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3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더러운 영 (마르 5,1-20)

다윗 임금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쫓기게 되자, 그는 주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한다. (2사무15,13-14.30; 16,5-13ㄱ)
13 전령 하나가 다윗에게 와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렸습니다.”
14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어서들 달아납시다.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압살롬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오. 서둘러 떠나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가 서둘러 우리를 따라잡아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고, 칼날로 이 도성을 칠 것이오.”
30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계속 올라갔다.
16,5 다윗 임금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울 집안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그곳에서 나왔는데, 그의 이름은 게라의 아들 시므이였다. 그는 나오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6 온 백성과 모든 용사가 임금 좌우에 있는데도, 그는 다윗과 다윗 임금의 모든 신하에게 돌을 던졌다.
7 시므이는 이렇게 말하며 저주하였다. “꺼져라, 꺼져! 이 살인자야, 이 무뢰한아!
8 사울의 왕위를 차지한 너에게 주님께서 그 집안의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돌리시고, 그 왕위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 너는 살인자다. 이제 재앙이 너에게 닥쳤구나.”
9 그때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 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
10 그러나 임금은 “츠루야의 아들들이여, 그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 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11 그러면서 다윗이 아비사이와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 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12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 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13 다윗과 그 부하들은 길을 걸었다.
화답송 시편 3,2-3.4-5.6-8ㄱㄴ(◎ 8ㄱㄴ 참조)
◎ 일어나소서, 주님. 저를 구하소서.
○ 주님, 저를 괴롭히는 자들 어찌 이리 많사옵니까? 저를 거슬러 일어나는 자들 많기도 하옵니다. “하느님이 저런 자를 구원하실까 보냐?” 저를 빈정대는 자들 많기도 하옵니다. ◎
○ 주님, 당신은 저의 방패, 저의 영광, 제 머리를 들어 높이는 분이시옵니다. 제가 큰 소리로 주님께 부르짖으면,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시나이다. ◎
○ 주님이 나를 지켜 주시기에, 누워 잠들어도 나는 깨어나니, 나를 둘러싼 수많은 무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일어나소서, 주님. 저를 구하소서, 저의 하느님. ◎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에게 명령하신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마르 5,1-20)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연중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2사무15,13-14.30; 16,5-13ㄱ)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 그와 함께 있더 이들도 모두 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계속 올라갔다." (2사무15,30)
사무엘서 하권 15장 30절부터 37절까지는 반란자 압살롬을 피하여 합법적인 통치자 다윗이 비참한 모습으로 요르단으로 도망친 사실과 예전에 다윗의 고문이었던 길로 사람 아히토펠이 정권을 탈취한 압살롬의 편에 가담한 반면(2사무15,12), 에렉사람 후사이(2사무15,32)는 모든 권력을 잃어버린 다윗을 위해 헌신을 결단한 사실이 대조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무엘서 하권 저자는 다윗이 그의 고문인 아히토펠의 배반 소식을 들은 것과 후사이를 만나 그에게 첩자의 임무를 부여한 사실을 동시에 말하면서 다윗이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니며 일말의 희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는 고문인 아히토펠에게 배반을 당한 대신에 후사이라는 충실한 일꾼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후사이는 그 이전부터 다윗의 좋은 벗이었지만(2사무15,37), 다윗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위해 더없이 훌륭한 고문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한편 여기 나오는 '올리브'에 해당하는 '핫제팀'(hazethim; the Mount of Olive)는 키드론 시내 동쪽 언덕편에 있는 작은 산으로서, 올리브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 곳을 말한다.
또한 '고개를'로 번역된 '베마알레'(bemaalle)의 원형 '마알레'(malle)는 '올라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알라'(alla)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오르막', '고개', '언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올리브 고개'에 해당하는 원문의 정확한 의미는 '올리브산 언덕'이라는 뜻이다.
키드론 시내를 건너자마자 동편으로 오르막이 있고, 그 정상에는 올리브 산이 있기 때문에 원문이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나타내어 묘사한 것이다.
이제 다윗은 그곳을 '오르며 울었고,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고 묘사된다. 다윗이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올리브산 언덕을 세 가지 행동을 하면서 오르고 있다.
첫째, '머리를 가리고'에 해당하는 '웨로쉬 로 하푸이'(werosh lo hapui; and his head was covered)는 '그리고 그의 머리를 뒤집어 쓴 채'라는 뜻이다.
구약에서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머리를 감싸는 모습'과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쓰는 모습'이 있다.
전자는 몹시 수치스러운 상황에서 번뇌하는 모습을 나타내며(에스테르6,12), 후자는 몹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나타낸다(2사무13,19; 느헤9,1).
여기 본문에서 다윗은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쓰지는 않았지만, 그가 보인 행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나타내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피해야만 하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가 처량하고 수치스러워 그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둘째, 다윗은 '맨발로 걸었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웨후 홀레크 야헤프'(wehu hollek yahep; and he went barefoot)는 '그리고 그가 맨발로 걷고 있었다'는 뜻이다.
고대 근동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 행위는 노예들만 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면, 거룩하신 하느님 대전에서 자신의 수치스러운 죄를 회개하며 스스로를 겸허하게 낮추는 상징적인 행동이 된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느님을 만났을 때 발에서 신을 벗었는데(탈출3,5), 그것은 그가 선 곳이 거룩한 땅이었던 반면에 자신은 거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예루살렘성에서 요르단으로 도망치면서 자신의 현 상황이 범죄한 자신에 대한 거룩하신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따라서 다윗은 거룩하신 분 앞에서 자신을 의롭다고 할 만한 어떤 명분도 찾지 못하여 발에서 신을 벗은 채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모습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자신을 더없이 비참한 상황에까지 이끌고 가신 하느님 대전에 다윗이 어떤 항의도 하지 않고, 다만 참회하는 심정으로 섰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원문에서 '그'를 뜻하는 인칭 대명사 '후'(hu)가 사용된 것은 다윗이 임금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맨발로 걸었다는 사실을 다른 두 행동과 구별해서 강조하고 있다.
세째, 다윗은 울었다. 이러한 상황을 묘사하는 '우보케'(uboke; and wept)의 원형 '빠카'(baka)는 소리내어 크게 우는 모습을 나타내는 동사이다.
이것은 다윗이 비참한 형편에 처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한탄했다는 일반적인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본절 후반부에는 다윗을 함께 따랐던 백성들도 다윗과 같은 행동을 취했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윗 임금의 추종자들이 자신들을 임금과 운명을 같이하는 존재로 여겼음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즉 하느님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신정(神政) 왕국의 합법적 통치자 다윗이 반역자 압살롬을 피하여 왕궁을 버리고 도망가는 국가적 재난에 대해 다윗의 추종자들은 크게 슬퍼했던 것이다.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복음(마르5,1-20)
병행구절인 (마태8,28~34) 중에서 묵상글을 올립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29) ~~~예수님께서 "가라."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32)
영적 존재로서 영적 지각력이 뛰어난 존재인 마귀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을 향해 '하느님의 아드님'에 해당하는 '휘에 투 테우'(hye tou theu; the son of God)라고 불렀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사람들에 의해 고백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명칭은 아주 중요한 신앙고백적 명칭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 주는데, 이러한 사람들의 고백 이전에 더 먼저 마귀들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인지하였고, 예수님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에 해당하는 '티 헤민 카이 소이' (Ti hemin kai soi; what do you want with us)에서 '당신'으로 번역된 '소이'(soi)와 '저희'로 번역된 '헤민'(hemin)은 여격의 형태인데, 직역하면 '저희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무엇입니까?'이다.
이것은 '당신께서 저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또는 '저희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라는 뜻으로서 자신들의 주장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사적 질문이다.
그리고 '때가 되기도 전에'로 번역된 '프로 카이루'(pro kairou; before the time; before the appointed time)라는 표현은 먼저 마귀도 종말론적 심판과 그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권세의 종말이 올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하느님 나라가 임했지만 그 나라의 최종적인 완성과 마지막 도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한편, 구약에서 돼지는 굽이 갈라지고 그 틈이 벌어져 있지만 새기짐을 하지 않으므로 부정한 짐승으로 분류되어(레위11,7; 신명14,8) 그것을 먹는 일이 가증스런 일로 여겨졌다(이사65,4).
하지만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에 있어서 돼지는 주요 음식이었고, 돼지 사육은 주요 수입원이었다.
본 사건의 배경이 되는 가다라인들의 지방은 이방인들이 살던 지역이었으므로 돼지를 사육할 수 있었다.
병행구절인 마르코 복음 5장 11절에는 2천 마리라는 구체적인 수가 제시된 반면에, 마태오 복음사가는 능력을 행하시는 그리스도께만 초점을 맞추기 위해 구체적인 보도를 단순화시켜 '많은'에 해당하는 '폴론'(pollon; many)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마태오 복음 8장 22절에서 호수로 빠져들어간 주체인 '돼지 떼'를 단수형으로 취급했지만, 물에 빠져 죽은 존재에 대해서는 복수형으로 취급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여기에서 '돼지 떼'로 하여금 내리 달려 호수로 들어가게 만든 내면적 동인은 '마귀'가 제공했지만, 실제 죽은 것은 '돼지 떼'였음을 나타내는 문학적 기법을 썼다.
그렇다면, 왜 마귀는 돼지 떼 속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예수님께 청하였을까?
이것은 그곳 사람들의 재산에 손실을 입히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원인을 예수님께로 돌려 예수님을 경계하게 하고, 그 지방에서 떠나게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마태8,34).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아셨지만, 사람의 영혼 생명이 물질적인 재산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한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 마귀가 돼지 떼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셨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