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 (마태8,23-27)

2020. 6. 30. 오전 6: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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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630일 화요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바람과 호수까지 복종 (마태8,23-27)

1독서<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으랴?>(아모 3,1-8; 4,11-12)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주님이 너희를 두고, 이집트 땅에서 내가 데리고 올라온 씨족 전체를 두고 한 이 말을 들어라.

2 나는 이 땅의 모든 씨족 가운데에서 너희만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죄를 지은 너희를 나는 벌하리라.”

3 두 사람이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같이 갈 수 있겠느냐?

4 먹이가 없는데도 사자가 숲속에서 으르렁거리겠느냐? 잡은 것이 없는데도 힘센 사자가 굴속에서 소리를 지르겠느냐?

5 미끼가 없는데도 새가 땅에 있는 그물로 내려앉겠느냐?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는데 땅에서 그물이 튀어 오르겠느냐?

6 성읍 안에서 뿔 나팔이 울리면 사람들이 떨지 않느냐? 성읍에 재앙이 일어나면 주님께서 내리신 것이 아니냐?

7 정녕 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당신의 비밀을 밝히지 않으시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

8 사자가 포효하는데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으랴?

4,11 “나 하느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뒤엎은 것처럼 너희를 뒤엎어 버리니 너희가 불 속에서 끄집어낸 나무토막처럼 되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이다.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하리니, 이스라엘아, 너의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라.”


화답송 시편 5,5-6ㄱㄴ.6-7.8(9)

주님, 당신의 정의로 저를 이끄소서.

당신은 죄악을 좋아하는 하느님이 아니시기에, 악인은 당신 앞에 머물지 못하고, 거만한 자들은, 당신 눈앞에 나서지 못하나이다.

당신은 나쁜 짓 하는 자 모두 미워하시고, 거짓을 말하는 자를 없애시나이다. 피에 주린 자와 사기 치는 자를, 주님은 역겨워하시나이다.

저는 당신의 넘치는 자애에 힘입어, 당신 집으로 들어가, 경외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 경배하나이다.


복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마태8,23-27)

23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24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25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26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27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제1독서(아모3,1~8;4,11~12)


"나 하느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뒤엎은 것처럼 너희를 뒤엎어 버리니, 너희가 불 속에서 끄집어낸 나무토막처럼 되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이다." (4,11)

 

아모스서 411절은 아모스서 46절 이하에서 10절까지 계속 제시되는 과거 북부 이스라엘에 행하신 하느님의 다섯 가지 재앙 가운데 마지막 재앙을 다루고 있는데, 북부 이스라엘을 포함한 가나안 일대에 내려진 하느님의 심판으로서의 지진을 다루고 있다.


본문에서 '뒤엎은 것처럼'에 해당하는 '케마흐페카트'(kemahpekath)'뒤엎어 버리니'에 해당하는 '하파크티'(hapakthi)의 원형인 '하파크'(hapak)'완전히 뒤집어엎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인데, 구약 성경에서 여섯 번 사용된다.

이중에서 이사야서 17절을 제외하고는, 신명기 2923, 이사야서 1319, 예레미야서4918, 5040절은 모두 지진으로 말미암아 흔적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파괴된 소돔과 고모라의 멀망을 묘사하는 문맥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하파크'(hapak)는 적군의 공격에 의해 무너진 성읍을 묘사하는 단어가 아니고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에 의해 완전하게 파괴된 성읍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던 것이다.

고대 문헌들을 보면 우찌야 임금이 다스리던 때에 일어났던 지진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티로와 시돈 등 지중해 연안에서부터 가나안 내륙 지방을 지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있었다고 보도한다.


이로 말미암아 수많은 가옥과 성읍이 땅 속으로 함몰되거나 완전히 무너져 내려 뒤엎어지고 수많은 사람과 가축들이 몰살을 당하는 참변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즈카르야서 145절에서 종말론적 심판의 때에 당할 환난을 우찌야 임금 때에 지진을 피하여 달아나던 때처럼 될 것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당시의 지진은 선민 이스라엘과 그 일을 체험한 이들에게 크나큰 충격과 고통과 공포를 안겨준 잊지 못할 사건이었다.


아모스서 411절의 상반절이 소돔과 고모라의 완전한 파멸을 상기시킴으로서 이스라엘의 완전한 파멸을 생생하게 경고했다면, 후반절은 소돔과 고모라를 뒤덮었던 유황불로 인한 거대한 불길의 이미지를 가져와서 북부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와의 전쟁으로 인해 화염에 뒤덮힐 것이라고 비유한다.

본문에서 북부 이스라엘은 '불 속에서 끄집어낸 나무토막'으로 묘사되었다. 여기서 '나무토막'에 해당하는 '우드'(ud)는 일반적인 나무가 아니고 부지깽이로 사용되는 막대기나 기름을 묻혀 태우는 횃불로 사용되는 몽둥이를 가리킨다.


그리고 '끄집어낸'에 해당하는 '뭇찰'(mutsal)'구원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나찰'(natsal)의 사역 수동형 분사이고, 이 분사의 의미상의 주어는 상반절에서 두 번이나 사용된 주어인 하느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의 내용은 북부 이스라엘이 재앙으로 인해 성읍이 무너지고 불 속에 던져진 나무토막처럼 새까맣게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완전히 멸망할 수도 있었지만, 하느님에 의해 마지막 구원을 받아 건져지게 됨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모스서 46~11절에 기록된 재앙을 보면, 6절은 양식의 고갈, 7절과 8절은 가뭄, 9절은 농작물이 입은 피해, 10절은 염병과 전쟁에서의 패배로 인한 살육의 재앙, 그리고 11절에서는 지진으로 인한 성읍의 붕괴를 각각 묘사했다.

전반부의 세 가지 재앙은 먹을 양식에 대한 피해가 점점 더 극심해져 가는 내용을 다루었다면, 후반부의 두 가지 재앙은 죽음의 자리에 던져지는 일이 군대에 갈만한 청년들에게서 모든 사람에게로 확대되는 내용이다.


아모스서 411절은 이런한 점층적 구조를 통해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한다.


첫째는 북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악을 회개하지 않는 뻔뻔함이다. 이러한 뻔뻔함에 대한 강조는 매 단락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라는 표현을 통해 반복 지적되고 있다.

북부 이스라엘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방관치 않고 그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도록 예언자를 파견하셨고, 예언자를 통해 죄를 지적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어떤 재난이 닥치면 그것이 자신들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에 따른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부 이스라엘 사람들은 먹을 것이 줄어들어 고난을 당하고, 전쟁과 천재지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도대체 회개할 줄을 몰랐다. 그들은 정말로 목이 뻣뻣하고 낯이 뻔뻔스러운 교만한 자들이었던 것이다.


둘째로 북부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오래 참으시는 모습이다. 하느님께서는 북부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기 전까지 회개를 염원하시며 당신께 돌아와 그들에게 이미 약속하신 축복된 삶을 누리도록 무수한 경고와 징계를 거듭 거듭 주셨다.

그러나 북부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와 인내와 기대는 실망으로 계속 이어졌고, 결국 하느님의 오래참음을 멸시한 북부 이스라엘은 아모스서 412절과 13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느님의 심판으로 멸망을 당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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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복음(마태8,23-29)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27)


마르코 복음 436절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탄 배를 뒤따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그 사람들은'에 해당하는 '호이 안트로포이'(hoi anthropoi; the men)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탄 배를 뒤따랐던 무리들을 가리킨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마태오 복음 826절에서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는 장면은 풍랑이 몰아치는 호수 위의 다른 배에서도 볼 수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놀라워하며'에 해당하는 '에타우마산'(ethaumasan; marvelled)의 원형 '타우마조'(thaumazo)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계시적 행위에 대한 인간의 놀람을 나타낼 때 사용되지만, 존경이나 의아해하는 감정을 나타낼 때도 사용된다.


그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기이하게 여긴 까닭은 예수님께서 바람과 호수와 같은 자연 현상까지도 지배하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이시므로 이런 일을 쉽게 행하실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무리들은 놀랍게만 생각되었던 것이다.


당시, '호수' 또는 '바다'가 종종 악(; evil)의 상징이며, ()이 거주하는 장소로 묘사되었다(시편65,8; 107,29-30).

따라서 예수님께서 호수를 복종케하신 사건은 제자들의 약한 믿음을 단련시키기 위한 시도인 동시에, 사탄의 세력을 몰아내시는 구마와 치유의 의미까지 암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탄의 세력이 쫓겨나고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전주곡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추정은 이 기사 다음에 나오는 기사(마태8,28-34)가 가다라인들의 지방의 마귀들린 자를 치유하는 내용이라는 사실과 연결되는 것이다.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2020630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마태8,23-27)

23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 하늘께서 인간의 세상으로 찾아, 들어오시는 예언의 모습을 다시 보여 주시는 것(루가1,78~),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지고 그 말씀을 따르겠다고 약속한 제자들입니다.


(사도20,28)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의 교회 곧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24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 예수님의 길을 진리로 따라야 할 교회가 풍랑의 바다, 곧 세상의 길을 진리로 따르기에~

말씀이 주무시고 계시는, 곧 말씀이 활동을 하지 않으시는 것, 그 자체가 풍랑인 것입니다.(로마7,5참조)


(1테살2,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아모3,2-7) 2 나는 이 땅의 모든 씨족 가운데에서 너희만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죄를 지은 너희를 나는 벌하리라.” 3 두 사람이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같이 갈 수 있겠느냐? 4 먹이가 없는데도 사자가 숲 속에서 으르렁거리겠느냐? 잡은 것이 없는데도 힘센 사자가 굴속에서 소리를 지르겠느냐?

= 하느님의 사랑, 그 진리의 말씀을 세상의 법으로 만들어 그 세상의 법을 따르며 세상의 칭찬을 다 좋아한다면 지옥의 힘이 그를 잡으러 으르렁대고~~ 그 유혹, 악에 빠질까 하느님께서도 으르렁 대신다.

어린양이 죽어 남긴 뿔, 나팔소리로 하늘의 덮으심, 대속의 복음을 선포로~~

6 성읍 안에서 뿔 나팔이 울리면 사람들이 떨지 않느냐? 성읍에 재앙이 일어나면 주님께서 내리신 것이 아니냐? 7 정녕 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당신의 비밀을 밝히지 않으시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

= 말씀 안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야 하는 것, 재앙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곧 그것은 하느님과 우리의 약혼, 그 약속이 지속적이며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25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 인간은 시련이라는 사건이 있을 때 애원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사랑의 손짓이신 것이지요.


26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 말씀은 살아 계십니다. 말씀은 갇혀있지 않으십니다.


(히브1,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27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놀라워하며(엑스타시스-육적쾌감)- 겉으로 나타난 현상만을 보며 놀라워 말고 하느님을 그분의 뜻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혜13,1. 7-9) 1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7 그들은 그분의 업적을 줄곧 주의 깊게 탐구하다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도 아름다워 그 겉모양에 정신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8 그러나 그들이라고 용서받을 수는 없다. 9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 말씀을 보이는 그대로, 문자 그대로 사람의 말로 가르쳐 놀라워만 한다면~ 그것은 뱀(마귀)의 유혹을 먹은 것입니다.


(창세3,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 인간을 위한 말씀으로 먹는 것, 그것이 뱀(마구)의 말을 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구절이 마귀들린 사람의 이야기로(마태8,28이하~~)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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