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1일 금요일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마태22,34-40)
제1독서<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에제 37,1-14)
1 주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셨다. 그분께서 주님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시어, 넓은 계곡 한가운데에 내려놓으셨다. 그곳은 뼈로 가득 차 있었다.
2 그분께서는 나를 그 뼈들 사이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넓은 계곡 바닥에는 뼈가 대단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내가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4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뼈들에게 예언하여라.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5 주 하느님이 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6 너희에게 힘줄을 놓고 살이 오르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씌운 다음,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7 그래서 나는 분부받은 대로 예언하였다. 그런데 내가 예언할 때, 무슨 소리가 나고 진동이 일더니, 뼈들이, 뼈와 뼈가 서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8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라오며 그 위로 살갗이 덮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숨은 아직 없었다.
9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숨에게 예언하여라. 사람의 아들아, 예언하여라. 숨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 숨아, 사방에서 와 이 학살된 이들 위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10 그분께서 분부하신 대로 내가 예언하니, 숨이 그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들이 살아나서 제 발로 일어서는데, 엄청나게 큰 군대였다.
11 그때에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 집안이다. 그들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고 말한다.
12 그러므로 예언하여라.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13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
화답송 시편 107(106),2-3.4-5.6-7.8-9(◎ 1 참조)
◎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 말하여라, 주님이 구원하신 이들,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신 이들.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 북녘과 남녘, 뭇 나라에서 모으신 이들은 말하여라. ◎
○ 사막과 광야에서 그들은 헤매며, 사람 사는 성읍으로 가는 길 찾지 못하였네. 굶주리고 목말라, 목숨이 다하였네. ◎
○ 곤경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자, 역경에서 그들을 구해 주셨네. 그들을 바른길로 걷게 하시어, 사람 사는 성읍으로 가게 하셨네. ◎
○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
복음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제1독서 (에제37,1-14)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12ㄹ)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14)
에제키엘서 37장 12절 이하 14절에서 마른 뼈의 환시를 통한 새로운 확신과 희망에 근거하여 하느님께서 에제키엘로 하여금 회복의 약속을 선포하라는 명령이 주어짐을 보여준다.
그리고 에제키엘서 37장 12절에서 하느님께서는 환시를 받은 자들을 '내 백성아'라고 부르신다.
이것은 비록 현재 그들의 영육의 상태가 마른 뼈처럼 희망없는 가운데 있지만, 이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여기시고 그들에게 선민의 축복을 회복시키실 것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에제키엘서 37장 11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땅에서 포로로서 아무런 희망이 없이 살아가는 자신들의 상황을 자신들의 뼈가 말랐다고 표현하였다.
그런데 에제키엘서 37장 12절에서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을 의탁하고 신뢰하며 살지 못하는 그들의 상황을 더 비관적으로 무덤 속에 있다고 표현하셨다.
하지만 이어서 하느님께서는 무덤 속에 있는 그들을 무덤으로부터 끌어내어 나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무덤 속에 있다는 것은 죽었다는 의미이고, 무덤으로부터 끌어내어 나오게 하겠다는 것은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시겠다는 의미이다.
이 무덤의 비유는 넓은 계곡 한 가운데 가득하던 마른 뼈들이 힘줄과 살이 붙고 살갗이 붙은 후에 숨이 불어 넣어져 큰 군대가 되게 하신 환시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마른 뼈의 소생 비유나 무덤의 죽은 자들의 소생에 관한 비유는 모두 이스라엘 백성의 영육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른 뼈나 무덤 속의 시신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잃어버린 남부 유다 공동체의 영적인 죽음 상태를 의미하고, 마른 뼈에 숨(생기)이 불어 넣어져 큰 군대로 소생하는 것이나 무덤 속의 시신이 살아 나오는 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신앙이 생겨 새롭게 변화되며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에제키엘서 37장 12절에서는 특히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는 표현이 사용되어 정치적인 해방과 국권의 회복을 보다 명시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한편, 여기 에제키엘서 37장 12절에서 예언되는 바빌론 유배 포로 공동체의 정치적 해방은 그들을 억류하고 있던 바빌론 제국이 B.C.539년에 멸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즉 그 후 세 차례에 걸친 포로 귀환( B.C. 537년, 458년, 444년)이 이루어져 원하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상속받은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적 회복은 그들이 다시 주님 신앙을 회복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 사건으로는 B.C. 516년에 이루어진 성전 재건과 B.C. 432년에 이루어진 느헤미야의 개혁 운동을 들 수 있다.
한편, 에제키엘서 37장 14절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영적 측면을 보다 부각시켜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당신의 영을 선민 공동체에 두어 살아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여기 에제키엘서 37장 14절의 '내 영을'에 해당하는 '루히'(ruhi; my spirit)의 원형 '루아흐'(ruah)는 앞의 '숨'(생기)으로도 번역된 단어이다.
여기서 사용된 '루아흐'(ruah)는 에제키엘서 37장 1절에서 에제키엘을 이끌고 계곡으로 갔던 것으로 언급된 '그의 영'에 해당하는 '루아흐 예흐와' (ruah yehwa)와 관련된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즉 '주님의 영', '성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결국 에제키엘서 37장 14절은 본 단락이 제시하는 선민의 회복이 단순히 포로 생활에서의 해방과 국권의 회복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선민들이 하느님의 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될 것임을 명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전에 그들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게 하고 징계 받도록 한 이전의 잘못된 삶이 완전히 청산되고,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한 백성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선민의 회복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지속하는 새로운 백성들이 될 것임을 나타내는 새성전과 새로운 예배와 새 땅에 대한 환시를 담고 있는 에제키엘서 40장 이하 48장 까지의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22,34-4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37)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38)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39)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40)
원문과 한글 새 성경의 단어 배열 순서가 다르다.
원문은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너의 온 마음으로, 너의 온 목숨으로, 너의 온 뜻으로'이다.
원문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임이 먼저 선언되고, 그 다음에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라는 방법론이 제시된다.
'사랑해야 한다'로 번역된 '아가페세이스'(agapeseis; you shall love; love)의 원형 '아가파오'(agapao)라는 단어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뜻할 때에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에 대한 감사와 한없는 순종과 내면적 경외심을 가리킨다.
즉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이전에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한없는 사랑의 감정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사랑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신명5,10), 그를 섬기며(신명10,12), 그의 모든 말씀을 실천하는 외적 행위로 드러나게 된다(신명11,22).
따라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이 명령은 죄인을 위해 가장 귀한 외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당신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기까지 죄인을 사랑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자발적인 사랑의 순종을 의미한다(요한14,15; 14,21; 1요한5,3).
한편,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보여 주는 부분으로서 신명기 6장 5절의 인용이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예배 드릴 때에 이 말씀을 신앙 고백문으로 사용했으며, 이것은 일명 '셰마'(shema)라고 불리웠다.
여기서 '마음'으로 번역된 '카르디아'(kardia; heart)는 '외모'를 나타내는 '프로소폰' (prosopon)과 대조되는 단어로서, 가식없는 내면의 진실함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2코린5,12; 1테살2,17).
그리고 '목숨'으로 번역된 '프쉬케'(psyche; soul)는 '호흡', '생명'이라는 뜻이 있으며, 여기에는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생명을 가리킨다.
또한 '정신'으로 번역된 '디아노이아'(dianoia; mind)는 '생각', '뜻', '지각'이란 뜻으로서 이해하고 느끼며 갈망하는 기능으로서의 정신을 가리킨다.
따라서 '네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라는 말은 자기 자신의 전인격(全人格)을 기울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가시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다'
여기서 '첫째'로 번역된 '프로테'(prote; the first)는 시간적 순서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중요성의 경중에 있어서도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며, 그분의 모상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분과 친교하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영적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이 영적, 정서적, 인격적으로 균형있고 충족한 상태로 살아가려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경외해야 하며, 그분의 말씀과 교훈을 성심껏 순종해야 한다.
코헬렛 12장 13절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라는 마지막 결론을 내리면서 인간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계시한다.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지 않고, 또 그분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영적, 정서적, 인격적 성숙과 삶의 행복을 성취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이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서 성심성의껏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신명10,13).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와 같다'에 해당하는 '호모이아 아우테'(homoia aute; is like it)에서 '아우테'(aute; it)는 여성 3인칭 대명사로서 22장 38절의 여성 명사 '엔톨레'(entole; commandment), 즉 '계명'을 가리킨다.
'같다'로 번역된 '호모이아'(homoia; is like)의 원형 '호모이오스'(homoios)는 '닮은 사람'(요한9,9), '같은 식'(유다1,7), '같은 곳'(묵시18,18)등과 같이 동등한 두 사물을 비교할 때 사용한다.
따라서 여기서 '이와 같다'라는 말은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의 성질이 동일함을 보여준다. 이것은 둘째 계명도 첫째 계명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압축된다는 의미이다.
바리사이들은 하느님께 의무를 행하다 보면, 사람, 특히 부모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마태15,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이 지켜야 할
계명의 핵심이며,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두 가지 의무는 어떤 면에서 하나로 통합된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생활가운데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며, 그래서 사도 요한은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1요한4,20)라고 말한다.
한편,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이 십계명 중 첫번째부터 세번째까지의 계명을 요약한 것이라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은 레위기 19장 18절의 인용문으로서 십계명 가운데 네번째부터 열번째까지의 계명을 요약한 것이다.
'이웃'으로 번역된 '플레시온'(plesion; neighbor)은 가까이 있는 다른 사람이나 친구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모세 율법이 주어질 당시의 이 표현은 동족이나, 함께 거주하면서 유다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외국인들만 가리켰으며, 예수님 당시의 유다인들도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웃의 범위에서 배제시켰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경멸하는 사마리아인들은 물론(루카10,29~37), 원수까지도(마태5,44) 사랑해야 할 '이웃'의 개념에 포함시켰다.
'사랑해야 한다'로 번역된 '아가페세이스'(agapeseis)는 마태오 복음 22장 37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했을 때 사용된 단어와 동일한 단어이다.
따라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랑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여기서 '율법'으로 번역된 '호 노모스'(ho nomos; the Law)는 율법서인 모세 오경 (Torah)을 가리키고, '예언서'로 번역된 '호이 프로페타이'(hoi prophetai; the prophets)는 예언서 (Nebim)을 가리킨다.
그러나 '온 율법과 예언서'라는 표현은 단지 율법서와 예언서 뿐만 아니라 모세 오경과 예언서와 더불어 구약 성경을 이루는 구성 요소인 성문서(Kethubim)까지 포함하는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정신이~달려 있다'로 번역된 '크레마타이'(krematai; hang)는 '크레만뉘미'(kremannymi)의 직설법 중간태로서 '매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비유적으로 '의존하다', '요약하다'(summarize)는 뜻이다.
당시 랍비들은 도덕 법규들을 세분화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율법을 몇 가지 범주로 나누며, 거기에서 공통적 성격을 규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전통에 입각해서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모든 율법의 근본 정신이요, 원칙이라고 천명하셨다.
실제적으로 사랑이야말로 하느님의 성품과 본질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근본 정신이기에 사랑이 결여된 율법 준수는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며 위선일 따름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로마13,10), 사랑의 법이 가장 탁월하다고 말했다(로마13,9; 갈라5,14). '경천애인'(敬天愛人) 혹은 '애주애인'(愛主愛人)의 계명은 전체 구약 성경의 기둥이요, 핵심인 것이다.


2020년 8월 21일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성경에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이 54,000번 있다.
구약,신약 그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캅-실행)것이 신앙이다.
(마태22,34-40)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 부활, 영생이 없다고 하는 사두가이의 말을 막으신 것이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바리사이~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 하느님을 사랑 한다는 것, 그분의 뜻,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사55,8-9)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 땅(사람,세상)의 생각 곧 사람의 목숨(육)을 위한 길이 아닌 하느님의 뜻, 하늘의 생명을 위한 그분의 길을 바라는 것, 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요한6,27)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 영원한 생명을 위한 양식은 예수님이시다.
(요한17,3)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세상의 죄인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들의 죄값으로 당신 외아드님을 그들의 속죄 제물로 내주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요한3,16), 그래서 죄인들이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영원하게 살게 하신 것이다.
그 참 사랑, 참 진리의 한분이신 하느님과 그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 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 둘째도 첫째와 똑같다는 말씀, 하느님의 구원의 뜻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예수님, 그 하느님과 예수님의 뜻, 그분들의 말씀, 복음을 이웃에게 전해주어~ 그 말씀으로 이웃이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 그것이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없다. 혹 있다 하더라도 그 인간의 사랑으로 감동을 시켜도 그 사랑으로는 하늘의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 율법(십계명)은 하늘의 대속 그사랑 그 하나의 계명인 것이다. 그 사랑 하나를 깨닫지 못하고 열 개의 계명을 인간의 법, 인간의 사랑으로 지켰다면 하늘의 생명인 말씀, 곧 생명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모습이 오늘 독서에 마른 뼈들인데~ 구원의 물(생명수-말씀)이 없는 마른 뼈들인 것이다.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인 말씀이 없는 죽은 뼈들인 것이다.
그 마른 뼈, 죽은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영)으로만 살릴 수 있다. 인간의 어떤 행위로도 하늘의 생명을 살릴 수 없다.
(에제37,14) 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
여기서 영(靈)은 앞36장의 새 영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에제36,25-26) 25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 부정한 것, 죄를 깨끗하게 하는 정결한 물은 새 계약의 말씀인 피와 영, 성령을 뜻한다(1요한5,6-8)
곧 성령의 증언으로 더러운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로마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갈라2,16) 16 그러나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대속의 죽음, 그 제사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졌음을 믿지 못하고 여전히 미사(감사의 축제, 잔치)를 제사로 드리는 그 열심인 행위, 그리고 십계명을 열 개의 법, 인간의 계명으로 받아 지킨 그 인간의 가치를 세우는 것, 그것이 구원의 말씀과 상관없는 행위의 신앙인 것이다.
(아모8,11) 11 보라, 그날이 온다.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땅에 굶주림을 보내리라.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
천주의 성령이시여 의탁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