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간 금요일] 길 진리 생명 (요한14,1-6)

2019. 5. 17. 오전 4: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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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4주간 금요일] 길 진리 생명 (요한14,1-6)


바오로 사도는 회당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고, 사도들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한다고 한다. (사도13,26-33)
그 무렵 바오로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 가 회당에서 말하였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27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28 그들은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29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 뒤에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32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33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다. (요한14,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열 두 사도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사도13,26-33)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히였습니다." (27)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29)

 

'예언자들의 말씀'에서 '말씀'으로 번역된 단어는 '로고스'(logos)가 아니라

'목소리'를  뜻하는 '포네'(phone)의 복수형 '포나스'(phonas)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한 구약의 예언자들의 목소리가 유대인들이 안식일마다 외우는 그 입을 통해,

현장감있게 생생하게 들려온다는 뉘앙스를 전달해 준다.

 

즉 사도 바오로가 '로고스'를 쓰지 않고 '포네'를 쓴 것은, 유대인들이 구약 예언자들의 목소리를 현재 듣고 있는 것처럼

암송하면서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에서 '봉독되는' 으로 번역된 '아나기노스코메나스'(anaginoskomenas)

'암기하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큰소리로 읽다', '낭독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나기노스코'(anaginosko)

(루카4,16 ;사도8,28)의 현재 수동태 분사형이다.

따라서 계속과 반복의 의미를 살려, '읽혀지고 있는' 이라고 번역하는게 좋다.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회당에 모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글을 큰소리로 낭독했다.

 

'이루어지게 했습니다' 로 번역된 '에플레로산'(eplerosan)는 '플레로오'(pleroo)의

부정(不定; Imdefinite) 과거 3인칭 복수형이므로, '그들은 이루었다'(they have fulfilled)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의미상의 목적어는 예언자들의 말씀이다.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그리스도에 관해 기록된 예언자들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 뜻을 알지 못하며,

그들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를 단죄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써, 오히려 그 예언자들의 말씀을

성취하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찌기 예언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배척받게 될 것을 예언한 바 있다.(이사53,5.12)

 

유대인들이 생명의 주를 죽인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무지 때문이었다.

베드로도 사도행전 3장 17절에서 그렇게 말하였고, 사도 바오로도 티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과거에 자신이 훼방자요 핍박자요 학대자였던 것을 그가 무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1티모1,13)

 

이처럼 무지는 진리를 죽이고, 진리에 대하여 훼방하고 대항하는 죄악이다.

그러나 이 무지가 죄은 죄에 대한 면죄의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다 이행한 뒤' 에서 '성경에 기록된' 으로 번역된

'게그람메나'(gegrammena)는 '기록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그라포'(grapho)의 완료 분사형으로서

'기록된'(was written)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한 죽음에 대한 예언을 말한다.(시편22편;이사53,3-12)

 

무죄한 예수를 죽인 일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예언을 성취하는 수단이 되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예언의 말씀이 인간의 자발적인 사악한 행동으로 인하여 성취된 것이다.

물론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뜻을 성취한다는 생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자기들의 사악한 의지와 자발적인 동기로 행동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뜻을  성취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나무'에 해당하는 '크쉴루'(ksilu)는 뿌리와 잎이 있는 살아있는 수목이 아니라,

잘려서 가공된 목재를 뜻한다.

사도 바오로가 예수가 달린 것을 십자가라고 하지 않고 나무라고 한 것은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라는

신명기 21장 23절의 말씀을 염두에 두었기 떄문일 것이다.

 

즉 바오로는 예수께서 나무에 매달려 죽으심으로써, 인간이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셨음을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다. (갈라3,13 ;사도5,30 ;10,39참조)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33)

 

바오로는 시편 2장 7절의 인용으로 메시아의 부활에 관한 예언으로 해석하였다.

시편 저자가 시편 2장 7절의 내용을 그리스도의 육화(강생)를 염두에 두고 기록했다고 할 수 있으나, 여기에서 사도 바오로가 인용할 때는 문맥으로 보면,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이기심으로, 원수 사탄에 대하여 완전히 승리하고 인류 구원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으며,

그의 부활은 그의 두번째  탄생이었던 것이다.

 

'ego semeron gegenneka se'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낳았다'에 해당하는 '게겐네카'(gegenneka)란 동사에 이미 인칭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사실상 1인칭 단수 대명사 '에고'(ego; 내가) 가 없어도 된다.

그럼에도 '에고'가 쓰인 것은, 낳으신 주체 '하느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오늘'로 번역된 '세메론'(semeron)이라는 단어는, 희랍어 구약 번역본인 70인역(LXX)에는 '오늘날'로 번역되어 있지만, 본문의 단어와 동일하다.

여기에서 '오늘'이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켜 부활하게 하신 때를 의미한다.

이를 굳이 '오늘'로 표현한 것은,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하느님께 있어서는 모든 시간이 '오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복음(요한14,1~6)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2)


'거처할 곳'으로 번역된 '모나이'(monai; mansions; rooms)'모네'(mone)의 복수형이다.


'모네'(mone)는 목적격 단수로 여기와 요한 복음 14장 23절에서 쓰일 뿐, 신약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단 한번도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모네'(mone)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이것은 여행중에 잠시 들러서 휴식을 하는 임시적 공간의 의미라기보다는, 제자들과 더 나아가서는 모든 믿는 이들의 희망을 견고히 하는 항구적 거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여기서 갑자기 하느님 나라의 거처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인가?

 

이것은 제자들에게 당신과 비록 헤어지더라도, 영원한 하느님 나라의 거처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킴으로서,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또한 있다가 없어질 이 땅에 희망을 두지 말고, 영원한 하느님 나라의 처소에 희망을 두게 하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하고, 성령강림 이후 성령충만을 체험한 후

하늘 처소에 대한 확신을 가졌을 때, 이 세상의 일에 대해 근심하지 않았으며, 주님과 교회를 위해 순교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굳센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 요한 복음 14장 2절의 후반부에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는 중요한 이유에 대해 언급하신다.


'내가 ~간다'로 번역된 '포류오마이'(poreuomai; I go)'포류오'(poreuo)현재 시제 중간태로서 '내가 스스로 간다'는 뜻이다.


이것을 '미래적 현재'라고 하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너무도 확실하기 때문에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나타내는 용법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죽음을 신적 통찰력과 예지력으로 미리 아셨고,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예고해 주신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라는 말을 덧붙이셔서 그 처소를 마련하러 가시는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신다.


당신 자신의 죽음이 제자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며, 그들 뿐만 아니라 영원으로부터 선택하신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반드시 지불하셔야 될

대가임을 밝히고 계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영혼들이 영원히 거처할 처소를 마련하는 이 일은 오로지 십자가상 대속의 구속사업을 통해, 믿는 이들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만 유보된 일인 것이다(사도4,12).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 5월12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거처할 곳을 마련하러 가신다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그 자리는 예수님께서 당신 십자가의 순종으로 얻어 내셔야만 했던 자리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하시며 그들을 안심시키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고 돌아가셔야 하는 일만을 생각하며 두려워합니다.

그 죽음이 자신들에게도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빠가 일을 나가는데 아기가 떨어지기 싫어 아빠에게 울며 매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부모의 십자가는 자녀의 십자가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기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 부모와 떨어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십자가가 커다란 고통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우리를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자 되세요.”, “꽃길만 걸으세요.”, “좋은 일만 있으세요.”라고 인사하며 이 세상에서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고통 없는 출산이 없듯, 성숙한 신앙인은 십자가가 없으면 부활도 없음을 압니다.

더 큰 영광은 더 큰 십자가에서 옵니다.
남편은 아내가 고통을 당할 것임을 알면서도 아기를 출산하기를 원합니다.

 그 고통을 넘지 않으면 두 사람이 함께 누릴 새 생명이 탄생하는 기쁨을 맛볼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분께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이시라면 그분께서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을 우리도 걸어야만 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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