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월요일]하느님의 일(요한6,22-29)

2019. 5. 6. 오전 4: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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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월요일]하느님의 일(요한6,22-29)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이던 이들은 그의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자, 그를 최고 의회로 끌고 가 거짓 증인들을 내세운다. (사도 6,8-15)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11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우리는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2 또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을 부추기고 나서, 느닷없이 그를 붙잡아 최고 의회로 끌고 갔다.
13 거기에서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이런 말을 하게 하였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합니다.
14 사실 저희는 그 나자렛 사람 예수가 이곳을 허물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준 관습들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이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15 그러자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예수님께서는,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고 하신다. (요한6,22-29)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뒤, 제자들은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22 이튿날, 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군중은, 그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사도6,8~15)

 

"그 무렵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8)

 

사도행전 6장 1~7절은 초대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과정 가운데 생겨난 배급(구제)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곱 부제를 선출한 내용과 더불어 그 이후 교회가 더욱 비약적으로 성장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도행전 6장 8~15절은 이때 선출된 자 가운데 한 명인 스테파노 부제의 활동 및 체포 기사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극적으로 이루어졌던 핍박이 보다 본격화되고 급기야 최초의 순교자를 내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 가운데 본절에서는 스테파노 부제가 은총과 능력이 충만하여 이적(테라타; terata )표징(세메이아; semeia)들을 일으켰다는 내용이 나온다.


본문의 '은총'(카리토스; charitos)'능력'(뒤나메오스; dynameos)사도행전 6장 5절의 '믿음과 성령 충만'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여기에서의 '은총'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스테파노 부제의 인자한 성품 가리키는 말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사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부터 당시까지 초대 교회에서는 큰 이적과 표징들을 열두 사도만이 행하였다.

그러나 이후로는 열두 사도로부터 안수받은 스테파노와 필리포스 같은 부제들도 이러한 능력을 행하게 되었다(사도 8,13).


하지만 스테파노와 필리포스 부제는 안수받기 전에도 이적과 표징들을 행했을 것이며, 이적과 표징들을 행함으로써 교회 공동체로부터 성령이 충만하다는 증거를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사도 6,3).


그러나 본절의 기록이나 필리포스 부제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행전 8장의 기록으로 보아서 이들이 사도들로부터 안수받은 이후에 더욱 활발하고 능력있게 이적과 표징을 행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것 역시 초대 교회가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부활 제3주간 월요일 복음(요한6,22~29)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7)


요한 복음 6장 27절은 오병이어 기적의 진정한 의미가 되는 영생의 양식을 주는 주제가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밝히는 중요한 구절이다.

'~말고 ~하라'로 번역된 '메~알라'(me ~alla; not~but)는 전자는 부정하고, 후자는 긍정함으로써 후자를 강조하는 구분이다.


여기서 먹어도 결국 죽게 될 '썩어 없어질 양식'과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증하시고 인정하신 예수님께서 주실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대조하여 후자를 취할 것을 강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켜서 종종 쓰신 용어인데, 메시야 동의어로 보는 것이 옳다(다니7,13).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이 양식을 주시는 분으로 선언하신다.

여기서 '줄 것이다'에 해당하는 '도세이'(dosei; will give) '디도미'(didomi)미래 시제로서, 진행적인 의미와 더불어 받는 자들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 이 양식을 얻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양식은 인간이 자신의 방식대로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썩어 없어질 양식' 구별된다.


'디도미'(didomi) 안에 들어 있는 '하사하다'(grant), '수여하다'(bestow)는 의미가 나타내듯이, 이 양식은 하느님에 의해 은총으로만 주어지는 선물인데(에페2,8.9), 인간의 대속을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과의 관계가 이 선물로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한다.


한편, '인정하셨기 때문이다'에 해당하는 '에스프라기센'(esphragisen; has sealed; has placed his seal of approval)'봉인하다', '인을 치다'를 의미하는 '스프랑기조'(sphrangizo)의 부정(不定) 과거 시제이므로, '인을 치셨다'로  번역해야 한다.


70인역(LXX)에서는 히브리어 '하탐'(hatham)을 번역할 때 이 동사를 사용했는데, 구약 시대에 인장을 찍는 것, 곧 인을 치는 것왕의 교서(다니6,17.18), 토지 구매 문서(예레32,10),(이사29,11), 그밖의 문서들(느헤10,1)을 법적으로 유효하게 했다.

신약에서도 이 동사는 비준하거나 확증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유대인들에게는 결코 낯선 말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 말씀을 근거로 그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약속을 인간 예수님이 아니라, 그분을 보내신 하느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이 곧 하느님의 자기 계시임을 염두에 두고,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슬픈 착각의 늪’을 벗어나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은 인간은 늘 영원을 갈망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원하지 않은 것 안에서 영원한 것을 찾을 수 있다는 ‘착각과 착시 현상’에 빠져 살아간다. ‘자기가 원하는 일들’을 추구하면서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여기는 ‘슬픈 착각의 늪’에서 헤매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뒤, 제자들은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이튿날 군중은 ‘빵의 기적을 베풀던 곳’, 곧 자신들의 이기심, 욕망, 고정관념이 꽉 차 있는 곳에서 예수님을 찾으려했다. 그들은 그렇게 굶주려 있었으나 ‘생명의 빵’으로 오신 예수님을 그들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에, 원하는 모습으로 만나 뵈올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배들에 나누어 타고 그분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6,24).

군중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를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6,25) 하고 질문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6,26) 하고 대답하시며 그들의 본심을 들추어내신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빵의 표징에서 신적인 의미와 ‘생명의 빵’이신 그분의 정체성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27절)하고 말씀하신다. 곧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에 의해 하느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길이 남아 있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야 한다는 말씀이다. ‘사람의 아들이 줄 양식’이란 신적인 생명을 지닌 예수님 자신과 그분을 통해서 주어지는 구원의 선물, 그분의 살과 피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군중들은 ‘힘쓰시오’라는 말을 오해하여 ‘일들’로 생각한 나머지 그분께 여쭈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6,28)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29절) 하고 대답하셨다. 군중이 복수 형태로 ‘하느님의 일들’이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단수 형태 곧 ‘하느님의 일’이라고 하신 점에 유의해야 한다. 곧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은 곧 당신을 파견하신 분을 믿는 것 단 한가지뿐임을 강조하신 것이다.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께서 파견한 이를 믿는 인간의 행위 또는 태도로서 하느님의 요청과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또한 ‘하느님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굶주림은 무엇인가? 내가 찾는 것은 어떤 것인가? ‘썩어 없어지지 않을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 중심적인 생각이나 물질, 명예를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느님과의 일치,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 없이 오직 자신의 현실적인 이득을 찾으려 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틀에 그분을 끼워 맞추려 할 때 삶의 의미를 잃게 됨을 명심해야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양식, 사람의 아들, 믿음을 강조하신다. 혹시 우리도 군중처럼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 하느님 없이 자기 이익에만 눈멀어 있는 상태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있지는 않는가? 군중은 빵의 기적을 베푸신 그곳에서 예수님을 찾으려 했으나 허사였다. 결국 그들은 카파르나움에서 예수님을 찾았고 그분과 함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도 마음을 모아 ‘하느님의 일’, 곧 생명의 빵 자체이신 예수와 그분을 파견하신 분을 믿는 하나인 믿음을 위하여 힘쓰도록 해야 하리라!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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