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주간 월요일]부르셨다 (마르 1,14-20)

2020. 1. 13. 오전 6: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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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3일    

[연중 제1주간 월요일]부르셨다 (마르 1,14-20)

 

한나는 엘카나의 아내이고,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프닌나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1사무 1,1-8)
1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춥족의 라마타임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엘카나였는데, 에프라임족 여로함의 아들이고 엘리후의 손자이며, 토후의 증손이고 춥의 현손이었다.
2 그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다. 한 아내의 이름은 한나이고, 다른 아내의 이름은 프닌나였다.
프닌나에게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3 엘카나는 해마다 자기 성읍을 떠나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주님께 예배와 제사를 드렸다. 그곳에는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가 주님의 사제로 있었다.
4 제사를 드리는 날, 엘카나는 아내 프닌나와 그의 아들딸들에게 제물의 몫을 나누어 주었다.
5 그러나 한나에게는 한몫밖에 줄 수 없었다. 엘카나는 한나를 사랑하였지만 주님께서 그의 태를 닫아 놓으셨기 때문이다.
6 더구나 적수 프닌나는,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놓으셨으므로, 그를 괴롭히려고 그의 화를 몹시 돋우었다.
7 이런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주님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프닌나가 이렇게 한나의 화를 돋우면, 한나는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8 남편 엘카나가 한나에게 말하였다. “한나,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도 않고 그렇게 슬퍼만 하오? 당신에게는 내가 아들 열보다 더 낫지 않소?”

 

화답송  시편 116(114─115),12-13.14와 17.18-19ㄱㄴ(◎ 17ㄱ 참조
◎ 주님,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나이다.
○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
○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며, 주님 이름 부르나이다. ◎
○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주님의 집 앞뜰에서,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를 시작하시며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다. (마르 1,14-20)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20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연중 제1주간 월요일 제1독서 (1사무1,1-8)

 

"더구나 적수 프닌나는,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놓으셨으므로,  그를 괴롭히려고 그의 화를 몹시 돋우었다."  (6)

 

한나의 불임 사실사무엘 상권 1장 5절에 이어서 6절에서도 반복됨으로써 한나의 절망적 상황이 다시 한번 더 강조된다.

 

5절'주님께서 그의 태를 닫아 놓으셨기'에 해당하는 원문은 '와이흐와 싸가르 라흐마흐'(waihwah sagar rahmah; but the lord had closed her womb)인데, 6절에서는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놓으셨으므로'에 해당하는 원문이 '키 싸가르 예흐와 뻬아드 라흐마흐'(ki sagar yehwa bead rahmah; because the lord had closed her womb)로서, '뻬아드'(bead)라는 전치사가 더  첨부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뒤에'(behind), '위에'(up)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뻬아드'(bead)'못하게', '닫아'로 번역된 '싸가르'(sagar; had shut)와 결합하여 강조의 의미가 6절에 부가되었다.

 

사무엘서 저자는 주어 '주님께서'에 해당하는 '와이흐와'(waihwah)문장 서두에 배치시켜서, 한나가 임신하지 못하는 것이 한나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5절의 본문을 직역하면 '그러나 주님께서 그녀의 자궁을 닫았다'인데, 이것은 아이를 임신하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에 대한 히브리식의 완곡어법이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은 신(神)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겨졌다. 구약에서도 다산(多産)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상징으로서 자녀가 없음은 축복받지 못한 결과로 많이 나타난다(창세13,16; 15,5; 16,10).

 

그런데 여기 본문의 경우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 특별한 경우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한나의 경우에는 하느님의 특별한 계획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특별한 계획으로 하느님께서 여인의 자궁(태)을 닫아 임신하지 못하게 한 경우가 성경에 가끔 나타난다. 하느님께서는 사라이의 태를 닫으셨으며(창세16,2), 레베카의 태를 닫으셨고(창세25,21), 라헬의 태(창세29,21)도 닫으신 적이 있다.

 

이들은 모두 구세사의 중요한 인물들인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아내들로서 고통스러운 불임의 시기를 지난 후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사악, 야곱, 요셉과 같은 아들을 얻었다.

 

이런 이스라엘 족장들의 역사를 잘 알고 있던 사무엘서의 독자들은 이러한 본문의 내용을 통해 이제 앞으로 한나도, 사라이가 이사악을 낳고 라헬이 요셉을 낳은 것처럼, 위대한 신앙의 인물을 낳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이러한 일들이 만군의 주님이신 하느님의 절대적 주권의 역사하심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짐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본문은 사람의 잉태가 하느님의 절대적 주권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하느님께서 태를 닫으시면 새로운 생명을 볼 수 없고, 반대로 하느님께서 태를 여셔야 사람이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생명의 원천은 하느님께 있으며, 동시에 하느님의 절대적 주권의 역사하심은 한나 개인의 삶을 뛰어넘어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적수 프닌나는'

 

원문에는 '프닌나'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고,  '(그) 적수'로 번역된 '차라타흐'(tsarathah) 가 나온다. '차라타흐'(tsarathah)'고통', '환난'의 의미의 명사 '차타'(tsarah)여성 3인칭 단수 소유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로서 직역하면 '그녀의 고통'이다.

 

여기서는 이 단어가 의인화되어 '그녀에게 고통을 가져오는 자'라는 의미의 '대적', '적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영어 성경은 '경쟁자'(rival)나 '적대자'(adversary)로 번역하였다.

프닌나를 이처럼 한나의 적수로 표현한 것은 한나 자신의 평가가 아닌 사무엘서 저자의 평가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무엘서 저자가 평가를 통해 남편인 엘카나가 '특별히 좋은 것이나 가치있는 것을 주었다'는 의미의 '한몫'을 준다는 이유(1사무1,5)와 또 아이를 못낳는다는 이유로 한나를 멸시한 프닌나의 악하고 교만한 성품을 알 수 있다.

 

프닌나는 자신에게 자녀들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축복을 이용하여 상대적으로 위축된 상태에 있는 한나를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적대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프닌나가 괴롭히려고 그의 화를 몹시 돋우게 한 것에 대한 한나의 반응단지 울기만 하고 아무 것도 막지 않으며(1사무1,7),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이었다(1사무1,10).

 

'그를 괴롭히려고 그의 화를 몹시 돋우었다'

 

프닌나는 자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으로부터 자신보다 더 사랑을 받는 한나를 시기 질투하여 괴로움과 고통을 주면서 한나를 적대했다.

 

'화를 몹시 돋우었다'에 해당하는 '웨키아쌋타'(wekiassatha)의 원형 '카아쓰'(kaas; provoke)'분노를 일으키다'(신명4,25), '진노하시게 하다'(신명31,29), '화를 돋우다'(판관2,12)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주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 때문에 나타내신 격렬한 감정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신명9,18; 1열왕14,7; 2역대33,6).

 

또한 '그를 괴롭히려고'에 해당하는 '빠아부르 하레이마흐'(baabur hareimah)에서 '빠아부르'(baabur)'때문에'(for)라는 의미의 전치사이며, '하레이마흐'(hareimah; to make her fret; in order to irritate her)는 원형 동사 '라암'(raam)사역형 부정사 연계형인데, 직역하면 '그녀를 괴롭히려고', '그녀를 괴롭게 만들기 때문에'이다.

 

프닌나가 한나를 어느 정도로 고통스럽게 했는지는 '괴로움을 당하다'라는 의미의 '라암'(raam)이라는 단어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사무엘서에서 이 단어는 모두 네 번 사용되는데, 이 본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연 현상 중의 하나인 '천둥', '우뢰'( 1사무2,10; 7,10; 2사무22,14)를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늘에서 벼락과 함께 들리는 천지를 뒤엎을 듯한 '천둥 소리'는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는데, 사무엘서 저자는 바로 이 단어를 사용해서 프닌나에게 고통을 받고 있는 한나의 마음 상태를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 단어는 한나의 기도와 함께 특별한 의미를 갖는데, 사무엘서 상권 2장 10절에서 한나는 하느님께서 맞서는 자를 '천둥'으로 호령하실 것이라고 고백함으로써, 현재는 프닌나가 한나의 마음을 '천둥'과 같은 상태로 괴롭히지만, 결국에는 하느님께서 '천둥'과 같은 심판으로 그 서러움을 갚아 주실 것임이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

 

연중 제1주간 월요일 복음(마르1,14~20)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7)

 

한글 새 성경에 '오너라'라고 번역된 '듀테'(deute; follow) 둘 또는 그 이상을 부를 때 사용되는 부사로서 동사적 의미도 갖는다.

즉 이 단어가 동사로 쓰일 때에는 '이쪽으로 오다', '자 오라' 등의 뜻으로 상대를 재촉하고 명령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따라'로 번역된 '오피소'(opiso; after)는 장소적 의미로서는 '~뒤에', 시간적 의미로서는 '~후에'라는 의미를 가진 전치사이므로, '내 뒤에 오라'(follow me)는 뜻이다.

그런데 이 명령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단호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제자로 부르시면서 내린 단 한마디 '나를 따라오너라'는 명령안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순전히 당신 자신만을 뒤따를 것을 원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들이 자신의 계획에 따라 자신들이 스스로 인생 행로를 결정하고 그것에 책임지는 삶을 살아 왔지만, 이제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에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고, 오로지 그분의 뜻만을 쫓아 살아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시면서 외형적인 직업이나, 재산, 그리고 가족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버려야 하는 자아 부정의 삶과 그러한 결단을 요구하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and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사람낚는 어부'로 번역된 '할리에이스 안트로폰'(halieis anthropon; fishers of men)에서 '안트로폰'(anthropon)은 보편적인 '사람'을 뜻하는 명사 '안트로포스'(anthropos)의 소유격 복수이다.

 

명사의 소유격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목적의 의미로 쓰였다.

말하자면 고기를 그물로 잡아들이는 어부와 같이, 사람들을 복음으로써 포획한다는 은유적 표현으로서, '사람들을 그물로 잡는 어부'의 의미로 '할리에이스 안트로폰'(halieis anthropon)이 쓰였다.

 

특히 여기서 관사없는 복수형으로 사용해서 어느 특정한 사람이 아닌, 모든 인류를 복음 전파의 대상으로 해야 함을 암시한다.

사실 복음 선포자 죄악과 어둠과 오류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는 인간들을 구원의 배안으로 모아들이는 사람 낚는 어부인 것이다.

 

여기서 특징적인 단어인 '포이에소'(poieso; i will make) '만들다','되게 하다'뜻을 지닌 동사 '포이에오'(poieo)의 미래 능동태 1인칭 단수이다.

따라서 그 '만드는' 행동의 주체가 부름받은 베드로와 안드레아가 아닌 부르신 예수님 당신 자신임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 스스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예수님 당신께서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도록 만들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제자로 부름받은 자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걱정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한편 당시 고대 그리스나 근동의 문화적 관습은 제자될 사람들이 스승을 찾아가 스스로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인데,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스승이신 예수님 당신 자신이 먼저 찾아가 능동적으로 제자들을 선택하여 부르신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 1장 17절에서 '나를 따라오너라'(come, follow me)는 말씀은 현재인데,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and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는 말씀은 미래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부르시는' 현재'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미래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적어도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며 함께 한 3년간의 시간들, 즉 성령 강림 이후 초대 교회에서 본격적으로 그들이 주님의 사도로서 활동을 했다면, 그 기간들은 수련 및 양성 기간, 오늘날의 사제 서품 전의 신학교 과정과 종신 서약 전의 수도 생활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유일한 생명(生命)의 출구(出口)-탈옥을 꿈꾸는 사람들-2013.1.14 연중 제1주간 월요일

 

 

 

[2020113] 연중 제1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마르 1,14-20)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본받으라고 오신 것이 아니라 당신을 붙들라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ek;ᅟᅵᆫ으로 자유하라고 오신 것입니다.

마르코1,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 ? 예수님은 요한이 잡힌 뒤에야 활동을 시작 하셨을까요?

 

루가16, 16 “율법과 예언자들의 시대는 요한까지다. 그 뒤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이 나라에 들어가려고 힘을 쓴다.

= 율법 또한 하느님나라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에 의한 길, 방법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구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로마3,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 율법과 상관없는 의로움, 곧 스스로의 의로움을 위한 신앙 그 율법으로는 불가능하기에 그 율법을 대신 완성하실 하늘의 의로움이 오셨다는 갓입니다. 그 소식이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마태20,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로마8,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

로마3,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하느님나라의 복음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회개(하마뜨리아 -가던 길에서 돌아서다) 스스로의 자기 의로움의 그 길, 방법을 버리고~~ 십자가가 주는 하늘의 의로움 그 복음으로 돌아서는 회개를 하라 하십니다. 그래서 다음번 절 버림을 강조하십니다.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 물고기를 잡을 때 그물이 필요하듯 사람을 낚을 때 또한 같습니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20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 율법의 아버지, 그물 배(교회)를 버리고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아버지, 그물, 배를 따랐다 입니다.

 

2고린5,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십자가)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율법)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용서)이 되었습니다.

= 그런데 공관복음 공히 제자 네 사람을 먼저 뽑으셨다 소개를 할까요? , 4는 땅의 숫자 땅의 구원을 완성을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본문15절에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셨습니다.

r 때가 차서, 그 말씀은 율법에 의한 죄가 드러나 다 찬, 그 때, (4)의 구원자가 오실 라는 말씀이지요.

 

로마7, 9 전에는 내가 율법과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계명이 들어오자 죄는 살아나고 10 나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생명으로 이끌어야 하는 계명이 나에게는 죽음으로 이끄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1 죄가 계명을 빌미로 나를 속이고 또 그것으로 나를 죽인 것입니다.

= 사실 율법의 계명 또한 하늘의 진리를 담고 있지만 거짓 가르침으로 많은 이들을 속인 것입니다. 뱀의 거짓으로 선악의 계명으로 먹었기 때문입니다.

12 그러나 율법은 거룩합니다.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13 그렇다면 그 선한 것이 나에게는 죽음이 되었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가 그 선한 것을 통하여 나에게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죄가 죄로 드러나게, 죄가 계명을 통하여 철저히 죄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 ()가 드러나야 죄가 철저히 죄가 되어야~~ 그 때에, 구원자 의사이신 예수님께서 그 죄()를 용서(고쳐)해 주시지요. 당신의 피(대속)로 그 죄, 씻어 주시지요.

그러니 나의 의로움을 위한 신앙에서 죄인들의 피난처, 곧 안식처인 십자가의 의로움을 위한 신앙으로 돌아서는 회개를 해야지요. 지금, 오늘 그렇게 돌아서서 대속의 십자가를 진리로 의지한다면~~~

그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十字架가 되어 용서로 참 안식을 주실 것입니다.

 

히브4, 1 그러므로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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