면 '이스라엘에서 이런 일이 보여진 때가 없었다'이다. 희랍어 성경에서 수동형이 사용될 때, 행동의 주체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행위로 볼 때가 있다.


여기서 '에파네'(ephane)도 수동태로서, 마귀를 쫓아내고 벙어리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기적은, 하느님께서 예수님 이전에는 일어나도록 하신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런 일은 이사야 예언자가 이사야서 355, 6절에서 오실 메시야께서 행하실 일에 대해서 예언한 내용과 같다.


한편, 앞절에서 '군중'에 해당하는 '호이 오클로이'(hoi ochloi; the multitudes; the crowd)가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 경이롭게 생각하고 놀라움을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마태오 복음 934절의 '바리사이들'에 해당하는 '호이 파리사이오이'(hoi pharisaioi; the pharisees)가 오히려 예수님을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마태10,25)의 힘을 빌리기 위해 그와 접촉하는 자로 모함한 사실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자체에 대해 반박할 수 가 없게 되자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의 원천에 대해서 비방한 것이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 '눈먼 두 사람'( 마태9,31)이나 '군중'(마태9,33)과는 전혀 상반된 반응을 보인 이러한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마태오 복음사가는 '믿음'이란 객관적 사실에 대한 경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자각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마태오 복음 81절부터 시작되어 마태오 복음934절로 마무리되는,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드러낸 9가지 기사에 대한 바리사이들로 대변되는 이스라엘의 종교 기득권자들의 반응을 총체적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2077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 

(마태 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 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 마귀를 사탄(적대자), 더러운 영으로 혼용한다. 사탄은 하느님의 일()을 사람의 일, 뜻으로 주는 뱀이며 또 하느님의 말씀(계명)을 사람의 말(계명)로 전하는, 그래서 사람을 더럽게, 용서받지 못하게 하는 그 더러운 말을 하는 더러운 영(퓨뉴마다이몬), 그래서 하느님의 뜻, 계명. 그 하느님의 말씀을 할 줄 모르는 그 말 못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반대하는 엉뚱한 곳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루가4,6-7) 6 사탄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7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 예수님을 유혹한 사탄이 인간이야 얼마나 더 쉽게 넘어뜨리겠는가?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 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으로 그 자신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했기에,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 힘이 아닌 마귀의 힘을 빌렸다고 우기는 것) 예수님은 하느님의 힘, 말씀으로 쫓아내신 것입니다.

마귀의 말은 거짓, 어둠의 빛으로 하느님의 말씀, 참 빛 앞에 사라지는 법입니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 하느님의 뜻, 그분 말씀으로 마귀를 쫓아 내셨듯이 마귀의 말로 구원의 힘, 믿음이 허약해진 병자들을 말씀, 복음 선포로 고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듯이~


(루가4,13)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 하느님의 말씀으로 쫓겨난 마귀는 오늘 우리를 거짓 유혹으로 넘어뜨리려 하지요.

십자가로 얻는 하늘의 의로움을 얻지 못하도록~ 자기 의로움을 위한, 팍한 신앙인으로 살게~(2코린11,14) 또한 헛된 신앙으로 세상의 것을 얻도록, 빈말 기도를 많이 하도록 유혹 합니다. 그래서 정작 말씀을 묵상해야 할 시간까지 빼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세상의 노예로, 그리고 법의 신앙으로 용서(구원)의 힘을 잃어 기()가 꺾여있습니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 일꾼은 성령이신 것, 하늘의 수확물은 사람의 관점이 아닌 하느님의 뜻으로 걷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 밀()인지 가라지()인지 제자들은 분별을 할 수가 없기에 뽑지 말고 내버려 둬라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13,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 인간의 말(계명)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계명)으로 추수할 천사~ 하느님의 영, 성령이십니다. 그 성령께서 하느님의 계명인 나무의 대속 그 복음으로(탈출15,25) 믿는 이의 무죄를 선언하시며 단물로, 말로, 의인으로 추수해 주십니다.(로마3,32) 그러기에 반드시 그 우리의 보호자 성령을 청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 성령을 의지 못하는 이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로마8,9-10)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십자가의)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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