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수요일]생명의 빵 (요한 6,35-40)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사도 8,1ㄴ-8)
1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2 독실한 사람 몇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내고 그를 생각하며 크게 통곡하였다.
3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4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5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6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7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8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35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36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사도8,1ㄴ~8)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3)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4)
원문에 '사울'로 번역된 '사울로스'(Saulos)가 문장의 맨 앞에 나온다.
이것은 회심하기 전 사울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모습을 강조하여
그 이후의 헌신적인 사울의 모습과 대조시키기 위한 기교적 표현이다.
여기서 '없애 버리려고'로 번역된 '엘뤼마이네토'(ellymaineto)는
'황폐하게 하다', '망하게 하다', '학대하다' 등으로 번역되는
'뤼마이노마이'(lymainomai)의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이다.
이 단어는 멧돼지가 밭에 들어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동사이다.
잠언 18장 9절에 '제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파괴자의 형제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못쓰게 만들다', '철저히 파괴하다',
비유적으로 '사람을 망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번역되었다.
사울은 매우 강렬한 기세로 그리스도교를 계속 핍박하려고 덤볐던 것이다.
사울의 의도는 그리스도교를 말살하는 것이었으며,
그 양상은 그리스도교를 짓밟고 못쓰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사울이 아무리 난폭하고 파괴적으로 그리스도교를
탄압하고 박해하여도,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교회는
결코 진멸되거나 말살되지 않았다.
이것은 초대 교회의 역사 및 교회사를 통해 여실이 증명되고 있다.
한편, 사울이 박해의 대상으로 삼은 자는 '남자든 여자든'으로 표현된
'안드라스 카이 귀나이카스'(andras kai gynaikas)이다.
이것은 사울이 '남녀'를 끌어다가 감옥에 가두는 그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표현인
동시에 당시 교회안에서의 여자의 비중도 매우 컸다는 것을 암시한다.
"주님을 믿는 남녀 신자들의 무리가 더욱 더 늘어났다." (사도5,14)
당시 사회 관습으로 볼 때 여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이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성령충만을 받은 여자들은 복음 전파나 교회안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수동적이지 않고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4)
사도행전 8장 4절부터 13절까지는 지금까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전파되었던 복음이 두루 널리 퍼져서 사마리아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즉 사도행전 1장 8절의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라는 주님의
지상 명령대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게 되는 시발점이 기록된
구절이 바로 사도행전 8장 4절이다.
본문의 '흩어진 사람들' 즉 '핍박으로 흩어진 그리스도교 교인들'이
어떤 안전한 곳에 숨어 버린 것이 아니라 두루두루 다녔다고 말한다.
여기서 '흩어진 사람들'을 뜻하는 '디아스파렌테스'(diasparentes)의
원형 '디아스페이로'(diaspeiro)는 '분배'(distribution)를 의미하는 전치사
'디아'(dia)와 '씨를 뿌리다'를 뜻하는 '스페이로'(speiro)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원어적 뉘앙스로 볼 때, 이 흩어진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서 마치 씨앗처럼 널리 퍼져
많은 결실을 맺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로 번역된 '디엘톤'(dielthon)은
'~을 통하여 다니다'라는 의미의 동사 '디에르코마이'
(dierchomai)의 부정(不定) 과거 복수(pl.)이다.
'디엘톤'은 '모든 곳으로 갔다'(went everywhere)와
'가는 곳마다'(wherever they went) 그리고 '주위를 다녔다'
(went around)등으로 번역되어,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인 복음 선포를 암시하고 있다.
스테파노가 순교를 당하였고, 많은 그리스도교 남녀 교인들이
핍박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상황이었는데도 복음의 전파가
더 활발하게 일어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로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에 의해 그리스도교는
더욱 빠른 속도로 확장되어 가고 있음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형제들이 내가 갇혀 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주님 안에서 확신을 얻고, 두려움 없이 더욱 대담하게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필리1,14).
결코 복음 전파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박해와 핍박이 나쁜 것만이 아니며,
교회의 영혼인 성령께서는 박해를 통한 흩어짐을 통해
더 많은 복음을 전하시는 것을 볼 때, 우리가 복음을 전하거나 살다가
겪게 되는 고통이나 핍박 때문에 실망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으며
그럴수록 더욱 더 온전히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부활 제3주간 수요일 복음(요한6,35~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40)
요한 복음 6장 40절은 요한 복음 6장 39절에 나오는 내용을 다시 한번
더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 복음 6장 39절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른 구원의 확실성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그 일에 함께
동참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것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 하느님의 목적이 선택받은 백성들을
보호하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리는, 부활을 통한 완전한 구원임을 밝히셨다.
하지만 요한 복음 6장 40절은 예수님을 믿게 된 자의 구원의 확실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하느님의 선택이 예수님을 믿는 결과로 나타나며, 이것이 결국
영원한 생명으로 귀결됨을 나타내는, 반복을 통한 강조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이라는 문구는 구원의 주체가 되시는
성부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로 정하셨는지
명확하게 알게 한다.
그것은 바로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보고'에 해당하는 '호 테오론'(ho theoron; who see)은
'보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아무 의미없이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확실하게 보는 것을 말한다(요한12,45).
'테오론'(theoron)의 원형인 '테오레오'(theoreo)는 단순한 시각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 '호라오'(horao)와 달리, '지각하다',
'인식하다'는 의미로도 쓰이기 때문에, 이 동사의 현재 분사인 '호 테오론'
(ho theoron)은 인간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 단순히 호기심으로
구경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정확히
인식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각이나 인식 행위 자체가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다시 '믿음'이라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믿는 사람'에 해당하는 '피스튜온 에이스 아우톤'(pisteuon eis auton;
who believes in him)이 되어야 비로소 구원에 참여하게 된다.
새 성경은 '그들'에 해당하는 '아우톤'(auton; him)이라는 대명사를 생략하고
번역하지 않았는데, 믿음의 대상이 바로 성자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한
강조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번역하는 것이 좋다.
또한 '믿는 사람'에 해당하는 '피스튜온'(pisteuon)은 '피스튜오'(pisteuo)의
현재 분사로 동작의 계속 및 반복을 나타낸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게 하는 시제이다.
이것은 과거의 믿음이나 단절되는 믿음이 아니며, 계속적인 신뢰와
끊임없는 순종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예식에 따라 형식적으로 하는 신앙 고백이 아니라 매일 매순간 삶이라는
언어로 예수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을 나타내는 것이 진실한 믿음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