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주간 수요일] 열병치유 (마르 1,29-39)

2020. 1. 15. 오전 6: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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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5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열병치유 (마르 1,29-39)

    

 

<제1독서> 엘리는 사무엘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기다리라고 이른다. 사무엘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다 (1사무 3,1-10.19-20)

그 무렵 1 소년 사무엘은 엘리 앞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었다. 그때에는 주님의 말씀이 드물게 내렸고 환시도 자주 있지 않았다.

2 어느 날 엘리는 잠자리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는 이미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하여 잘 볼 수가 없었다.

3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기 전에, 사무엘이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4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그가 .” 하고 대답하고는,

5 엘리에게 달려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6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7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8 주님께서 세 번째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는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님께서 그 아이를 부르고 계시는 줄 알아차리고,

9 사무엘에게 일렀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은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10 주님께서 찾아와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20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주님의 믿음직한 예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답송 시편 40(39),2ㄱㄴ5.7-8ㄱㄴ.8-9.10(89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주님께 바라고 또 바랐더니, 나를 굽어보셨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오만한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거짓된 자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

당신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두루마리에 저의 일이 적혀 있나이다. 주 하느님, 저는 당신 뜻 즐겨 이루나이다. 당신 가르침 제 가슴속에 새겨져 있나이다.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를 낫게 하신 뒤 많은 사람을 치유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신다 (마르 1,29-39)

 예수님께서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 (1사무3,1-10.19-20)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기 전에, 사무엘이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3~4ㄱ)

 

사무엘서 상권 3장 3절사무엘이 소명받은 시점과 장소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사무엘서의 저자는 본격적으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무엘을 '하느님의 등불', '하느님의 궤', '주님의 성전'이라는 하느님과 연관된 대상물과 더불어 등장시키고 있다.

 

이것은 사무엘서 저자가 타락한 엘리 가문에서는 하느님의 영광이 떠나가고 있지만,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하고 있는 사무엘에게는 하느님께서 함께 하셔서 당신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성소의 등잔대의 불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즉 해가 져서 해가 다시 뜨기 직전까지 켜도록 되어 있었다(탈출25,31-37; 27,31)

따라서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기 전에'라는 말은 사무엘이 날이 밝아오기 전에 깊이 잠들어 있을 때 하느님께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사무엘 상권 3장 3절은, 앞의 1절과 2절에서 주님의 말씀이 드물고 환시도 자주 없는 어두운 절망의 상황이 표현된 것에 반해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에 처한 이스라엘을 하느님께서 아직 포기하시지 않았다는 내면적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특히 사무엘 상권 3장 3절'아직 ~(아니하니)'에 해당하는 부정 부사 '테렘'(terem)의 사용이 이런 사실을 강하게 암시한다.

이 부사는 사무엘 상권 3장 7절의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라는 문구에서 다시 등장하지만, 이 단어는 말씀도 드물고 환시고 자주 없는 암물한 시대의 상황에서 사무엘이 누워있는 장소에는 '아직'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희망의 가능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다.

 

또한 여기서 '하느님의 궤'에 해당하는 '아론 엘로힘'(aron ellohim; the ark of god)이 언급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당시 사무엘은 '하느님의 궤'가 있는 지성소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성소는 대사제만이 일년에 한번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장소였기에 사무엘이 지성소에서 잘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무엘이 잠잔 장소를 '하느님의 궤'와 관련시키는 것은 '하느님의 궤'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하느님의 궤'는 십계명의 돌판이 들어 있기 때문에 '계약 궤'(민수10,33) 혹은 '증언 궤'(탈출26,33)라고도 불리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궤에 하느님께서 임재하신다고 믿었으므로, 절기 축제 행진이나 전쟁 때에 하느님을 찬양하고 승리를 기원하면서 항상 '계약 궤'를 앞세웠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궤를 상실한다는 것하느님의 영광이 이스라엘로부터 떠나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하느님 임재의 상징인 '계약 궤'가 있는 장소에 있었다고 저자가 굳이 밝히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는 사무엘의 신앙적인 태도를 나타냄과 동시에 앞으로 '하느님의 궤'를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쟁에서 빼앗기고 몰락하게 될 엘리 가문과 사무엘을 대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사무엘서 상권 3장 3절은 3장 4절부터 시작되는 사무엘의 소명 기사를 알리기 위한 일종의 서곡같은 역할을 한다.

 

점점 어두워지게 된 눈을 가지고 자기 처소에 누워있는 엘리 사제의 모습이 영적 무능함을 통한 하느님과의 관계 단절과 이스라엘의 몰락을 상징한다면,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고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 머물고 있는 사무엘의 무습은 빛으로 오시는 하느님과 만남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1주간 수요일 복음(마르1,29~39)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5)

 

'새벽 아직 캄캄할 때'에 해당하는 '프로이 엔뉘카 리안'(proi ennycha lian; very early in the morning)은 마르코 복음에 나타나는 시간에 대한 전형적인 이중 표현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르코 복음 1장 21절에서 38절까지에서 '낮'(21~31절), '해질녘'(32~34절), '새벽녘'(35~38절)에 이르는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러한 예수님의 하루 일과 시간표를 통해서 예수님의 활동이 잠시도 쉴 틈도 없이 매우 바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서 '새벽'으로 번역된 '프로이'(proi; in the morning)는 유대인의 시간 기준으로 계산하면, 네번째 밤인 새벽 3시부터 새벽 6시 사이의 시간을 말한다.

 

또한 '아직 캄캄할 때' 혹은 '미명(未明)에'로 번역될 수 있는 '엔뉘카'(ennycha; before day)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시간을 말한다.

 

이렇게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중적 표현을 사용해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편히 쉬는 시간에 깨어서 제일 먼저 기도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이곳을 포함해서 세 번 등장한다.

 

시간에 있어서 마르코 복음 1장 35절은 밤이 거의 끝나가는 새벽 무렵이고, 마르코 복음 6장 46절에서는 해가 진 이후인 저녁이었고, 마르코 복음 10장 32~42절에서는 한밤중이었다.

 

또한 모두 혼자 기도하셨거나, 제자들을 데리고 있었어도 따로 떨어져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그리고 공생활 활동 초기의 갈릴래아 선교, 활동 중간시기, 또는 활동 말기의 수난 이전 등 큰 사건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기도한 것으로 묘사되며, 큰 일을 앞두고 있을 때일수록 더욱 성부 하느님 대전에 열심으로 기도하셨음을 보여준다.

 

또한 위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의 기도는 바리사이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건함이나 신심있음을 과시하기 위해서 (루카18,11.12)나 교훈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성부 하느님과의 은밀한 친교를 통해 자신의 활동의 힘을 얻기 위해서 하는 기도였다(마태6,6).

 

그리고 '기도하셨다'에 해당하는 '프로세위케토'(proseycheto; prayed)원형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의 미완료 과거형이다.

희랍어에서 미완료 과거형은 과거 사실의 반복과 계속을 나타내므로, 예수님의 기도가 장시간 동안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16년 다해 연중 제1주간 수요일 - 박수칠 때 떠나라

 

♣ 치유와 해방으로 이끄는 사랑의 손길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

 

예수님께서는 열병을 앓고 있는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십니다(마르 1,30). 그분께서는 치유행위로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시고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신 것입니다. 치유는 주님의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요 지속적인 재창조 행위입니다. 그분의 치유로 해방의 기쁨을 맛보고, 부서지고 상처 난 모든 사람과 관계가 회복됩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고통을 해방시켜주는 것이 율법이나 관습보다 중요함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생명을 소중히 여기시어 치유해주심으로써 자유를 선사하십니다. 마귀를 쫓아내심으로써 하느님께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것들을 치워주십니다. 

 

시몬의 장모가 치유의 기쁨 속에 주님께 시중드는(1,31) 모습을 본 사람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 희망의 태양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해가 저물어 안식일이 끝나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옵니다.”(1,32) 치유와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이 온전한 해방의 길로 인도하시는 해방의 샘을 찾아온 것입니다. 

무엇이 시몬의 장모와 그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킨 것일까요?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보았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든 것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 늦은 밤에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데려온’ 많은 사람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고쳐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십니다(1,34). 그 극진한 사랑에 그들을 묶고 있던 모든 것들이 녹아내린 것입니다. 가로막고 있던 온갖 장벽이 무너져 내린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자유와 해방의 샘물을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언제 어디서든 모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함께 하시며’, 병을 고쳐주셨지요. 한 사람도 소홀히 대하지 않으시고 따뜻한 애정으로 품어주셨습니다. 맺힌 것, 막힌 것을 풀어주는 것은 사랑뿐이지요. 

종일 사람들을 치유해주신 예수님께서는, 다음 날 새벽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십니다. 사랑이신 분이 사랑을 한없이 펼치시고 자비를 호흡하시려고 하느님 안에 쉬신 것이지요.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붙들려 하지만 사랑이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를 향하여 순례를 계속하십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몸과 마음과 영혼이 아픈 나를 치유해주시려고 사랑의 손길을 내미십니다. 나의 낮은 자존감, 부정적인 사고, 왜곡되고 불합리한 사고방식, 절망과 체념의 병에서 해방시켜주시는 분은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이 사회의 갈등을 풀어가고 불의에 저항할 힘을 주시고,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라 사랑으로 묶이고 맺힌 것 풀어내고, 아픈 곳 서로 어루만져주며 자유와 해방의 길을 꿋꿋이 걸어갔으면 합니다. 

 

연중 제1주간 수요일(1/15)

 

2020115[연중 제1주간 수요일] 복음 (마르 1,29-39)

29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 시몬과 안드레아가 함께 사는 집입니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아직 물이 나오지 못한, 시몬(자갈-물이 없음)의 집입니다. 하느님의 진의, 진리 곧 대속으로 얻는 치유(용서)의 말씀()이 아닌 소문으로 들은~~

그래서 물(말씀), 그 복음이 없어서 자신의 의로움을 위해 참고 또 참았던 그 열병()이 난 장모( 여자-그릇. 피조물)입니다. 사위와 그의 동생까지 함께 사는 장모의 화병입니다.

그 사정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손(말씀, )으로 화를 덮으시니 화가 쫓겨납니다. 말씀을 대속(십자가)의 그 하늘의 진리로 받으면 질서(치유)가 일어납니다.

 

히브1,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 -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10,7) 하신 그 문입니다.

 

요한 10, 1 “내가 진실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길이 생명 곧 구원의 문,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요한14,6)

예수님만이 치유의 문,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치유는 용서를 뜻합니다. (마태9,2참조)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질병 또한 마귀()의 거짓을 들은 영적인 병입니다. 말씀을 도덕과 윤리로 보고 들으면(가르침) 신앙이 짐이 되고 독이 되어 마음도 몸도 아프게 됩니다.

그것이 모든 질병의 뿌리인 것입니다. 그 뱀의 말, 질병의 뿌리인 인간의 말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심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대속 그 의로움을 먼저 찾아야 ,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마태6,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치유, 용서)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 무슨 기도를 하셨을까요? 병자 치유, 용서가 당신 목숨 값임을 아시기에(마르10,45참조) 구원의 아버지의 뜻을 기억하지 않으셨을까요? 그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계속 하시기 위해 힘을 얻으시려고요~~

우리 또한 그렇습니다. 성경 속 구원의 진리, 그 십자가의 대속의 말씀(약속)을 기억하는 그 기도를 했을 때 하느님의 약속으로 힘을 얻을 수 있고 또 거짓말, 거짓 가르침에 속지 않아 질병에 걸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 기도로 힘을 얻으시고 계속 일하십니다. 당신의 죽음을 향한 일인 것입니다. 죄인들을 당신 자신처럼 생각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사랑)입니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 마귀의 거짓 그 힘은 복음으로만 쫓아낼 수 있습니다. 복음으로만 영, 육의 질서를 이룰 수 있음입니다.

(바라크)은 하느님의 생명력입니다. 그 복, 하늘의 생명은 하느님으로부터 흘려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삶, 그곳이 천국입니다. 그런데 선악의 도덕과 윤리로 거짓 가르침으로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생명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 삶이 지옥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간들의 계명으로 사는, 그래서 그 하느님의 계명에서 끊어진, 하느님의 원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는 죄인들입니다. (필리3,18참조) 그래서 자신처럼 생각하시는 죄인들에게 복(생명력)이 들어있는 그 복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생명력 그 복을 다시 흘려 받을 수 있도록 그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요한4,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 사람의 물, 그 가르침은 곧 죽을 것이지만 하느님의 물, 말씀은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지금도 그 말씀은 계속 흐르고 계십니다. 지금도 일하고 계시니까요~~!!!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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