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6일 목요일
[축일] 내 이름 때문에 (마태 10,17-22)
스테파노는 하느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평화를 맛보지만, 그를 죽이려는 자들은 화를 참지 못하며 평화를 잃어버린다. (사도6,8-10; 7,54-59)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7,54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화답송 시편 31(30),3ㄷㄹ-4.6과 8ㄱㄴ.16ㄴ-17(◎ 6ㄱ 참조)
◎ 주님,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위하여 저를 이끌어 주소서. ◎
○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오니, 주님, 진실하신 하느님, 저를 구원하소서. 당신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당신은 가련한 저를 굽어보셨나이다. ◎
○ 원수와 박해자들 손에서 구원하소서.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앞으로 미움과 박해를 받게 되겠지만, 끝까지 견디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마태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제1독서(사도6,8~10; 7,54~59)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7,55)
예수 성탄 대축일 12월 25일을 기점으로 예수님으로 인해 초대교회에서 처음으로 순교한 스테파노 부제 축일(26일), 예수님의 가장 사랑받았고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 가슴에 기대었던 사도 요한 축일(27일), 예수님 탄생으로 말미암아 헤로데 대왕의 명령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28일)이 계속 이어진다.
오늘은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이다.
그는 사도들이 뽑은 부제였고, 부제가 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는 일을 했으며, 예루살렘에 살던 유다인들을 위해 활동하였다.
유대인들과 논쟁을 벌일 때마다 성령으로 충만한 성인은 지혜로운 언변으로 그들을 물리쳤는데, 결국 성인은 유다인들의 거짓 진술로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그 당시 율법을 거스른 자들 중에 돌로 쳐 죽임을 당할 때에는 두 세사람이 먼저 큰 돌로 사람의 머리뒤를 쳐서 쓰러뜨리면, 그 다음 여러 사람들이 작은 돌들을 던져 죽이는 아주 잔인하기 짝이 없는 사형 방법이다.
'스테파노'는 그리스 말로 '왕관', '면류관' 이란 뜻인데, 주님 위해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최초의 순교의 면류관을 쓰게 된 것이다.
오늘 독서에서도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6,8), '그의 말에서 드러난 지혜와 성령'(6,10) 이란 표현이 나오지만, 그가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해 평소에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가 얼마나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며 기도를 많이 봉헌하고 믿음이 강했으면, 이런 성령의 은사들이 내려 왔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6,8)고 나와있고, 성령이 충만하여 환시를 본다(7,55~56).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며,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것이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 옥좌(보좌)옆에서 앉아 계시지 않고 '서 계신'다는 말씀을 접한다.
'앉아 있는 것'과 '서 있는 것'은 다른 것이다.
'앉아 있는 것'은 바라보고 관망 한다는 뜻이지만, '서 있다는 것'은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을 의미한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스테파노의 순교에 동참하시고, 그의 기도와 희생과 증언을 들어 주시며, 그안에서 함께 순교하고 계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예수님은 당신과 당신의 말씀을 온 몸과 맘으로 증거하는 스테파노를 사랑하시며, 애가 타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 요한 묵시록 14장 1절에도 나온다. '내가 또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런데 마찬가지로, 질세라 사탄도 만만치 않게 대항한다. 요한 묵시록 13장 4절에는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 현장에는 그의 살인에 동조하고 뜻을 함께 하는 율법의 전사 사울이 등장한다.
스테파노를 죽이는 자들이 거짓 증언을 하며 돌을 던져 죽이는 과정에서 땀이 나니까 겉옷을 벗어 사울 앞에 던져 주고 있다.
스테파노의 살인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의 겉옷을 사울이 맡고 있음으로써 사울도 스테파노의 죽음에 찬성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훗날 이 순교의 현장은 사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이방인의 사도가 된 후 그가 복음을 열성으로 전하고 참수 치명하는데 영적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는 불씨가 되어 이를 계기로 예루살렘 모교회가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팔레스티나 곳곳에 복음을 전파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인간적으로 불행이나 실패가 나쁜 것만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잘 모르나 하느님의 깊은 뜻과 섭리와 안배가 모든 일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시는 주님, 특히 주님 복음과 영생의 가치관 때문에, 주님의 뜻 때문에 고난을 겪는 현장을 '서서' 지켜 보시며 동참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지 모르겠다.
특히 주님의 말씀 때문에 억울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위로와 평화가 충만하길 비는 마음이다.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는다면, 어떤 고난을 견딜 수 있잖아요.'
698번 '주님 손 잡고 일어 서세요' 라는 시련 극복의 주제를 가진 기초 공동체의 성가가 들려온다.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복음 (마태 10,17-22)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0)
마태오 복음 10장 20절은 영어에 있어서 '~아니고 ~이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not~but' 용법과 동일한 '우~알라'(u~alla) 용법이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권세자들에게 잡혀가 심문을 당하게 될 때 그들에게 적합한 대답을 하게 할 자는 너희가 아니라 바로 성령이라는 사실을 부정과 긍정의 비교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이 선택한 자에게 할 말을 가르치신다는 이와 같은 개념은 이미 구약에도 등장한다.
즉 탈출기 4장 12절에서 하느님께서는 언변의 어눌함을 이유로 소명을 거절하는 모세에게 당신이 함께하셔서 할 말을 가르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또한 신약에서도 성령께서는 보호자, 즉 위로하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도우시는 하느님의 영이시다.
특히 요한 복음 14장 26절에서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시는 분으로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염려할 것이 아니라, 지혜의 영이신 적절한 대답을 주시기로 기도하며, 또한 평소에 내가 성령께 의지하며 사는 사람인지를 항상 돌아보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

(마태 10,17-22)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 사람의 생각, 그 뜻의 말을 조심하라 입니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 히브리어는 증언이 순교라는 뜻과 함께 쓰입니다.
19ㄱ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 사람이 어떻게 무엇을 말할까? 미리 준비하면서~ 박해하는 그들과 똑같이 사람의 말로 준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9ㄴ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 지혜로 당신께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 내 안에 하느님의 영, 성령께서 하신답니다. 그런데 내안에 성령의 확신이 없다면~청하고 찾고 문(성경)을 두드려야지요. 그러면 반드시 주신다 하였습니다.(루가11,9-13)
그런데 성령께서 계시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걱정이 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일하심, 그분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 그 자신을 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성경을 두드려서, 열어서 하느님의 일하심 그분의 사랑을 먹고 마시고 힘을 얻어야지요. 하느님께서 하시겠다는 그 맹세로 하신 약속을 늘 기억해야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창세1,1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다.
= 원어를 직역하면 하늘들입니다. 땅의 존재들을 하늘의 존재, 하늘들로 만드시는 그 일을 하느님께서 친히 하신다는 것을 성경 처음부터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그 일~ 진짜 하늘이신 하느님의 죽음으로요~~
요한3.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요한4,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 그 사랑이 그 사랑의 힘이 일하심을 의지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내가 일하려 하지 말고 하느님의 영, 말씀이 일하시게 하십니다.(데살전서 2,13참조)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배짱도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니까요.
본문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 요즈음은 말이 다르다고 의회에 넘기지 않습니다. 틀리다 말하는 박해와 무시입니다. 그것이 죽을 만큼 힘든 것입니다. 모든 사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 합니다.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은 땅의 일, 사람들끼리의 일 일 때 그렇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신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하늘과 땅의 합일을 이루는 일입니다. 사람의 생각, 뜻을 버려야 하느님의 뜻을 받아 하늘의 존재가 되는, 구원의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이사55,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예수께서 마르코 7,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8,3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신의 말 사람의 규정, 교리를 버리고 제 십자가 곧 하느님의 뜻 계명(말씀)인 대속의 예수님의 십자가로 지고 따라라 하십니다. 그러면 자유 할 것입니다.
갈라 5,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사람의 규정과 교리,법)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멍애를 집시다.
마태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십자가)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 백만송이 꽃 , 들어보셨나요? 오늘도 주님의 사랑을 받아봅시다.
“나를 찾아온 그토록 기다린 일인데 그대와 나 함께라면 더욱 더 많은 꽃을 피우고 하나가 된 우리는 영원한 저 하느님 나라로 돌아가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