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월요일] 고향방문 (루카 4,16-30)

2020. 8. 31. 오전 7: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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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31일 월요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고향방문 (루카 4,16-30)

1독서 <나는 여러분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 (1코린 2,1-5)

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2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3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화답송 시편 119(118),97.98.99.100.101.102(97)

주님, 제가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나이다.

제가 당신 가르침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온종일 그 가르침을 묵상하나이다.

당신 계명은 영원히 저의 것. 그 계명 저를 원수보다 슬기롭게 하나이다.

저는 당신 법을 묵상하기에, 어느 스승보다 지혜롭사옵니다.

당신 규정을 지키기에, 어느 노인보다 현명하옵니다.

당신 말씀을 따르려, 온갖 악한 길에서 발길을 돌렸나이다.

당신이 저를 가르치셨기에, 당신 법규에서 벗어나지 않았나이다.


복음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루카 4,16-30)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제1독서 (1코린2,1-5)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4~5)


코린토 124절에서 '나의 말'은 사적인 모임에서의 대화를 가리키고, 나의 복음 선포'는 공적인 설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엄격히 구분하기보다는 사도 바오로의 복음 선포를 이중적으로 표현하여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도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지혜롭고 설득력있는 언변으로 하지 않는다. 본절에서 '설득력있는'으로 번역된 '페이토이스'(peithois)'구변이 좋은', '설득력 있는' 이라는 뜻을 지닌 '페이토스'(peithos)의 복수형으로서 사도 바오로가 유혹하는 말이나 그럴듯한 말을 사용하여 복음을 미화하거나 군중들을 현혹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인위적 설득에 기초한 웅변이나 혹은 합리적이며 철학적 논증으로 복음을 전할 경우에 결국 말이 지닌 화려함만 남을 뿐, 십자가의 말씀()은 헛것이 될 것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거짓 예언자들처럼 그럴듯한 말이나 술수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고, 오히려 인간적으로 연약한 만큼, 더욱 성령의 힘과 드러냄을 의지했던 것이다(1코린1,18).


여기서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이란 표현은 '(능력)있는 성령의 드러남', 그리고 '성령과 능력의 드러남' 이란 두 가지 번역이 동시에 가능하다.

특히 ''(능력)으로 번역된 '뒤나메오스'(dynameos)는 힘이나 기적적 능력을 뜻하는 '뒤나미스'(dynamis)의 소유격으로서 자주 독립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성령과 능력()은 종종 함께 언급된다는 점에서(사도1,8), 특히 본문의 경우 형용사와 명사를 결합하는 대신에 두 개의 명사를 연결하여 하나의 뜻을 나타내는 기교적 표현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능력)있는 성령의 드러남'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드러내는 것'으로 번역된 '아포데익세이'(apodeiksi)'증명', '전시', '증거'를 뜻하는 '아포데익시스'(apodeiksis)의 여격으로서 사도 바오로의 복음 선포에 수반된 초자연적 영향력을 뜻한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에 따르면, 이러한 '증거'는 지혜롭고 설득력있는 언변 때문이 아니라 성령의 힘(능력)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령의 힘(능력)의 드러남은 증거를 동반한다는 것인데, 본절에 언급된 '성령의 힘'(능력)이란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이나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능력(에페1,17~18), 회개와 생활의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1테살1,5; 2,13).

실제로 사도 바오로가 본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혜와 수사학과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어떤 외적 증거의 드러남을 제시하고자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5)

25절은 사도 바오로가 성령의 능력으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한 자신의 코린토 교회 선교 활동을 회상하는 21~5절의 결론 부분이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성령의 힘을 의지한 것이 코린토 교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지닌 믿음을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었음을 밝힌다.

이러한 사실은 원문에서 목적을 나타내는 접속사 '히나'(hina)가 문두에 등장하여 사도 바오로가 자신의 복음 선포의 이유와 목적을 명확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잘 보여진다.


그렇다면 사도 바오로가 오직 성령의 힘으로 복음을 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코린토 교인들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에 기초를 둔 참된 믿음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믿음'으로 번역된 '피스티스'(pistis)는 정관사 ''(he)와 함께 사용되어 '믿는 행위' 그 자체보다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하심에 기초한 본질적 믿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만일에 사도 바오로가 전한 복음이 인간의 지혜나 언변에 의존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파도가 들이닥치면 힘없이 무너져 버리고 마는 한낱 모래성에 불과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오로보다 더 탁월한 지혜나 언변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면, 사도 바오로가 전한 복음은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복음을 논리적 논증에 입각해 선포했다면, 또 다른 선명한 논리적 논증이 등장할 경우 이내 파기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오로가 전한 복음은 자신의 지혜나 설득력있는 언변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에 기초하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영원하다.

즉 불변하는 하느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그 무엇에 의해서도 절대 파기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사도 바오로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고 코린토에서 복음을 전하였다는 본절의 내용은, 십자가의 도(말씀)가 구원을 얻는 자에게는 하느님의 능력이 된다는 코린토 1118절의 사도 바오로 자신의 확신에 대한 확증인 것이다.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복음(루카4,16~30)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1)


아마도 성경 봉독 후 예수님께서 하신 교훈의 말씀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깊었으며, 내용도 풍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루카 복음 4장 21절과 18절, 19절의 내용만으로도 예수님께서 베푸신 가르침의 요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하므로, 루카 복음사가는 21절로 압축 요약해서 전달하였다.


21절에서 '이루어졌다'로 번역된 '페플레로타이'(peplerotai; is fulfilled)는 구약 예언의 완성과 성취를 드러내는 전문용어인 '플레로오'(pleroo)의 수동태 완료로서 이사야서 61장 1~2절의 예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회당의 청중들에게 이미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즉 이사야서 61장 1~2절에 나오는, 주님의 영을 받은 의로운 종은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며, 당신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증명하는 중요한 예언으로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앞으로 계속 성취될 예언이기도 한 것이다.

즉 가난한 이들이 기쁜 소식인 복음을 듣고, 죄와 죽음의 권세에 잡혔던 이들이 자유롭게 되며, 영적으로 눈먼 이들이 진리를 보게 되고, 좌절과 절망에 빠진 이들이 희망 가운데 기쁨을 회복하며,

주님께서 베푸실 구원의 은혜로운 해가 도래하는 등의 일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고, 또한 성취되어 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와 생명, 자유와 평화, 그리고 치유와 하느님의 의로운 통치를 동반하고 육화(강생)하신 천주 성자 제2위 하느님이시다.

이처럼 예수님의 오심으로 성취되었고, 또한 성취되어 가는 이같은 일들은 오늘날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으며, 예수님 재림때까지 끊임없이 진행될 것이다.




[2020년 8월 31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고향방문

(루카 4,16-21)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성경곧 구약의 모든 말씀도 그리스도 예수 이야기인 것이다.(루가24,27.44 요한5,39외 다수)

그래서~

(사도28,23) 23 그들은 바오로와 날짜를 정해 두었다가많은 사람을 데리고 바오로의 숙소로 찾아왔다. 바오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에게 설명을 하면서하느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들을 들어 *예수님에 관하여 그들을 설득하였다.

구약의 모든 말씀도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말씀으로 들어야 하는 것특히 이사야서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하느님의 은혜(은총)로 그리스도의 대속(십자가)을 통한 죄의 용서와 의로움곧 구원(하늘의 생명)을 거저 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하느님의 은혜의 말씀(계명)을 인간의 말 계명()으로 받아 인간 스스로의 의로움으로 구원을 얻도록 가르치고 배워 많은 이들이 그 하늘의 용서와 의로움을 받지 못한 그 가난한 이가 되었다그래서 죄 의식에 사로잡혀 하느님의 용서 그 해방을 모르고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무거운 짐 같은 신앙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을 오늘 해방 시키라 하시는 것이다.

 

오늘 독서의 말씀으로 깨닫고자 한다.~

(1코린 2,1-7) 형제 여러분나도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의 뛰어난 언변과 지혜로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 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유다인들에게는 걸림 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 인 것이고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신 것이다.(1코린1,22-23)

 

그래서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령께 의탁하여 깨달은 그 하느님의 지혜를 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지혜로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하느님의 지혜인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 그 해방의 기쁜소식그 은총의 말씀을 못 들어 죄에 잡혀 가난한곧 구원의 진리 그 하느님의 은혜은총이신 그리스도를 못 알아보는 눈먼 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성숙은 인간의 지혜가 구원의 어리석음 임을 아는깨닫는 것이다.(1코린1,21)

 

7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많은 지도자들께서 세상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복음과 연결 시켜 말씀들 하시는데그것은 참으로 위험하고 잘못된 가르침인 것입니다.

세상의 그 감동적인 이야기는 사람의 도리이지 구원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사람의 도리를 잘 지켜서 받는 구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곧 하늘(예수)의 대속의 죽음으로 받는 소금과 같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 약속그 은혜의 말씀으로 받는 것이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그래서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약속그 말씀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또 내일도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오늘 인간의 지혜의 길그 계명에서 하느님의 지혜의 길곧 십자가의 길그 복음으로 돌아오면 구원 또한 살아있는유효한 것입니다.

 

(히브4,1) 1 그러므로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아멘. ♡♡♡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안식일 금지법 제39. 호짜아흐(Hotza'ah) - 운반하기

율법은 안식일에 개인영역에서 공공영역으로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물건을 옮기기운반하기던지기밀기 등을 금지한다공공영역의 한 장소에서 대략 2미터 이상 물건을 운반할 수 없다.

그러니 떨러뜨릴수가 없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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