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간 목요일] 등불의 비유 (마르4,21-25)

2020. 1. 30. 오전 5: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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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간 목요일] 등불의 비유 (마르4,21-25)

   

다윗은 주님께서 해 주신 일과 축복에 대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드린다. (2사무7,18-19.24-29)

18 다윗 임금이 주님 앞에 나아가 앉아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까?

19 주 하느님, 당신 눈에는 이것도 부족하게 보이셨는지, 당신 종의 집안에 일어날 먼 장래의 일까지도 일러 주셨습니다. 주 하느님, 이 또한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24 또한 당신을 위하여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당신의 백성으로 튼튼하게 하시고, 주님, 당신 친히 그들의 하느님이 되셨습니다.

25 그러니 이제 주 하느님, 당신 종과 그 집안을 두고 하신 말씀을 영원히 변치 않게 하시고, 친히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십시오.

26 그러면 당신의 이름이 영원히 위대하게 되고, 사람들이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또한 당신 종 다윗의 집안도 당신 앞에서 튼튼해질 것입니다.

27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당신께서는 당신 종의 귀를 열어 주시며, ‘내가 너에게서 한 집안을 세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종은 이런 기도를 당신께 드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28 이제 주 하느님, 당신은 하느님이시며 당신의 말씀은 참되십니다. 당신 종에게 이 좋은 일을 일러 주셨으니,

29 이제 당신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시어,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화답송 시편 132(131),1-2.3-5.11.12.13-14(루카 1,32참조)

주 하느님은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좌를 주시리라.

주님, 다윗을 기억하소서. 그의 모든 노고를 잊지 마소서. 그가 어찌 주님께 맹세하고, 야곱의 장사 하느님께 서원하였는지 기억하소서.

내 집 천막에 들지 않으리라. 내 방 침상에 오르지 않으리라. 이 눈에 잠도, 눈가에 졸음도 허락하지 않으리라. 내가 주님께 계실 곳을, 야곱의 장사 하느님께 거처를 찾아 드리리라.

주님이 다윗에게 맹세하셨으니, 돌이키지 않으실 약속이로다. “나는 네가 낳은 아들을 너의 왕좌에 앉히리라.”

너의 아들들이 내 계약을, 내가 가르치는 법을 지킨다면, 그들의 아들들도 길이길이, 너의 왕좌에 앉으리라.

주님은 시온을 택하시고, 당신 처소로 삼으셨네. “이곳은 길이 쉴 나의 안식처, 내가 원하였으니 나 여기 머물리라.”

 

예수님께서는 등경 위에 올려놓듯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하신다. (마르 4,21-25)

21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연중 제3주간 목요일 제1독서 (2사무7,18-19.24-29)


"당신 종에게 이 좋은 일을 일러 주셨으니, 이제 당신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시어,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28ㄴ-29)


여기서 다윗이 말하고 있는 '좋은 일'은 앞 문장과 연관 지으면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

 다윗은 하느님의 약속이 진리라는 사실 안에서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 약속의 말씀이 자기 세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원한 나라에까지 미치는 영원한 약속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처럼 다윗은 그 말씀이 선하신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약속으로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었기 때문에 좋은 일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로 번역딘 '웨앗타'(weatha; now) 사무엘서 하권 7장 18절 이후부터 계속되어온 기도의 결론적인 내용을 시작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한편 '기꺼이 ~ 해주십시오'로 번역된 '호엘'(hoel)은  사역형으로만 쓰이는 동사이며 명령형으로 사용되어 '~하기를 기꺼이하는 마음을 보이소서', '~하기를 기뻐하소서'로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복을 내리시어'로 번역된 '우바레크'(ubarek; to bless)는 '호엘'(hoel)과 직접 연결된 말로서, 따로 번역하기 보다는 같이 번역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호엘 우바레크'(hoel ubarek)를 번역하면 '축복하기를 기꺼이하소서', '축복하기를 기뻐하소서' 라고 할 수 있다.


다윗은 자신의 간구의 근거를 철저히 하느님의 말씀에 두었기 때문에, 간구하면서도  대담하게 하느님을 향해 '기뻐하소서'라는 명령형의 문장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윗은 하느님께서 말씀을 따라 행하시는 것을 절대적으로 기뻐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대담한 간구를 드린 것이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본문은 '왜냐하면'이라는 뜻의 이유 접속사 '키'(ki)로 시작하지만, 문맥으로 볼 때 이 부분은 앞 문장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앞문장에서 다윗이 주님께 '축복하기를 기꺼워하소서'라고 대담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복을 주시기를 기꺼워하소서. 왜냐하면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다윗은 간구의 근거를 철저하게 약속의 말씀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원문에는 여기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앞에 '주님의 축복으로', '주님의 은혜로'로 번역될 수 있는 '우밉비르카테카'(umibbirkatheka; and with your blessing)가 있는데, 새 성경은 이 번역을 뒷 부분에 있는 '당신의 복을'에서 '당신의'로만 번역하고 말았다.


'밉비르카테카'(mibbirkatheka)는 '~로부터'라는 뜻의 전치사 '민'(min)과 '축복'이라는 뜻의 '뻬라카'(beraka)와 2인칭 어미가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이것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복을 받게 하옵소서'라는 뜻의 '예보라크'(yeborak)와 함께 번역하면, '당신의 축복으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의 축복으로부터 복을 받게 하옵소서'로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을 통해 다윗은 다른 곳에서 축복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느님께로부터 축복을 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계약을 이어가는 간구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창세기 12장 2절, 3절에서도 아브라함에게 내리는 축복의 근원이 주 하느님께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을 볼 때 다윗은 자신에게만 어떤 새로운 축복이 내리기를 간구한 것이 아니라 구세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느님의 신실한 계약의 줄기에서 다윗 계약을 통하여 주신 하느님의 축복이 다윗의 왕조를 통해 이어져 가기를 간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담한 간구는 하느님께서 이미 그에게 다윗의 왕조를 영원한 왕조로 세우시겠다는 하느님 나라의 놀라운 계획을 다윗 계약으로써 보여주셨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2사무7,12).


이러한 다윗 계약과 다윗의 기도는 왕국 분열 이후 북부 이스라엘 왕조는 계속 바뀌었으나 남부 유다 왕조는 다윗의 자손으로 이어지는 축복으로 성취되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서 이 땅에 오심으로 완전하게 성취되었다.



연중 제3주간 목요일 복음(마르4,21~25)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2)


마르코 복음 4장 22절은 선문답처럼 금방 이해가 안되는 내용이다. 한글 새 성경이 원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르'(gar; for)를 번역하지 않아 마르코 복음 4장 22절이 앞 절인 4장 21절과 별개의 문장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가르'(gar; for) '왜냐하면'으로 번역하면, 4장 22절은 4장 21절의 종속절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4장 22절의 본문 자체도 부정어 '우'(ou; nothing) '메'(me; not)를 두 번 사용하여 강한 긍정을 나타내기 때문에 자구적 의미를 살려 직역하면, '왜냐하면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위해서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숨겨진 것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라는 유대인의 속담을 나타내는 것으로 봐야 한다(루카8.17참조). 그래서 본문의 의미를 정리하면, 첫째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사실이 비유로 설명되는 것은 언젠가 드러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마르코 복음 4장 21절에서 등불을 가져 오는 이유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놓아 빛을 밝히기 위한 것처럼,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사실이 비유로 선포되는 이유 온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이므로, 지금은 미약해 보여도 이 복음은 머지 않아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는 말이다 (마르16,15).


두번째로 이것은 메시야 비밀 사상과도 관련되는데,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마르1,43.44) 이유 역시 메시야가 아니시기 때문이거나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때에 드러내시기 위해서 그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다(마르15,2).


세번째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을 격려하는 의미가 있다.

일반 무리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천국은 감추어져 있는데 (마르4,10,13), 여기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이미 천국의 씨는 뿌려졌고(마르4,27), 그 씨가 아직은 미약한 단계이지만 곧 자라나(마르4,28) 크게 성장하면, 온 세상에 천국의 비밀은 공개될 것이라는 것이다 (마르4,32; 사도1,8; 5,12~16).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 구절은 마르코 복음 4장 22절 전반절 '~아니기 때문이다'에 해당하는 '우 가르'(ou gar; for nothing)에 이어지는 후반절이다.

'감추어진 것은 반드시 빛으로 드러난다'는 뜻으로서 전반절과 동의적 대구를 이루며, 앞의 내용과 같은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반복적 진술이다.


일반적으로 비밀의 강조와 유지는 그것을 영원히 덮어 두는 데에 있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도 있는데, 그것이 드러날 때 나타날 폭발력과 감동, 충격과 사람들의 반응을 위해 잠정적인 기간동안 비밀을 덮어 두는 경우도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알리시고자 하는 모든 비밀은 당신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 사건 뒤로 미루어지고 있는 것이다(마르9,9).




2013년1월 31일 연중 제3주간 목요일


 

2020130

[연중 제3주간 목요일] 등불의 비유 (마르4,21-25)

 

(마르 4,21-25)

21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 등불은 등경위에 놓습니다. 등경은 교회를 뜻합니다.(묵시1,20) 등불을 비추어 모든 사람들이 보게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함지- 그릇(루가복음)이라 합니다. 그릇- 테무트느 여자, 곧 피조물을 뜻하고 침상은 잠(죽음)을 뜻합니다.

등불-그 빛이 피조물 밑에 덥혀버리면 영원한 어둠, 죽음입니다. 그 빛이 잠, 어둠, 죽음을 덮어야 사는 것입니다.

그 빛- 등불의 의미입니다. 올리브를 찧어서 짠 순수한 기름을 태운 것이 등불입니다.(레위24,2참조)

올리브는 하느님을 뜻하는 것으로 하느님을 찧어 태운 것이 등불- 빛입니다. 그것이 신의 죽음의 모형입니다.

신이 죽어 내는 빛, 등불입니다. 그리고 그 빛은 어둠을 위한 빛, 사랑의 빛입니다.

 

요한1,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 등불은~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울의 생명, 빛이신 예수님 이십니다.

신의 죽음, 그 빛이 어둠속에 사는 그 죄인들을 비추어 그 죄인들을 살려내기 위한 생명의 빛, 예수님 이십니다.

등경, 교회에서 그 빛을 드러내어 사람들이 보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둠, 그 죄의 존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사랑의 빛이 우리의 생명(용서, 구원)의 빛임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구원의 참 사랑, 참 빛으로 선포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살게 해야 합니다. 피조물, 곧 인간들의 사랑으로 덮어버리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 학교에서 배운 인간의 도리, 도덕과 윤리의 그 사랑을 다시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러면 구원의 빛 그 하느님의 사랑이 덮쳐져 모두가 죽습니다.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빛, 말씀을 주어야, 가르쳐야 합니다.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 빛이 비추면 더러움 흠, 티가 드러납니다. 말씀을 들으면 우리 안에 감추어진 모든 죄악이 드러나야 합니다.

? 모든 죄악, 그 어둠, 죄 속에서 다시 살려내시려고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빛으로,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니 빛으로, 말씀으로 내 속에 감추어진 죄악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 안에 들어있는 죄 몫을 알려주십니다.

마르7, 20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 이 모든 죄악을 드러내야 합니다. 사람에게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앞에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감추어진 그 죄악을~ 말씀 속에 숨겨진 예수님의 대속, 그 죽음이 구원의 진리로 드러나 죄의 용서, 구원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십자가, 그 피난처에서 쉬라고, 자유 하라고 이끄십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인정하면)~ 우리 주님은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 그 의로움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1요한 1,9참조)

그러니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인정)하면 고백하는 만큼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죄를 되어서 드리는 만큼 용서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가진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우리 모두는 구원의 약속을 받아 가진자들 입니다. 그 하느님의 약속을 믿는 이는 그 약속의 용서가 실행될 것이고 그 약속을 믿지 못하면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그 약속이 모두 헛것이 되어 이미 받은 용서를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너희는 새겨들어라.’하신 그 이유를 아시겠지요?

등불은 그리스도의 대속, 그 죽음, 그 사랑의 빛입니다. 인간의 사랑을 말하는 교회가 아닌 하느님의 사랑을 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들끼리의 사랑은 인간의 도리이지 구원의 진리는 아니라는 말씀! 아시지요?

인간들끼리의 사랑에 만족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들끼리의 사랑으로 만족 해 한다면 , 하느님 사랑으로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건너갑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음, 그 사랑의 빛 속으로 들어가 참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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