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간 목금요일] 열 처녀의 비유(마태25,1-13)

2020. 8. 28. 오전 5: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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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28일 금요일

[연중 제21주간 목금요일] 열 처녀의 비유(마태25,1-13)

   

1독서<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코린1,17-25)

17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19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20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25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화답송 시편 33(32),1-2.4-5.10-11(5참조)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 비파 타며 주님을 찬송하고,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불러라.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 그 하신 일 모두 진실하다. 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 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주님은 민족들의 의지를 꺾으시고, 백성들의 계획을 흩으신다. 주님의 뜻은 영원히 이어지고, 그 마음속 계획은 대대로 이어진다.


복음<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마태25,1-13)

1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독서 (1코린1,17-25)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18)

 

코린토 1서 본론의 서두인 1장 10-17절은 코린토 교회 내의 분열의 실상과 그 부당성을 지적하며 책망하는 내용이다. 이제 이어지는 18절 이하부터 4장 21절까지, 하느님의 절대적 지혜로 된 '십자가에 관한 말 '<십자가의 도(道)>의 유일성에 대한 가르침인데, 이 논리를 가지고 몇 가지 측면에서, 교회의 분열이 부당하며 불의하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그 첫번째 단락인 1장 17절부터 1장 25절까지는, 특히 교회의 설립과 통합의 유일한 기반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한편,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원문에는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가르'(gar)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것을 '왜냐하면'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럴 경우, 본절은 앞서 17절에서 밝혔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오로가 말재주(말의 지혜)로 복음을 전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십자가에 관한 말씀'<십자가의 도(道)>가 하느님의 힘(능력)이 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여기서 '십자가에 관한 말씀'<십자가의 도(道)>로 번역된 '호 로고스 가르 호 투 스타우루'

(ho logos gar ho tu stauru; for the preaching ot the cross)는 문자적으로 '그 십자가의 말씀'이라는 뜻으로, 17절에 언급된 '소피아 로구'(sophia logu) 즉 말의 지혜(말재주)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바오로는 이러한 대조적 표현을 사용하여, 당시 '말의 지혜' 곧 철학적 논증 등에 대해서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코린토 교인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온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천명하고 있다.

 

복음은 말의 지혜나 철학적 논증에 머무를 수 없는 그리스도의 계시이다(갈라3,1). 이러한 성격을 갖는 복음에 대한 평가나 결과는 이중적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지만, 구원을 받을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힘(능력)이 된다(2코린2,15-16참조).

여기서 '멸망할'로 번역된 '아폴뤼메노이스'(apollymenois)는 '멸망시키다','파괴하다' 뜻을 지닌'아폴뤼미'(apollymi)의 현재 분사형이며, '구원을 받을'로 번역된 '소조메노이스'(sozomenois) 역시  '구원하다'를 뜻하는 원형 '소조'(sozo)의 현재 분사형이다.

 

그런데 여기서 현재 분사는 지속적임을 보여주므로, 이러한 표현은 파멸의 길과 구원의 길에 서 있는 자들의  상태가 영구적임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즉 바오로는 본절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이루어지는 영원한 멸망과 영원한 구원이 날카롭게 대립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하느님의 힘' 번역된 '뒤나미스 테우'(dynamis theu)는 로마서 1장 9절에 등장하는 과 동일한 표현으로, '어리석은 것'(모리아; moria; 미련한 것)이라는 표현과 대조적으로 사용되었다(1코린4,20).

즉 바오로에게 있어서, 어리석은 것 즉 미련한 것은 '말재주'나 '하느님의 지혜'와 대조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능력)과 대조된다. 이것은 바오로의 독특한 복음에 대한 이해이다.

 

여기서 '힘'(능력)으로 번역된 '뒤나미스'(dynamis)는 신체적,지적,영적 능력을 포함한 총체적 능력 지칭하며, 바오로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는 '우주의 원리로서의 생명력' 의미하기도 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서는 전능함과 생명력을 지닌 그리스도의 힘과 권능 나타낼 때 자주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절의 경우 인간의 구원이 인간의 말이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느님의 초월적이며 생명력을 갖는 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25,1-1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하고 대답하였다." (3~4.9)


마태오 복음 25장은 24장과 더불어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받으시기 사흘 전에 주신 올리브산에서의 말씀이 계속되는 부분으로서, 특히 도둑의 비유, 두 종의 비유인 충성된 종과 악한 종의 비유(마태24,42~51)와 더불어 종말을 대비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교훈하는 세 가지 비유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세 가지 비유란 '열 처녀의 비유', '탈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를 나누는 임금의 비유'를 말한다.


여기서 '천국은 마치 ~~에 비길 수 있다'는 것은 천국이 열 처녀에 비유되는 것이 아니라 열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는 상황에 비유되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다의 혼인 풍습은 신랑이 신부의 집에 들러 간단한 종교적 의식을 치른 후, 신부와 신부의 들러리들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가 혼인 잔치를 벌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신랑의 집이 먼 경우에는 신부의 집에서 혼인 예식을 치루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본 장에 있어서의 혼인 잔치는 어느 곳에서 벌어졌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문맥의 흐름으로 보면, 혼인 잔치는 신부의 집에서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름을 예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가 나중에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요청했을 때 그 요청을 거부한 사람이 신랑이었던 사실(11~12절)에 비추어 보면, 혼인 잔치는 신랑 집에서 베풀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만일 혼인 잔치가 신부 집에서 신부 집에서 베풀어졌다면, 어리석은 다섯 처녀의 요청을 거부하는 주체가 신랑이 아닌 신부의 아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혼인 잔치가 어디서 열렸는지 단정할 수 없다.

그리고 당시 유다 관습에 의하면, 혼례식은 보통 해가 진 이후에 시작되었다.


이때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부의 집 문 밖에 나가서 등을 들고 있다가 신랑이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에 당도하면 영접하였다.

그런데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신부집에 가는 시간은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랑이 늦어질 것을 대비해서 등이 꺼지지 않도록 충분한 기름을 준비해야 했다.


특히 본문에서 신랑이 예측치 못한 시간에 온 것이 강조되는 것은 종말, 또는 모든 성도들의 신랑이 되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예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여기서 신부의 들러리인 열 처녀가 들고 나간 '등'으로 번역된 '람파다스'(lampadas)는 수지질의 소나무로 만든 횃불이나 등불, 또는 심지를 꽂아서 쓰는 속이 등근 접시나 기름병을 의미하는 명사 '람파스'(lampas)의 목적격 복수로서 '여러 개의 등'이다.


원문에는 이 단어 뒤에 새 성경이 번역하지 않은 단어 '헤아우톤'(heauton)이 있다.

 '헤아우톤'(heauton)은 여성 3인칭 복수 소유격 재귀 대명사로서 '그녀들 자신들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열 처녀는 모두가 각자 자기 자신의 등을 들고 나갔다.

여기서 '나간 장소'가 신부의 집인지, 처녀 자신들의 집인지 정확하지 않으나 이것은 이 비유의 전개에서 크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본 비유에서 '신랑'으로 번역된 '뉨피우'(nymphiu)의 원형 '뉨피오스' (nymphios)라는 단어는 재림하실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다(11절). 따라서 비유에서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도는 신부가 아닌, 들러리 처녀 열 명이다.


당시 신부의 들러리는 신부의 친구들이 맡았으며, 들러리들이 드는 등불은 모두 열 개라고 한다. 유다인들은  이상적인 숫자, 완전 숫자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회당에서의 공식 집회도 열 명이 참석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비유에서도 그러한 풍습에 따라 들러리 처녀들이 열 명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것은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신랑되시는 예수님의 재림은 열 처녀로 상징되는 '모든 성도'가 대비하고 준비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재림 앞에서 단 한명도 열 처녀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슬기로운 처녀가 아니면 어리석은 처녀에 해당하는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어리석은'으로 번역된 '모라이'(morai; foolish)의 원형 '모로스'(moros)는 신중하지 못하고 예측 능력이나 지혜가 결여된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며, '슬기로운'으로 번역된 '프로니모이'(phronimoi; wise) 신중하고 사려깊으며 분별력이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다.

그리고 여기서 쓰인 동사 '에산'(esan; were) 반복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미완료 과거 시제로서, 이것은 신부의 들러리 처녀들의 개인적인 성향이 항상 그러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결국 다섯 처녀들은 항상 신중하지 못하고 선견지명이 없는 자들로 살아왔기 때문에 신랑을 맞이하는 날에도 평소처럼 자신이 지니고 있는 성향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드러낸 것이며, 반대로 다른 다섯 처녀들도 평소의 삶의 자세가 사려깊고 분별력이 있으며 신중했기 때문에 그러한 태도가 신랑을 맞이하는 날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이다.

여기서의 교훈은 우리가 평소에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주님의 재림의 때에 어떠한 자들로 드러날 것인가가 판가름난다는 것이다.


이제 마태오 복음 25장 3절에는 열 처녀들이 왜 어리석고 슬기로운지를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 밝힌다.

즉 등을 밝히기 위해서는 등은 물론 기름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늦어질 것을 대비해서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던 반면에,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준비했을 뿐 여분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메트 헤아우톤'(meth heauton; with them)은 '그녀들 자신들과 함께' 또는 '그녀들 자신들 곁에'라는 뜻이다.

이것은 들러리 처녀들이 등을 밝힐 여분의 기름을 반드시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충고해 주는 표현이다.

그리고 '엘라이온'(elaion; oil)은 '올리브 나무'(olive tree)를 의미하는 '엘라이아'(elaia)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올리브 기름'을 뜻한다.

 

이 기름은 팔레스티나에서 나는 대표적인 산물로서 등불을 밝히고(2열왕4,10) 병을 치료하는데(루카10,34), 그리고 귀한 손님의 머리에 부어 예의를 시하는데(루카7,46) 사용되었다.

이 기름에 대해서 어떤 학자는 '믿음'을 상징한다고 보고, 어떤 학자는 믿음에 대응하는 '선행'이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학자는 기름이 성별 의식에 사용된 물질이라는 것과(즈카4,12) 성령이 기름으로 상징된다(루카4,18)는 사실에 근거해서 기름은 내면적 신앙의 모습인 '성령의 능력과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마태오 복음 25장 4절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이 왜 슬기로운지를 보여 준다. 

여기서 '그릇'으로 번역된 '앙게이오이스'(anggeiois; jars)의 원형 '앙게이온'(anggeion)는 플라스크와 같은 휴대용 병 말하는데,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늦게올 것을 대비하여  말고도 여분으로 플라스크 같은 병을 하나 더 준비하여 거기에 기름을 담아가는 준비성을 갖추었다. 

그래서 설사 기름이 다하여 등불이 타다 꺼지더라도 여분의 기름으로 계속해서 등불을 타오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 5절에 '신랑이 늦어지자'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 당신의 재림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늦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지체되는 이유는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베드로 2서 3장 9절이 이것에 대해 분명히 밝혀준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도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연되는 주님의 재림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들어 방종에 흐르는 기회로 이용될 수 있음을 베드로 2서 3장 3절과 4절이 밝혀주고 있다.

"마지막 때에, 자기 욕망에 따라 사는 조롱꾼들이 나와서 여러분을 조롱하며, "그분의 재림에 관한 약속은 어떻게 되었소? 사실 조상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창조 이래 모든 것이 그대로 있지 않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 7절에서 '우리 등이 꺼져 가니'라는 표현은 주님께서 오시는 역사의 깊은 밤중에 성령의 불길이 소멸해가는 사람이 적지 않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1테살 5,19)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 9절의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라는 표현은 슬기로운 처녀들이 기름을 나누어 주면 둘 다 등불을 켤 수 없을 것이기에 결코 나누어 줄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영적인 차원에서도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주님 오시는 순간에 자기의 것을 나누어 줄 수는 없다는 말로서 구원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구원에 있어서 그 누구도 각자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며, 모자란 기름을 러가는 역할도 그 누구가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이다.




2017년 9월 1일 가해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2020828일 연중 제21주간 목금요일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마태25,1-13)

1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 , 교회를 통해 신랑이신 예수님을 만나려는 신앙인의 모습인 것.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 기름은 하느님, 성령을 뜻하며 등은 교화를 뜻한다.(묵시1,20참조)

곧 교회를 다니지만 성령을 간직하지 못한 신자들이다. 그리고 그 성령에 의한 깨달음이 아닌 행위의 신앙을 산 그 어리석은 신자들인 것이다.

기름을 선행으로 말씀들 하시는데~ 인간의 선행이 아니다. 인간의 선행은 구원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이사64,5 로마10,3참조) 그리고 선행이란 , 선하신 하느님의 계명인 죄인들(쓴물)의 구원을 위한 십자나무의 희생, 그 하느님의 법(탈출15,20), 곧 예수그리스도의 대속, 그 죽음, 그 선행(의로움)을 구원의 법, 진리로 깨닫고 믿고 의탁하는 삶인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대속을 이웃에게 구원의 진리로 전해주어 구원을 받도록 하는 그것이 슬기로운 선행이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기름이 깨달음인 것은~,


(요한12,7)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죽음)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 예수님의 죽음, 그 대속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아 구원 받을 수 있음을 깨닫는 그 믿음의 고백이 기름을 간직함인 것이다. 그 깨달음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다.(요한14,26)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 졸다, 잠들다, 그 표현은 육(죽음)의 상태를 의미 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육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선인이나 악인이나 모두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것,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예복으로 갈아입지 않으면 쫓겨난다는 것이다.(마태22,1-13)

그 예복은 하느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어린양이 죽어 남긴 가죽 옷(창세3,21참조) 곧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 그 하늘의 의로움이신 예수님을 입는 것, 믿는 것이다.(로마13,14 콜로3,14 참조)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 기름, 곧 성령을 나누어 달라고 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 성령은 모자라지도 또한 상인에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성령은 갈망하는 이들이 하느님의 선물로 받는 것,(사도2,38 로마8,23참조) 그 받아드린 성령께서 구원의 길로 이끌어 가신다. 그런데 그 처녀들을 왜 슬기롭다 하셨는가?

그것은 그들이 간직한 하느님의 지혜, 슬기이신 성령을 말씀하신 것이다.


(티토3,5)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 그들이 간직한 성령 때문에 들어 간 것이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 매정하신 것이 아니라~ 신랑 예수님은 혼인 예물로 보내신 당신의 영을 청하라, 간직하라 하신(루가11,13) 그 성령을 간직한 그 당신의 지체인 신부만 알아보신다.(요한15,26 10,27참조)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 슬기로운 처녀나 어리석은 처녀나 모두 신랑(예수)이 오시는 시간을 몰랐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 시간, 그 때를 아시고 우리 신랑께 이끌어 가신다. 그래서 그날과 그 시간을 아시는 , 늘 깨어 계시는 그 성령께 온전히 의탁하는 삶, 그것이 깨어있는 것, 오늘 그 깨어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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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월요일] 고향방문 (루카 4,16-30)20.08.31조회 168[8월 29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마르 6,17-29)20.08.29조회 223[연중 제21주간 목금요일] 열 처녀의 비유(마태25,1-13)20.08.28조회 219[연중 제21주간 목요일] 깨어 있어라.(마태24,42-51)20.08.27조회 214[연중 제21주간 수요일] 회칠한 무덤 (마태23,27-32)20.08.26조회 184[연중 제21주간 화요일]잔 속을 깨끗이(마태 23,23-26)20.08.25조회 198[성 바르톨로메오(나타나엘)사도 축일]“와서 보시오.”(요한1,45-51)20.08.24조회 191[연중 제20주간 토요일] 섬기는 사람 (마태 23,1-12)20.08.22조회 263[연중 제20주간 금요일]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마태22,34-40)20.08.21조회 188[연중 제20주간 목요일] 임금 아들의 혼인 잔치비유 (마태 22,1-14)20.08.20조회 190[연중 제20주간 수요일] 포도밭 주인 비유 (마태20,1-16)20.08.19조회 180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복음(마태19,23~30)20.08.18조회 190[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마태19,16-22)20.08.17조회 1832020년 8월 15일 토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루카1,39~56)20.08.15조회 179[연중 제19주간 금요일]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마태19,3-12)20.08.14조회 168[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용서 (마태18,21─19,1)20.08.13조회 2152020년 8월 12일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마태18,15~20)20.08.12조회 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