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복음 10장 34-36에 대하여

2011. 7. 7. 오후 3:43:18

글자

마태오복음 10장 34-36에 대하여

작성자   윤예호(yyh5625)  쪽지 번  호   5398
 
작성일   2011-07-07 오전 8:52:06 조회수   41 추천수   0

마태오 복음을 시작했습니다. 10장 34절에서 36절에 보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또한 평화를 주러 온게 아니고 칼을 주러 왔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홍세기 ( (2011/07/07) : (NJB 주석) Jesus is a sign that is rejected, his aim is not to provoke dissension, but this becomes inevitable as a result of the demands of the decision he provokes.hsg3303)  
 
홍세기 ( (2011/07/07) :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시 유다의 기득권층과 갈등을 예고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hsg3303)  
 
윤예호 ( (2011/07/07) : 아 예~~~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yyh5625)  
 
김종업 ( (2011/07/07) : [참고구절] 아들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딸이 어머니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대든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미가7:6)rlawhddjq)
 
김종업 ( (2011/07/07) : [참고]8 내 원수야, 나를 두고 기뻐하지 마라. 나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어둠 속에 앉아 있어도 주님께서 나의 빛이 되어 주신다. (미가7:8)~ 묵상해봅니다.rlawhddjq)
 
김종업 ( (2011/07/07) : 루가복음 12장 49~53절에 불을 지르러 왔고,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십니다~~세상적인것과 신앙인으로서의 자세~~우린 세례를 받으며 "끊어 버립니다"하고 서약한거 기억 나시지요?:?~~종교 문제로 가정에서 불협화음이 대단합니다.때론 원수가 되지요~~원수는 그래서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인지도 모르겠습니다.rlawhddjq)
 
김종업 ( (2011/07/07) : 내가 세례를 받음으로 나는 세상에서(육적인 삶) 죽었고 신앙인(영적인 삶)으로 다시 태어났지요??~~ 또한 예수님께서도 광야 유혹이후 공생활중에 가족으로부터 외면도 당하셨지요(심지어 마귀가 씌었다고 까지 했으니까요)rlawhddjq)
 
김종업 ( (2011/07/07) : 제자들 또한 자기들의 삶의 현장에서 모든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겪는 어려움들이 많았지 않습니까??~~그래서 선상님 제희들은 모든걸 버리고 따랐는데 보상책이 뭡니까?~하니까 하늘에 보상책이 마련되어 있다고 하셨어요.~~이러한 맥락에서 묵상하고픈건 내 안에서 작용하는 영적인 문제에도 갈등이 참 많습니다."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선택을 주님은 요구하시고 있어요.~~참고가 됐기를 바래봅니다.저도 더욱 공부할께요.살롬.rlawhddjq)
 
김종업 ( (2011/07/07) : 내일까지 한줄답변계재하고 지우겠습니다. 여러줄 차지해서 미안합니다.rlawhddjq)
 

칼을 주러 왔다. [Re : 546]
 
작성자   김호경(h2kfr)  쪽지 번  호   547
 
작성일   2001-07-02 오후 9:40:08 조회수   347 추천수   0
 

+ 찬미 예수님 !!! 

1. 자료의 출처

   님께서 언급하신 마태오 복음의 이 구절(마태10,34-36)은 루가 복음서에도 병행구가 있는 것(루가12,51-53)으로 보아 자료의 출처를 <예수 어록>(Q-문헌)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마태오복음 10장 34절 / 루가복음 12장 51절, 마태오복음 10장 35절 / 루가복음 12장 52-53절을 서로 다른 말씀으로 보고, 아울러 두 말씀 모두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고 초기 교회가 지어낸 말들이라는 주장도 있기는 합니다.

 2. 의미

    1) 유다의 묵시문학계에서는 역사의 종말이 가까와 질수록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크게는 우주에 이르기까지 크나큰 붕괴현상이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언급되어 있는 가정의 분열 모습은 종말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한 전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별난 행동으로 당신의 가정이 분열된 것(루가11,27-28; 마르3,20-21.31-35)도, 제자들의 가정이 분열된 것(마르10,29-30; 루가9,59-62=마태8,21; 루가14,26=마태10,37)도 종말 전조로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2) 실제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기 위해, 그리고 내적인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결과적으로는 이 세상에 평화를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구원사업은 분열의 이유가 되었고, 그분의 인격은 논쟁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그분에 대하여 사람들은 서로 다른 두 진영으로 갈렸습니다.  한편은 그분의 편이 되고, 다른 한편은 그분의 적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미움은 계속되어 갈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결과적으로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오신 셈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한편으로 그분께 대한 증오도 클 것이나(예를 들면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 대사제),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과 맞서는 사랑이 더 크고 강할 것입니다.

    3)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의도적으로 불화를 바라시거나, 일부러 분열을 초래하시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구절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그 가르침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하는 분쟁을 일으켜서 설령 한 식구일지라도 사람들의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진리이신 당신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당신에 대한 추종과 그 추종을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서 가정이나 부모님에 대한 효도마저 포기를 요구하시는 바로 다음 구절들(마태10,37-39)을 연결시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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