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너는 몸을 씻을 물두멍과 그 받침을 청동으로 만들어, 만남의 천막과 제단 사이에 놓고, 거기에 물을 담아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물로 손과 발을 씻게 하여라.그들이 만남의 천막으로 들어갈 때, 물로 씻어야 죽지 않는다. 그들이 예식을 거행하려고, 곧 주님에게 화제물을 살라 바치려고 제단에 다가갈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손과 발을 씻어야 죽지 않는다. 이는 그와 그의 후손이 대대로 지켜야 할 영원한 규정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릇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 할찌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찌니 이는 그와 그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출30:17-21).
![[편집]물두멍.jpg](http://blog.joinsmsn.com/usr/g/ye/gyesiro/1010/re_4cab13fe00473.jpg)
놋으로 만든 물두멍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흘리신 피의 예표입니다. 물두멍은 고난의 십자가의 상징이요, 그 안에 들어 있는 물은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입니다. 용도는 제사장들의 수족을 씻기 위한데 있습니다. 회막(성막)과 단(번제단) 사이에 놓고 아론의 아들들(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여기에 수족을 씻어야 합니다.이는 제사장이 주의 일을 하기 위하여 취할 행동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여기서 반드시 수족을 씻어야 합니다. 즉 자기의 범한 자범죄를 반드시 씻어(회개)내야 합니다. 번제 단에 번제물을 드리는 일을 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여기에 와서 먼저 자기의 수족을 씻어야 합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죽임 당함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종 관리가 철저한 것은 만일 주의 종이 잘못을 범하여 그 더러움을 씻지 아니한 상태에서 주의 일을 하게 되면 하느님께서 그를 받으시지 아니하실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옮아가기(본보기) 때문에 주님의 종, 제사장에 대하여는 더 철저한 것입니다. 제사장(주님의종)들이 이렇게 철저해야할 이유는 그가 다른 사람에게 직 간접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가르치면서 왜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 왜 그대는 도둑질을 합니까?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롬2:21).
주님의 종의 역할이 크면 그 큰 만큼의 각별함이 있어야 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도자는 눈을 뜬 자이어야 하고 더러운 자가 다른 사람에게 접하면 그도 더럽게 만들기 때문에 깨끗하고 청결한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물두멍에서 씻는 수족은 자범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번제 단에서 태우는 것은 원죄를 말씀하는 것이고요. 아담으로부터 유전한 원죄가 번제 단에서 드리는 제사로 완전히 해결 되는 것인즉 원죄(아담의죄)에 대해서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인하여 단번에 다 해결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지은 원죄 때문에 오는 형벌은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자기로 인하여 지은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하여 해결을 하여야 합니다. 죄란 하나님의 법(말씀)을 거스르는 것을 말합니다. 수족은 사람의 거동 곧 동작을 의미합니다. 자기가 거동(살아가는)하는 중에 말씀에 거스름으로 인하여 더러워진 것을 씻어 내기 위하여 있는 것이 물두멍입니다.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출38:8. 자기가 자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 거울입니다. 거울이 아니고서는 자기 얼굴을 살펴볼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 거울이 구약시대에는 놋으로 만들어진 대야(물두멍)에 담겨있는 물이고요, 신약 시대에는 주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물두멍에 담겨있는 물은 = 나 자신이 범한 죄를 씻어내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 피 이기도 하고, 나 자신이 지은 죄가 무엇인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아무나 성막에 들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어야 하는 자가 제사장들과 거기서 수종드는 여인들 이었지만, 신약 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성소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에 성도 모두는 이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19-22.
수족을 씻는 다는 것은 죄를 씻어 낸다는 말인데 이는 곧 회개를 뜻하는 것입니다. 회개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으니. 하나는 잘 못된 것을 토설(뱉어내는것)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돌아서는 것입니다. 뚜렸한 목표는 개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들을 보면 토설은 많이 해요, 눈물로 뱉어내고 콧물로 뽑아내며 가슴도 치고 입술도 두들기며 용서는 구하는데, 돌아서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개조가 안 된다는 말입니다. 목표달성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무만 보고는 무슨 나무인지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보면 그 나무의 확실성을 구별해 낼 수 있습니다. 지금 교회들의 행동을 보면 회개가 바로 되었는지 아닌지를 확실하게 알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물두멍에서의 할 일을 제대로 하였느냐 아니하였느냐 를 바로 알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만일 물두멍에서 수족을 깨끗이 씻어내지 못하고 그 안에 들어가면 죽임을 당합니다.회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영적 죽임을 당한다는 말씀입니다.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음식은 몸을 상하게 할 수가 있지만 마음을 씻어내지 아니하고 먹는 영의 양식(말씀)은 영혼을 병들게 하고 죽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고 들어가면 그 안에는 떡 상이 있습니다. 떡 상에 떡을 진설하는 제사장들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을 만져서도 안 되고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을 먹어서도 안 됩니다. 떡을 먹기 위해서 반드시 하여야 하는 것이 수족을 깨끗하게 씻는 일입니다. 말씀을 먹기 위하여 먼저 하여야 일이 철저한 회개, 라는 말씀입니다.
물두멍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심어진 교훈은 아주 철저하게 인 박아졌지요. 수족을 씻어내지 아니하면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는 가르침 말입니다.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마15:1).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심으로 우리가 씻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율법에 살던 때에는 씻지 아니한 수족 때문에 죽임을 당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씻어내지(회개) 아니한 마음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 안에 무엇이 들어 있기에 씻어내야 하는 가. 씻어내지 아니하면 죽임을 당 할 정도로 무서운 악성이 무엇인 가?
그것은 거울(물두멍=주에말씀)을 들여다보아야 압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우리를 맞추어보면 어긋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을 따라 말씀에 거꾸로 가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모조리 씻어내(뽑아버려)야 합니다. 어느 한 덩어리의 찌꺼기라도 속에 남아 있으면 더러운 것이요, 그것이 또한 남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것들을 씻어내지 아니한 상태에서 떡(말씀)을 먹으면 더욱더 더럽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에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에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에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11:27-29. ) 자기의 마음에 든 것을 씻어내지 아니하고 먹고 마심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의 돈 궤를 맡아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님의 일에 부정적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12:2-6.) 기독교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가룟 유다는 당시 독립 운동가였다고 합니다. 다른 제자들도 그러하였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독립은 그 민족에게 절대적인 염원이요, 숙원입니다.
독립 운동가들이야 말로 그 당시 그 민족에게는 영웅적이요 최고의 가치였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그 선봉자들 중에 하나였고 예수님께도 계속 종용하였던 자요 누구보다 더 많은 기대를 예수님께 두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돈궤에 손을 넣어 도적하여 다가 독립운동 자금으로 빼돌리는 일까지 저지르게 되었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돈에 팔아넘기는 최악의 망동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그 악한 행위가 언제였습니까? 그가 떡을 초에 찍어 입에 넣을 때 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요13:36,37)
예수께서 주시는 한 조각의 떡은 예수님의 살과 피 곧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먹는 순간에 가룟 유다에게는 예수를 팔고자 하는 생각이 충만해 졌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함께 따라 다녔지만 그에게는 진정한 회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sm님나라가 아니라 세상 나라를 회복시키려 그의 사상과 생각을 바꾸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빗어진 결과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자기의 하고자 하는 일을 촉진시키며 힘을 충전시킨 것이지요. 그러나 그의 인생은 불행과 저주의 죽음으로 마감하지 않습니까.영원한 지옥 불의 열매를 먹음은 것이지요.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고전11:30,31.) 우리가 우리를 살피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행한 결과는 가히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사항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흔히 말씀만 많이 듣고 많이만 받아먹으면 다 되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씀을 받아먹는 순간에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가서 그가 하고자 하던 일을 부추겼습니다. 떡(말씀)과 함께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 것이지요. 하sm나님의 말씀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죄악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sm나님의 나라를 이루려는 생각보다 세상 나라를 위하는 생각이 더 들어 있는 상태에서 말씀을 접하면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심이 더 발동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부하려 하는 생각을 씻어내지 아니하고 설교를 들으면 그 말씀이 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더욱 충동케 하는 것이고, 높아지려는 마음이 속에 들어 있는 채 말씀을 대하면 높아지고자 하는 충동에 불을 붙이게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빼내지 아니한 채로 예배에 임하면 돈 벌고 싶은 격동이 일어나게 되고, 욕심을 잉태한 채 말씀을 받으면 더욱더 욕심이 폭발하여 가룟 유다와 같이 되어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같습니다. 비가 하늘에서 내려서 씨(종자)에 싹이 나게 하고 자라게 하며 열매 맺게 함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그 품은 뜻에 싹틔우고 자라게 하고 열매 맺게 하는 것입니다.
비가 하늘에서 내려서 그 종자에게 그 싹을 내는 일을 할 뿐이지 보리 종자(씨앗)에서 밀의 싹이 나오게는 못하고, 대추나무에서 사과 열매를 열게 하지는 못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속에 들어와서 악한 사람 선한 열매 맺게 하지는 못합니다. 쌓은 선에서 선을 낼 수 있도록 물을 주고 쌓은 악에서 악을 낼 수 있도록 물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 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7:17.) 그런즉 사람의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가 결정적인 것입니다.
사람의 속에 들어 있는 것 가지고 싹틔우고 자라게 하고 열매 맺게 하는 것이 말씀의 효력이기 때문에 사람의 속에 무엇을 심든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든지 있는 그대로 자라고 열매 맺도록 되어 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그러기 때문에 물두멍에서의 작업이 대단히 필요한 것입니다. 거기서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뽑아내고 씻어내지 아니하면 말씀(물)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 속에 있는 것들이 더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를 부추기고 높아지려는 마음을 부추기고 욕심을 부추기고 육신의 삶을 부추겨서 말씀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런 것들이 더욱 잘 자라서 열매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라고 하신 말씀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더러운 그릇에 담겨지는 음식은 더욱 더럽게 만듭니다. 씻(회개)지 아니한 마음에 말씀을 담으면 더욱 더 더럽게 만든다는 말씀인즉, 이제 물두멍 앞에서 자기를 자세히 살펴서 그 안에 있는 물(주님의피)로 깨끗이 씻어내는 철저한 작업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수족을 씻지 아니하고 성막 안에 들어가는 자는 죽임을 당한다는 주님의 법칙을 마음에 꼭 새겨서 깨끗이 씻는 일(회개)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