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요한 20,2-8)

2019. 12. 27. 오전 4: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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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27일 금요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요한 20,2-8)

 

요한 사도는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가 체험한 참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한다. (1요한 1,1-4)
사랑하는 여러분, 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2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4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화답송 시편 97(96),1-2.5-6.11-12(◎ 12ㄱ)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 주님은 임금이시다. 땅은 즐거워하고, 수많은 섬들도 기뻐하여라. 흰 구름 먹구름 그분을 둘러싸고, 정의와 공정은 그분 어좌의 바탕이라네. ◎
○ 주님 앞에서 산들이 밀초처럼 녹아내리네. 주님 앞에서 온 땅이 녹아내리네. 하늘은 그분 의로움을 널리 알리고, 만백성 그분 영광을 우러러보네. ◎
○ 의인에게는 빛이 내리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쏟아진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찬송하여라. ◎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를 들은 두 사도는 무덤을 찾아가 빈 무덤을 확인하고 그분의 부활을 믿는다. (요한 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2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1요한1,1-4)

오늘은 어부 출신으로 제배대오의 아들 야고보 사도의 동생인 요한 사도 복음사가의 축일이다.  그는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함께 최초의 제자단에 속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까지 함께 했으며 예수님의 당부로 성모님을 모셨다.

 

교회의 전승은 요한 복음과 요한 1,2,3서, 요한 묵시록 을 사도 요한이 저자라고 가르쳐왔다. 그러기에 오늘 축일의 독서도 요한 1서의 내용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성서학계에서는 요한 1,2,3서의 저자가 요한 복음 저자도, 예수님의 애제자도 아니라고 밝힌다.

 

세 편지에서 저자는 자신을 '원로'라고 밝힌다.

원로라는 칭호는 아시아 속주의 여러 교회에서 흔히 주님의 직제자 요한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을 가리켰다.

 

한편 저자는 자신을 나자렛 예수님을 직접 본 목격 증인으로 내세운다.

따라서, 그는 요한계 공동체에 속하면서 사도 전통을 직접 이어받은 요한 사도 바로 다음 세대의 증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세 편지의 저자는 동일 인물이다.

세 문헌의 메시지, 문체, 어휘등이 서로 매우 비슷하게 때문이다.

 

세 서간의 집필 연대는 성 폴리카르푸스와 유스티누스가 요한 1서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적어도 A.D.150년 이전에 쓰인 것이 확실하다.

아마도 요한 복음이 쓰인 뒤인 A.D.100년경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오늘 독서는 요한1서의 머리말(1,1-4)에 해당하며, 요한 복음의 로고스 찬가(요한1,1-18)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자주 언급되는 '우리'는 애제자의 목격 증언을 보존하고 발전시켜 온 요한의 직계 제자들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지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생명의 말씀이시다(1,1-2).

 

"사랑하는 여러분,  처음부터 있어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1,1)

요한 1서의 서문인격화된 말씀의 육화를 강조한 요한 복음의 서문과는 달리 우리가 보고 듣고 만져본 생명의 말씀, 곧 나자렛 예수님의 공생활을 강조한다.

 

이 글을 쓰는 목적 우리 모두(저자와 수신자들)가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기쁨이 넘치는 친교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1,3-4).

이 친교는 두 주체가 어울리면서 좋은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하는데, 요한 복음에는 이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 20,2-8인데, 빈 무덤을 본 마리아 막달레나가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요한 20,3-4에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무덤으로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고 전한다.

 

그만큼 사도 요한은 자신을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란 걸 드러낸다.

 

그리고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 모든 관심을 두었으면, 베드로 사도보다 먼저 달려가 빈 무덤에 다다랐다고 표현을 한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중의 하나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운명할 때 성모님을 맡겨 주셨다.

 

그리고 12사도 중의 유일한 동정이며 가장 오래 장수하여 천상의 신비와 계시로 가득찬 요한 복음을 저술했다.

 

주님께서 12사도 중에 특별히 요한 사도를 간택하여 사랑을 쏟아 주시고 큰 사명을 맡기신 것은 분명히 사람의 겉이 아니라 속을 보시는 주님 마음에 드는 성품의 소유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복음(요한 20,2~8)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4~5)

 

여기서 '빨리'에 해당하는 '타키온'(tachion)은 비교급이다.

또한 '달려'에 해당하는 '프로에드라멘'(proedramen; outran)의 원형 '프로트레코'(protrecho)'앞으로 달려가다'라는 뜻이다(루카19,4).

 

한글 새 성경의 번역은 베드로와 요한이 마치 무슨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원문에 충실하여 다시 번역하면,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를 앞질러 갔다' 옳다.

 

요한이 베드로보다 앞질러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던 무덤에 먼저 도착한 이유베드로가 제자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고, 반대로 요한은 제자들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였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려지는 모든 과정을 실제로 목격한 요한이 예수님의 시신이 있는 무덤의 위치를 가장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요한19,25~27).

 

이러한 세부적인 사항까지 여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다른 제자'는 요한 사도가 분명하며, 이러한 내용이 결코 꾸민 이야기가 아니고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몸을 굽혀'라는 뜻의 '파라큅사스'(parakypsas; he bent over; he stooped down)가 여기서는 부정 과거 분사형으로 기록되었고, '보기는 하였지만'에 해당하는 '블레페이'(blepei)현재형인 점으로 보아 요한이 베드로보다 먼저 도착했지만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로 계속 들여다 보고만 있는 모습이 강조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요한의 평소 성격이 내성적이고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요한은 예수님의 무덤이 큰 돌로 박혀 있었고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시신이 홀연히 사라진 사실로 말미암아,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현장에 베드로보다 먼저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베드로가 오기까지 기다렸다고 본다.

 

또한 다르게는 요한이 수제자, 으뜸 사도로서의 베드로의 권위를 존중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요한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것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고픈 급한 마음에 베드로의 느린 달음질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먼저 달려와 무덤에 도착하기는 했으나, 예수님의 수제자의 위치에 있는 베드로의 권위를 존중해서 그가 와서 먼저 확인하기 전에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사랑의 대가(大家)  

-성 요한-뉴튼수도원

 

대가 중의 대가가 사랑의 대가입니다. 비상하거나 별난 성인이 아니라 사랑의 성인입니다. 

비상한 관상이나 영적 성장이 아니라 사랑의 관상, 사랑의 성장입니다. 

 

얼마 전 형수님의 의미심장한 짧은 카톡 메시지가 생각납니다.

"삶은 신비, 사랑밖엔 길이 없네. "

이 두 문구가 요즈음 제 입속에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신비 중의 신비가 사랑의 신비입니다. 사랑은 모두입니다. 

사도중의 사도가 예수님의 애제자라 일컫는 사랑의 사도 성 요한입니다. 

성 요한뿐 아니라 우리 모두 사랑의 대가로 불림 받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여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 몇 해전 나왔던 제 책 제목도 생각이 납니다. 

몇 가지 사랑에 관한 예화를 나눕니다. 

얼마 전 늘 만면에 웃음이 가득해 성인같던 수도형제의 얼굴이 화로 인해 이지러져있었고 순간 형제들의 분위기가 얼어붙은 듯 했습니다. 

'아 같은 얼굴이 어쩜 이리도 다를 수가 있을까? 

웃을 때는 천사같고 성인같던 얼굴이 화가 나니 이렇게 다른 얼굴이 될 수 있나?' 

새삼스런 깨달음이었습니다. 

이 또한 얼굴의 신비입니다. 

누구나의 얼굴이요 저 또한 이런 얼굴을 보였던 부끄러웠던 과거도 잊지 못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화는 내지 말아야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 장면이었습니다. 

사막교부에 관한 두 일화입니다.

-압바 포멘은 압바 암모나스의 말을 전한다. 

'사람은 자기 거처에서 사는 방법을 배움이 없이 허송세월 100년 동안도 머물 수 있다.'-

놀랍고 무서운 말씀입니다. 

사랑의 성장 없이 그냥 오랫동안 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운동장 트랙 많이 도는 경주처럼 사랑의 성장이 없이, 생각이 없이  그냥 나이만 먹어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한 자리에 정주해도 여전히 제자리 걸음의 사랑일 수 있음을 경고한 말씀입니다.

그 극한의 고행생활에도 불구하고 102세까지 장수를 누렸다는, 사막의 성인 안토니오의 풍모입니다.

'그의 눈은 침침하지 않았고 눈빛은 살아있었으며 매사 분명히 보았다. 그는 치아 하나도 잃지 않았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단지 수척해져 있을뿐, 그의 발이나 손은 아주 건강했다.‘

흡사 모세의 모습(신명34,7)을 연상케 합니다. 

아타나시오가 쓴 '안토니오 전기'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치열한 수행생활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육신이 건강할 수 있음은 바로 사랑의 성장이 받쳐주었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인용했던 유명 배우 한석규의 인터뷰 대목도 저에겐 귀한 교훈이라 다시 인용하여 나눕니다.

"배우의 좋은 점을 조금 거창하게 말씀드린다면, 나이 먹는 것을 기다리는 직업이 배우입니다. 

저는 젊었을 땐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근데 나이가 조금씩 조금씩 먹을 때 배우라는 일이 정말 좋구나 하는 그런 점들 중에 하나가 60이 되어서 70이 돼서 제가 하고 싶은 역, 그리고 그때를 기다리는 즐거움이라고 그럴까요?"

제가 소원하는 바도 이런 노년입니다. 

나이 먹는 것을 기다리는 직업이 비단 배우뿐일까요.  수도자는 물론 믿는 모두가 이에 해당됩니다. 


내 나이 70이, 80이 됐을 때의 모습의 때를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깨어 노력하며 산다면, 나이 먹어 가는 것이 좋고, 그 인생 역시 허무가 아닌 충만한 기쁨이 될 것입니다. 

결코 치매나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이는 먹어 육신은 노쇠(老衰)해도 영혼은 영원한 청춘일 것입니다.

사랑의 노력과 성장이 이런 노년 인생을 만듭니다. 

성공인생이냐 실패인생이냐를 좌우하는 것은 바로 '사랑의 성장' 하나뿐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도들 중 유일하게 천수를 누리며 평생 순교의 삶을 살았던 성 요한 사도가,  또 102세까지 장수를 누렸던 성 안토니오가 성공적 인생의 본보기입니다. 

말그대로 '사랑의 성공'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봐도 성 요한 사도의 사랑의 탁월함이 뚜렷이 드러납니다. 

사랑할 때 온몸으로 체험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처음부터 있어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증언합니다.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겸손한 사랑'의 요한이기에 '나'를 숨기고 자신의 체험을 '우리'로 돌립니다. 

평생 예수님을 지근 거리에서 모시며 동고동락한 애제자 요한의 증언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다 도주한 상황에서 성모님과 함께 끝까지 십자가의 주님곁에 머물렀던 애제자 요한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수제자 베드로와 애제자 요한의 함께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져 다다랐다.“

요한의 주님 사랑의 탁월함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면입니다. 

'사랑의 눈'이 있을 때 보고 믿습니다. 

사랑의 눈이 있을 때 보이지 않는 것도 보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랐던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수제자에게 먼저 우선순위를 양보한 애제자 요한의 배려의 겸손이 감동입니다. 

이어 전광석화(電光石火), '사랑의 눈'으로 빈무덤을 보는 순간 주님의 부활을 즉시 믿는 사랑의 사도 요한입니다. 

여기서도 요한의 사랑의 탁월성이 입증됩니다.

바로 우리 역시 요한처럼 사랑으로 영적오관(靈的五官)을 활짝 열어 이런 영원한 생명의 주님을 모시는 미사시간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말씀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체를 모심으로 우리의 영적오관이 활짝 열려야 주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주님을 눈으로 보며, 손으로 만져보고, 주님의 향기를 코로 맡으며, 주님이 좋으심을 입으로 맛볼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저절로 뒤따르는 사랑의 성장입니다. 

사랑의 성장에 성체성사보다 더 좋은 영적 식(食)과 약(藥)은 없습니다. 

바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성 요한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아드님과의 사랑의 친교에 참여하는 미사시간입니다. 

사랑의 친교, 사랑의 성장, 충만한 기쁨이 하나로 이어집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이 셋을 동시에 이루어 주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네."(요한1,14.1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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