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월요일] 용서 (루카 6,36-38)

2017. 3. 13. 오전 4: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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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용서 (루카 6,36-38)

2010. 3. 1. 사순 제2주간 월요일 - 루카 6,36-38

다니엘 예언자는,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다고 주 하느님께 기도하고 죄를 고백하며 아뢴다. (다니엘  9,4ㄴ-10)
4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5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당신의 계명과 법규에서 벗어났습니다. 6 저희는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과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7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유다 사람, 예루살렘 주민들, 그리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당신께 저지른 배신 때문에 당신께서 내쫓으신 그 모든 나라에 사는 이스라엘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8 주님,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을 비롯하여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9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10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2011년 3월 21일 월요일 [(자)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이미지: 텍스트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시며,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하신다. (루카 6,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제1독서(다니9,4ㄴ~10)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9~10)

선민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다니엘이 바빌론 유배를 초래한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하여 3가지 단락으로 회개하는 내용이 다니엘서 9장 5~15절에 나온다. 

그 가운데 첫번째 단락인 다니엘서 9장 5~8절에서는 바빌론 유배가 하느님의 공의(公義)와 심판의 실현으로 이루어졌음을 회상하며 회개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제 다니엘서 9장 9~12절 모세 율법에 규정된 내용이 실현되어 이루어졌음을 회상하며 회개하는 내용이다.

다니엘서 9장 9절의 '그러나'로 번역된 접속사 '키'(ki)'~에도 불구하고'라는 양보의 의미로 번역하여야 한다. 즉 다니엘서 9장 9절은 하느님께서 크나큰  자비와 용서를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선민 이스라엘이 주님께 크나큰 거역을 저질렀음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다니엘서 9장 9절에서 하느님의 속성 내지는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처신으로 소개되고 있는 '자비와 용서를 베푸심'에 해당하는 '하라하밈 웨핫쎌리호트'(harahamim wehassellihoth)둘 다 복수형 명사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의 정도를 매우 강조하는 표현이다. 하느님의 자비가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고 그분의 용서하심이 매우 풍성하다는 사실을 이중적으로 강조하는 표현이다. 

특히 '자비'에 해당하는 '하라하밈'(harahamim)의 원형 '라함'(raham)본래 어머니의 자궁(womb) 혹은 사람의 내장(bowel)을 의미하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어머니가 자기 자녀에게 대해 나타내는 강력한 사랑의 감정과 이에 수반하는 행동을 나타낸다. 

이처럼 선민 이스라엘에 대해 하느님께서 뜨거운 사랑의 마음, 자비의 심정을 품으셨기에, 이스라엘의 거역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는 것이다. 

사실 다니엘이 이것을 진술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에도 불구하고 범죄와 거역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의 죄상을 고백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사실에 대한 진술은 이처럼 하느님을 거역한 이스라엘이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외에 없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다니엘서 9장 10절과 11절의 내용 기본적으로 9장 5절, 6절의 진술 유사하며, 선민 이스라엘이 주님께 대하여 크나큰 범죄를 자행했음을 자백하는 기도이다. 다니엘서 9장 10절의 '듣지 않고'에 해당하는 '웰로 사마으누'(wello samahnu)'그리고 저희가 결코 듣지 않았습니다'라는 의미로 번역할 수 있다.

특히 '저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에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번역된 '뻬콜 예호와'(beqol yehowa)'주님의 목소리'로 번역되고, 이 표현은 선민 이스라엘이 단순히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태도 뿐만 아니라 아예 하느님의 말씀 자체를 싫어하는 태도를 취했음을 나타낸다.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주님의 종 예언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전파한 말씀뿐 아니라 (다니9,6) 하느님께서 그들의 손을 의탁하여 이스라엘 앞에 내놓으신 율법까지(다니9,10) 선민 이스라엘이 듣지 않고 행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주님께서 ~~(부탁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에 해당하는 '나탄 레파네누'(nathan lepanenu)는 문자적으로 '그가 우리 앞에 주신'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처음 율법이 부여된 모세 시대에 관한 회상이 아니라 이미 부여된 그 율법들이 각각의 시대마다, 세대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을 통해 생생하게 선민 이스라엘에게 다시 각성되고, 그것에 대한 이행이 지속적으로 촉구되었음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본문에서 '법에 따라'에 해당하는 '뻬토로타이우'(bethorothaiu)의 원형 '토라'(thora)는 가르치는 행위를 의미하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주님의 교훈을 말한다.

본문에서 이 단어는 복수형으로 쓰였는데, 이것은 단순히 십계명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규정들과 법령들 및 율법의 구체적인 조항들을 포함한다.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복음(루카6,36~38)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6)

사람의 대인 관계에 있어서 절정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본받아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믿는 이들의 자비의 모델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루카 복음 6장 36절에서 '~처럼'으로 번역된 '카토스'(kathos; as)'~을 따라서' '~에 부합하여' 등과 같이 유사성과 동질성을 나타내는 전치사 '카타'(kata)'~같이', '~처럼'이라는 뜻이 있는 부사 '호스'(hos)의 합성어로서 '~와 같이', '~와 동일하게'라는 매우 강조적인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나약하여 늘상 죄(罪)를 저지르지만, 그 목표만큼은 절대선(善)에 두어야 하며,  절대선의 모델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카토스'(kathos)라는 부사가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루카 복음 6장 36절'~하신(것)'에 해당하는 '에스틴'(estin; is)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희랍어 '에이미'(eimi)의 현재형이다. 

희랍어의 현재형 하느님의 자비하심이 불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는데, 항상 자비하신 속성을 유지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 준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러 죄지은 인류가 멸망과 저주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외아들, 무죄하신 예수님까지 아낌없이 주시는 사랑으로 드러나며, 그 사랑은 일회적이 아니라 오늘날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계속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절대적 사랑과 자비의 실천은 아담의 타락한 본성과 원죄성(原罪性)을 지닌 인간의 노력으로 불가능하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체, 말씀 앞에 부단히 인간의 자아와 본성을 내려놓고 비울 때, 주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할 수 있는 신적 덕행이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2012년 3월 5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에서는 다니엘이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그는 기도를 시작하면서 먼저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정의로우심을 찬미합니다. 이어 자신들의 부족함과 지은 죄를 회개하지요. 특히 다니엘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자세가 기도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라 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남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에 대해 비판마저 합니다. 하지만 비판하면서도, 정작 그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모를 때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상황도 모르고 군중 심리에 휩싸여 함께 비난할 때도 잦지요. 또한, 상대방이 저지른 잘못을 자신도 종종 범하곤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주관적으로 심하게 비판하면서도, 막상 자신이 비판받을 때는 객관적인 잣대를 요구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남을 비판하는 데도 황금률의 정신을 적용해야 한다는 예수님 말씀입니다. 황금률은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루카 6,31)라는 계명이지요.
남을 비판하는 데도 황금률을 적용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비판은 현격히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참된 사실을 알기 전에는 비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면, 우리는 주님 앞에 더욱 겸손한 사람이 되어 갈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동시에 다른 이에 대해서는 너그러워지기 때문이지요.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2010년 3월 1일 월요일[(자) 사순 제2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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