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간 월요일] 많은병자 치유(마르 6,53-56)

2020. 2. 10. 오전 5:55:13

글자


2020210

[연중 제5주간 월요일] 많은병자 치유(마르 6,53-56)


솔로몬은 주님께 당신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웅장한 집을 지었다고 말한다. (1열왕8,1-7.9-13)

1 솔로몬은 주님의 계약 궤를 시온, 곧 다윗 성에서 모시고 올라오려고,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각 가문 대표인 지파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예루살렘으로 자기 앞에 소집하였다.

2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에타님 달, 곧 일곱째 달의 축제 때에 솔로몬 임금 앞으로 모였다.

3 이스라엘의 모든 원로가 도착하자 사제들이 궤를 메었다.

4 그들은 주님의 궤뿐 아니라 만남의 천막과 그 천막 안에 있는 거룩한 기물들도 모두 가지고 올라갔는데, 사제와 레위인들이 그것들을 가지고 올라갔다.

5 솔로몬 임금과 그 앞에 모여든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함께 궤 앞에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양과 황소를 잡아 바쳤다.

6 그러고 나서 사제들이 주님의 계약 궤를 제자리에, 곧 집의 안쪽 성소인 지성소 안 커룹들의 날개 아래에 들여다 놓았다.

7 커룹들은 궤가 있는 자리 위에 날개를 펼쳐 궤와 채를 덮었다.

9 궤 안에는 두 개의 돌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돌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올 때, 주님께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호렙에서 모세가 넣어 둔 것이다.

10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11 사제들은 그 구름 때문에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에 가득 찼던 것이다.

12 그때 솔로몬이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3 그런데 제가 당신을 위하여 웅장한 집을 지었습니다. 당신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곳입니다.”

 

화답송 시편 132(131),6-7.8-10(8)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 안식처로 드소서.

보라, 우리는 에프라타에서 소식을 듣고, 야아르 들에서 그 궤를 찾았노라. 우리 그분 거처로 들어가, 그분 발판 앞에 엎드리세.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 안식처로 드소서. 당신 권능의 궤와 함께 드소서. 당신의 사제들이 의로움의 옷을 입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환호하게 하소서. 당신 종 다윗을 보시어, 당신 메시아의 얼굴을 외면하지 마소서.

 

병자들은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라도 손이 닿기를 청하였으며, 손을 댄 이들은 모두 치유된다. (마르 6,53-56)

예수님과 제자들은 53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제1독서 (1열왕8,1-7.9-13)


"궤 안에는 두 개의 돌 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돌 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올 때, 주님께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호렙에서 모세가 넣어 둔 것이다."  (9)


이것은 계약궤 안에 오로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계약을 상징하는 두 돌판, 즉 십계명을 새긴 돌판들만이 들어 있었음을 뜻한다. 사실 계약궤라는 명칭은 그 안에 들어 있는 십계명이 새겨진 두 계약의 돌판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차원에서 계약궤는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영원한 증거, 즉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19,5.6)는 약속의 증거로서, 이스라엘에게는 하느님 앞에서의 계약 준수 책임을 깨닫도록 하는 증표가 되었다.


신약의 히브리서 9장 4절에는 온통 금으로 입힌 계약궤 안에 "만나가 든 금항아리와 싹이 돋은 아론의 지팡이와 계약의 판들이 들어 있었습니다."라고 두 개의 돌판(계약의 판들)과 만나가 든 금항아리와 싹이 돋은 아론의 지팡이가 함께 있었던 것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열왕기 상권 8장 9절과 히브리서 9장 4절의 상충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우선 본래 계약궤안에 '만나가 든 금항이리와 싹이 돋은 아론의 지팡이 그리고 계약의 두 돌판'이 들어 있었지만, 모세 시대 이후 엘리 사제 시절 필리스티아인들에게 전쟁에 져서 계약궤를 일시적으로 빼앗겼던 시절에(1사무4,3-11) '만나가 든 금항아리'와 '싹이 돋은 아론의 지팡이'를 유실했던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또 다른 견해는 본래 계약궤에는 그것을 만든 목적과 부합하게 십계명 두 돌판만 들어 있었고(탈출25,16; 40,20; 신명10,5), 만나가 든 금항아리와 싹이 돋은 아론의 지팡이 '주님 앞에 두어'(탈출16,33)  '증언판 앞에'(탈출16,34), '증언판 앞으로'(민수17,25) 있었을 뿐인데, 신약의 히브리서 저자가 정확한 고고학적 검증없이 해석에 따른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전자의 견해가 히브리서의 증거와 상충되지 않고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열왕기 상권 8장 9절 '아무 것도 없었다'라는 표현 역시 그 전에는 그 무엇이 있었음을 전제하는 표현으로 볼 수가 있어 우세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주님께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호렙에서 모세가 넣어둔 것이다.'


이것은 계약궤안에 보관된 두 돌판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시기를 나타낸다. '계약을 맺으신'에 해당하는 '카라트'(karath)는 일차적으로 '자르다'(1역대19,4), '잘리다', '끊다'(1사무5,4)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계약과 관계될 때에는 '계약을 맺다'(예레34,8)라는 뜻을 가지기도 한다.


이것은 고대의 계약 체결 의식에서 계약의 당사자들이 가운데를 자른 제물 사이를 통과했던 것에서 유래된 표현이다. 이러한 계약 체결 의식을 거행했던 것은 계약을 어길 경우에 제물이 둘로 갈라진 것같이 그렇게 죽게 될 것이라는 계약 준수의 엄정한 결정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당시의 계약은 단순한 약속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신뢰와 신의를 확인시키는 엄숙한 선언이었다 (창세15,17~18; 예레34,18~22).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신 이후에 그들과 이렇게 엄정하고 엄숙한 계약을 체결하셨다(탈출24,1~8).


그리고 이러한 계약이 체결된 후에 이스라엘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 즉 계약의 산물이 열왕기 상권 8장 9절에서 강조되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었다(탈출24,12).

따라서 솔로몬의 성전에 계약의 두 돌판을 넣어 두었던 계약궤가 안치되었다는 것은 과거 모세를 통하여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이 변함없이 실행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연중 제5주간 월요일 복음(마르6,53~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시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56)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으로 번역된 '에이세포류에토'(eiweporeueto; he entered; he went) 원형 '에이스포류오마이'(eisporeuomai) 동사의 직설법 미완료 과거 3인칭 단수로서, 예수님께서 여러 장소를 계속적으로 이동하여 들어가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표현이다.


마르코 복음 6장 56절에서 직설법 동사가 다섯 개 쓰였는데, 그 중에서 네 개가 미완료 과거 시제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여러 장소들을 계속해서 들어가고 계셨고, 사람들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병자들을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끊임없이 데려다 놓았다는 것 드러낸다.


또한 병자들은 예수님의 옷자락 술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고 계속해서 청하고 있었고,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들은 누구나 치유를 받았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볼 때 예수님의 치유 행위는 쉬지 않고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이렇게 예수님의 치유 행위 계속적 동작을 가리키는 미완료 과거 시제로 표현한 이유는, 마르코 복음 6장 56절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역에서 행하신 모든 반복적인 치유 행위들을 요약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연중 제5주간 월요일, <별 수가 없다> /조영만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