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4일 월요일
[연중 제7주간 월요일] 벙어리 영 치유 (마르 9,14-29)
하늘에서 오는 지혜는 순수하고,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다. (야고 3,13-18)
13 여러분 가운데 누가 지혜롭고 총명합니까? 그러한 사람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하게 살아, 자기의 실천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14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속에 모진 시기와 이기심을 품고 있거든, 자만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15 그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이고 현세적이며 악마적인 것입니다.
16 시기와 이기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행도 있습니다.
17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수하고, 그다음으로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18 의로움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이들을 위하여 평화 속에서 심어집니다.
화답송 시편 19(18),8.9.10.15(◎ 9ㄱㄴ)
◎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네.
○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
○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
○ 주님을 경외함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 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
○ 저의 반석, 저의 구원자이신 주님, 제 입으로 드리는 말씀, 제 마음속 생각,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를 치유해 주시고, 기도로 그 영을 쫓아낼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마르 9,14-29)
14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 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15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7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18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20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21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22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24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5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27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연중 제7주간 월요일 제1독서 (야고3,13-17)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속에 모진 시기와 이기심을 품고 있거든, 자만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이며 현세적이며 악마적인 것입니다." (14-15)
야고보서 3장 13절에서 야고보는 온유 안에서 드러나는 선행으로 참된 지혜를 입증해야 한다는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야고보서 3장 14~16절은 이와 반대로 시기와 이기심이라는 특징을 지니는 세상의 악한 지혜에 대하여 말한다.
야고보는 13절 후반절에서 언급된 온유한 사람과 대조적으로 '모진 시기와 이기심'을 품은 사람을 14절에서 거론하고 있다. 여기서 '모진 시기와 이기심'은 타락한 본성에서 맺어지는 열매이다.
먼저 '시기'로 번역된 '젤론'(zellon)의 원형 '젤로스'(zellos)는 '열심', '열정'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시기', '질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이 단어가 신앙을 유지함에 있어서 하느님께 대한 의인의 거룩한 열심히라는 긍정적 의미로도 사용되지만(요한2,17; 로마10,2; 2코린9,2; 11,2; 필리3,6; 히브10,27) 여기서는 잘못된 열심 즉 그리스도인을 대항하는 유다인의 열심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의 열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사도5,17; 13,45; 로마13,13; 갈라5,20등).
그리고 이 단어를 수식하는 '모진' 혹은 '독한'으로 번역될 수 있는 '피크론'(pikron)은 3장 11절에서 '쓴 물'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하다.
모진 시기는 남에 대한 열등감에서 오는 시기심, 또는 남의 가치를 애써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되어 비방을 일삼는 태도를 말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악한 감정을 앞세워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시기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기심'으로 번역된 '에리테이안'(eritheian)의 원형 '에리테이아'(eritheia)는 '이기적 야심', '파당심', '강한 당파 근성'이라는 뜻으로서 자신만을 내세우려고 저급한 술책도 불사하는 이기적 태도를 의미한다.
이 악은 또한 '모진 시기'와 같이 갈라티아서 5장 20절에 열거되어 있는 육체의 열매 중의 하나로 거기서는 '파당'의 의미를 갖고 번역되었다.
사실 인간이 모인 모임에서 그 조직체를 붕괴시키는 가장 큰 암적 요인은 이와같은 이기적 야심에서 비롯되는 파당심이다. 따라서 초대 교회의 지도자적인 중심 인물인 야고보는 교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시기와 이기심의 추악함을 본 서간의 수신자들에게 부각시키는 것이다.
'자만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당시 교회 안에는 모진 시기와 이기심, 즉 이기적 야심이 가득한 사람 중에 자신이 지혜롭다고 자랑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이 보여주는 모진 시기와 이기심 자체가 이미 그들의 지혜가 거짓됨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동은 그 사람의 진리의 가르침과 유배되기 때문이다. 그런 자에게 야고보는 경고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마십시오'로 번역된 금지 부정의 '메'(me)는 '자만하거나'로 번역된 '카타카우카스테'(katakauchasthe)와 '거짓말을 하지'에 해당하는 '프슈데스테'(pseudesthe)를 모두 지배한다.
그런데 '카타카우카스테'에는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다. 여기서 숨겨진 목적어는 교사가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지혜'(13절)이다.
모진 시기와 이기심이 가득한 자가 자신에게 지혜가 있다고 자랑하게 된다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 지혜를 모독하게 된다.
그리고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라는 뜻 단순히 교사는 교회 안에서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마음속에 모진 시기와 이기심을 품고 있다면 그가 가르치는 진리에 역행하여 거짓말을 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연중 7주 월요일 복음 (마르 9,14-29)
믿음과 사랑을 통한 치유
“주님,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 9,2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를 고쳐주는 것에 실패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19,29)고 하시면서 실패의 원인이 기도하지 않은 데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한편 마태오 복음은 실패 이유를 “믿음이 약한 탓”(17,20)이라고 전하는데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아니고서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할 수 없다"고 하신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까닭은 단지 기도 몇 시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 고칠 수 있다는 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아니시면 고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과의 깊이 일치를 이루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만남인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이 없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도한다는 것은 사랑 안에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내 안으로 모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때 내 안에 오신 주님께서 나를 도구 삼아 사랑을 드러내고 병을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영에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9,23)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칩니다(9,24). 이처럼 믿음에 기초한 예수님과의 대화가 바로 기도입니다.
병을 고쳐주시며, 온갖 불의를 물리치시고 해방으로 이끄시는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과, 자신의 믿음의 부족함을 겸손되이 고백하며 도와달라는 간절한 청원, 그리고 온 존재를 고스란히 맡겨드리는 의탁,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의 올바른 자세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아이 아버지의 대답은 이미 간절한 기도였고, 그 기도는 이미 하늘에 다다랐으며, 구름을 꿰뚫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9,24)라는 아이 아버지의 간절한 기도를 진실한 신앙고백으로 기쁘게 받아들이시어 그 아들을 고쳐주십니다.
믿음은 사랑을 부르고, 그 사랑으로 아이의 병이 나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믿음도 사랑도 부족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까닭은 믿음이 약한 탓이고, 기도하지 않은 탓이었습니다.
오늘 다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재확인해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과연 무슨 일을 할 때나 누군가를 만날 때, 특히 고통과 시련, 사회적 불평등과 불의 앞에서 하느님께 대한 강한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어본 적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유와 해방, 몸과 마음의 치유을 바란다면 그만큼 더 강한 믿음과 사랑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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