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토요일] 측은 지심 (마르 6,30-34)

2020. 2. 8. 오전 7: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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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간 토요일] 측은 지심 (마르 6,30-34)

   

주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주시고, 다른 축복도 약속하신다. (1열왕 3,4-13)

4 솔로몬은 제사를 드리러 기브온에 갔다. 그곳이 큰 산당이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그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천 마리씩 바치곤 하였다.

5 이 기브온에서 주님께서는 한밤중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느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솔로몬이 대답하였다. “주님께서는 당신 종인 제 아버지 다윗에게 큰 자애를 베푸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당신 앞에서 진실하고 의롭고 올곧은 마음으로 걸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그에게 그토록 큰 자애를 내리시어, 오늘 이렇게 그의 왕좌에 앉을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7 그런데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당신 종을 제 아버지 다윗을 이어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만,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8 당신 종은 당신께서 뽑으신 백성, 그 수가 너무 많아 셀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당신 백성 가운데에 있습니다.

9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10 솔로몬이 이렇게 청한 것이 주님 보시기에 좋았다.

11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곧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12 ,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너 같은 사람은 네 앞에도 없었고, 너 같은 사람은 네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13 또한 나는 네가 청하지 않은 것, 곧 부와 명예도 너에게 준다. 네 일생 동안 임금들 가운데 너 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화답송 시편 119(118),9.10.11.12.13.14(12)

주님,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젊은이가 어떻게 제 길을 깨끗이 가리이까? 오로지 당신 말씀 지키는 것이옵니다.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찾나이다. 당신 계명 떠나 헤매지 않게 하소서.

행여 당신께 죄를 지을세라, 마음 깊이 당신 말씀 간직하나이다.

주님,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당신 입에서 나온 모든 법규, 제 입술로 이야기하나이다.

온갖 재산 다 얻은 듯, 당신 법의 길 걸으며 기뻐하나이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측은히 여기시며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다. (마르 6,30-34)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제1독서 (1열왕3,4-13)


그 무렵 솔로몬이 제사를 드리러 기브온에 갔다.  그곳이 큰 산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그 제단에서 번제물을 천 마리씩 바치곤 하였다."  (4)


기브온은 사울 당시 놉의 사제들이 죽임을 당한 이후(1사무22,11-19) 주님의 성막이 옮겨진 곳으로(1역대16,39; 21,29) 주님의 궤가 있었던 예루살렘(2사무6,17)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공동 성소(聖所)가 되었다.


이곳에는 후르의 손자이며 우리의 아들인 브찰엘이 만든 청동 제단이 주님의 성막앞에 있었으며, 그 신당의 규모도 매우 컸다. 따라서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바치기에 이 기브온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다(2역대1,2-6).


'번제물을 천 마리씩 바치곤 하였다.'


솔로몬이 기브온에 내려간 목적 하느님께 제사,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번제물'로 번역된 '올로트'(olloth)의 원형 '올라'(olla) '바치다', '올라가다'(창세49,10), '올라가다','상달하다'(탈출2,23)라는 뜻을 가진 동사 '알라'(alla)에서 유래된 명사로서 동물을 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창세8,20), 즉 번제(Burnt of offering)나 혹은 번제로 드려질 짐승(번제물; 레위1,4)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의 표현 자체만으로는 일천 번의 번제를 바쳤다는 표현일 수도 있으며, 혹은 일천 마리의 번제물을 바쳤다는 표현일 수도 있다.


솔로몬은 기브온이 당시 이스라엘에 있어서 유서깊은 성지일 뿐 아니라 그곳에 대규모의 제사를 바치기에 적합한 큰 규모의 산당이 있었기 때문에 기브온으로 갔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한몫에 제물을 바쳤다고 할지라도 본 제사는 7~8일 정도 걸리는 엄청한 규모의 제사 예식이었을 것이다.


한편 '번제'는 피를 청동 제단 사방에 뿌린 후, 가죽을 제외한(레위7,8) 제물 전체를 불살라  바치는 제사로서(레위1,5-9),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충성과 헌신을 상징한다(레위9,12-14.16).


솔로몬은 이처럼 순종과 헌신의 의미가 반영된 번제를 바침으로써, 자신을 하느님의 간택된 백성인 신정(神政) 왕국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세워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앞으로의 통치 행위가 단순히 정치적이고 행정적인 다스림이 아닌 하느님께 대한 헌신의 과정으로 바치겠다는 다짐과 더불어 이러한 자신의 통치 위에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곧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고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11)


'장수'에 해당하는 '야밈 랍빔'(yamim rabbim; long life)은 직역하면 '많은 날들'이다. 이 '장수'는 한평생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신명5,33), 또는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시편91,16)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함으로써(잠언10,27) 얻을 수 있는 축복 중의 하나로서, 동서 고금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는 소원이다.


또한 '부를'에 해당하는 '오셰르'(osher; wealth, riches)는 '부유하다', '풍부하다'(에제27,33), '윤택하다', '좋다'(시편65,9), '부자가 되다', '부요하다'(욥기15,29)라는 뜻을 가진 '아샤르'(ashar)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재물'(창세31,16), '부귀'(부와 영광; 2역대17,5)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물질이 많아져 부자가 되는 것 뿐만 아니라 필요 적절한 시기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는 하느님의 은총을 누리는 것 근심이 없는 평화와 안정의 상태에 이르는 것, 그리고 세상에 알려져 사람들로부터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것까지 다 포함한다.


끝으로 '원수'에 해당하는 '오예베카'(oebeka; your enemies)는 개인적으로 원한을 갖게 된 적대자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원한을 갖고 있는 적대국을 의미하기도 한다(여호24,11; 판관16,23). 따라서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는 것'은 군사적 승리까지 포괄하는 의미이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12)


'지혜롭고'에 해당하는 '하캄'(hakam; a wise)는 이성적 명철함을 의미하는 '지혜'(신명4,6), 인생의 경험으로부터 생겨나는 기민한 처세술을 의미하는 '영리함'(2사무13,3), 그리고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기억함 의미하는 '지각', '약삭빠름'(예레4,22)이라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어떠한 형편에도 굴하지 않고 기지로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지혜 또한 이성적인 탁월함, 그리고 사물의 원리를 깨닫고 기억할 수 있는 뛰어난 지능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분별하는'에 해당하는 '웨나본'(wenabon; discerning, understanding)의 원형 '삔'(bin)은 앞의 9절에도 나오지만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선과 악을 구분하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과 선악의 진위를 깨달아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이 청한대로 이스라엘을 잘 다스리고 공정히 재판할 수 있는,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과 지적 깨달음, 그리고 더 나아가 인생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지혜와 지능이 겸비된 탁월한 지적 능력을 선물로 주셨던 것이다.




  연중 제4주간 토요일 복음(마르6,30~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34)


여기서 '목자'로 번역된 '포이메나'(poimena; a shepherd)는 '포이멘'(poimen; 1베드2,25)의 목적격 단수이다. 신약에서 '포이멘'(poimen)이 여기처럼 단수형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다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마태26,31; 히브13,20).


하지만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목자' 예수님처럼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를 뜻한다. 당신 군중들을 인도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 즉 당시에 존경받던 랍비들이나 말씀을 가르친 율법학자들은 참된 의미의 목자가 아니었다.


마르코 복음 6장 34절(ㄴ)에서 동사 두 개 하나는 직설법으로 쓰였고, 다른 하나는 분사로 쓰였다.

'목자 없는' '없는' 분사로 쓰인 '에콘타'(echonta; having)의 시제는 현재이며, '같았기 때문이다' '같았기' 직설법으로 쓰인 동사 '에산'(esan; they were)의 시제는 미완료 과거이다.


이것은 벳사이다 들판에 몰려든 큰 군중들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목자 없는 양들 같은 삶', 즉 참된 영적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채 목적없이 방황하는 삶을 살아 왔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들에게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은 더더욱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군중들에 대한 예수님의 애끓는 감정을 묘사한 단어가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이다.


여기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에 해당하는 '에스플랑크니스테'(esplangchnisthe; was moved with compassion) 원형 '스프랑크니조마이'(splagchnizomai)는 '창자' 혹은 '내장'을 의미하는 '스플렌'(splen)에서 유래했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이 내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으며, 그래서 이 용어는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사랑이 전제되어 상대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측은지심' (연민의 정; 동정심)의 마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마태9,36).


이것은 이 용어가 루카 복음 15장 20절에서,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돌아오는 아들이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아들임을 알아채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는 아버지가 가졌던 마음을 묘사하는 데도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도 바로 이같은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사랑의 마음이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복음 선교와 선행과 치유의 밑바닥에는 이같은 측은지심이 깔려 있어야 하고, 전제되고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목자 없는 양들 같은 군중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신다.

여기서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가르쳐 주기'에 해당하는 '디다스케인' (didaskein; to teach; teaching) 현재형으로서 그 가르침이 쉬지 않고 계속 베풀어지고 있었음을 나타낸다(마르6,35).


그리고 본문과 병행 구절인 루카 복음 9장 11절에서 이 가르침이 '하느님 나라'에 관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으며, 여기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목자로서의 첫번째 행위가 '가르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4장 14절에서는 병자들을 고쳐 주신 것으로 되어 있고, 루카 복음 9장 11절에서는 말씀과 치유가 둘 다 언급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로서 자신을 찾아온 가엾은 양들에게 영적 양식과 육적 회복을 다 베푸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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