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마3:2) 이는 세례 요한의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세례요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이가 없도다”(마11:11).
모든 선지자와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라는 말씀에서 뒷받침 하듯이 세상 모든 인류와 하나님의 사자들인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법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월등한 자 라는 말씀입니다. 인류 역사 이래로 그보다 더 큰이가 없다는 말씀이지요. 람들이 그를 그렇게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를 그렇게 여기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가 할 일이 하느님 앞에서 그토록 귀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마11:10). 그의 사역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작업이 회개시키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말은 구약에도 있었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내가 너희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겔18:30.) 죄에서 돌이키라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세례요한의 회개의 목적은 천국이 가까왔으니 땅에서 돌이키라는 말씀입니다. 죄에서 돌이키는 것에다가 그 목표를 천국에 두라 는 것이지요. 결국 선지자의 사명도, 목적도 사람들로 하여금 돌이켜 천국으로 향하게 하려는데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신 목적도 그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0). 이는 예수님의 공생애 중 맨 첫 번째 하신 말씀이요, 예수님 사역의 목적이고 또한 목표입니다. 이것 위해서 제자들도 부르시고 동역 자들도 모으셨으며, 십자가의 죽으심과 무덤에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이 다 천국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천국을 향한 진솔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란? 불교나 천주교나 기독교에서 주로 쓰는 종교적 용어로 불교에서는 타인에게 자기 죄의 용서를 비는 뜻으로, 기독교에서는 자기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悔改(회개)라는 한자를 풀이해 보면 뉘우칠 회(悔) 고칠 개(改)입니다. 지난 것이 잘 못 되었음을 깨달음으로 인하여 뉘우치고 돌이키려고 마음을 고쳐먹는 상태, 라고 하면 성경이 말씀하는 회개의 근사치에 접근하는 것이겠지요.
성경이 명하시는 회개의 요지는 단언하여 ‘돌아서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가는 길에서 180도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가라 하는 것이 회개의 요점입니다. 모든 사람이 아담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회전하여 죄 짓기 전의 아담의 길로 ‘돌아가라’ 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아담의 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사망 길(세상)로 가고 있기 때문에 이제 돌이켜서(회개) 천국으로 향하여 가라, 는 것입니다.
지금 모든 인생은 잘 못된 길에 빠져 있으며 그 길을 가고 있으니 그 잘 못을 깨우쳐서 스스로 뉘우치고 그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것이 회개의 참뜻입니다. 그것이 구약시대에는 죄(불순종)에서 돌이키는 것으로 한정된 것이었지만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가는 방향, 삶의 목표를 바꾸어 놓는데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구약시대의 회개의 의미와 신약시대의 회개의 의미는 죄에 대하여는 동일하나 그 목표에 대하여는 상반된 것이기도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죄를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지상의 복 육신의 복을 받아 누리라는 것이었고, (그 때는 천국이 아직 열리지도 않은 멀고 먼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고) 신약시대에는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등지고 예수께로 돌아와서 천상의 복 영혼의 복을 누리라는것입니다. (이제는 천국이 가까왔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회개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거울이라고도 하지요) 말씀(성경)이 아니고서는 내 심령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도구가 없습니다. 내 영혼이 깨끗한지 더러운지를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하나님의 판단에 의한 옳고 그른 것이 드러나게 되고, 추하고 깨끗한 것이 보여 지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의 영혼이 깨끗하냐 더러우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측정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거스름이 없으면 그 영혼은 깨끗한 것이요.말씀에 거스름이 있으면 그 영혼은 더럽혀진 것이요 죄악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더러움을 잘 씻어내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모르고 회개하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보이지 아니하는 자기 등을 수건 양끝 잡고 문질러 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요즘 그런 교회들이 많습니다. 나는 수건 양쪽 끝을 잡고 등 문질러댔으니까 자기 등이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말씀도 안 보고 말씀도 모르면서 덩달아서 울고불고 해놓고도 자기는 뜨겁게 회개한 줄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말입니다.
말씀으로 자기 영혼의 상태를 들여다보지 아니하는 회개는 울리는 괭가리가 될지는 몰라도 하나님이 받으심 직할만한 진솔한 회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타다 남은 장작 같고 뒤집지 않은 전병 같을진대 그러한 회개는 오히려 쓸모없이 만들어지고,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위선으로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남의 눈에 티는 볼 수 있어도 자기 눈에 들보는 안 보이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남의 말은 많이 하면서도 자기 말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남을 씻어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 씻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말씀(거울)에 나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말씀 없는 회개는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은 것이요. 향방 없이 달려가는 수고와 같은 것입니다. 회개의 목적은 고쳐 바로 서기 위한데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알아야 내가 무엇을 잘 못 했는지, 내 속에 무슨 잘 못된 것들이 들어있는지를 알고 씻어 낼(토설) 수가 있는 것이고, 거기에서 돌이켜서 다시는 그 길을 가지 아니하도록 노력하고 기도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의 사는 예대로 맞춰보면 우리가 뭐 그리 잘 못한 것들이 별로 없지요. 꼭 그렇게 회개(고쳐야) 하여야 할 큰 문제 있는 것도 없기 때문에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교회들을 보면 못 된 짓들을 많이 하고 온 모양이구나, 하며 비웃기라도 하잖아요. 그러나 성경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면 고쳐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지요. 그것이 회개의 목적이요 절대성입니다.
욕심내는 것도 잘 못입니다.(약1:15) 회개(토설=뱉어냄)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품(잉태)고 있으면 사망을 낳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도 잘 못된 길입니다.(딤전6:10) 고쳐야 합니다. 부 하려 하는 것은 유혹의 독소입니다.(딤전6:9) 마음속에서 씻어버려야 합니다.
높아지려는 마음은 아주 큰 죄악입니다. 뱉어내고 자기를 낮추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여야 합니다. 이득을 보려고 송사하는 것도 잘 못입니다. 차라리 손해보고 다툼을 피하여야 합니다. 오른 뺨을 때린다고 맞장구치는 것도 죄입니다. 왼 뺨을 돌려내도록 바꾸어져야 합니다. 육체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것은 죽음의 결과를 만듭니다. 주를 위하여 죽고자 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교회가 회개하여야 할 것들에 대하여 일일이 기록하려면 몇 날 며칠이라도 부족하온즉 그래서 성경을 읽는 것과 듣는 것에 열심 하라는 말씀입니다. 회개는 생명입니다.회개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그 때에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저희의 예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1-3).
다시 말하면 돌아섬(변화또는바꿔짐)이 없는 구원의 길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바꿔지되 말씀대로 바꿔져야 하고, 겉모양만 바꿔지고 속마음은 바꿔지지 아니한다거나, 속마음은 바꿔졌는데 겉모양(행동)이 따라주지 아니하여도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회개는 많이 한다고들 하는데 말씀대로 바꿔지지 아니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시기 질투 미움 다툼은 교회 안에도 별 다른 게 없고, 부와 명예와 출세욕은 교인들의 마음속에도 여전하니 어찌 회개의 효력이 있다 하리요. 회개의 목적은 바꿔지기 위한데 있는 것인즉 생각과 말과 행동이 바꾸어 지지 아니하였다, 라고 하면 회개가 안 된 것이지요.
아직도 세상 것 육신의 것들이 마음속을 들어있어 그것을 향하여 가고 있다면 그것은 돌아서지(회개) 아니한 결과인즉 이는 성경적 회개가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입에서는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 그와 같이 되리라고 미리 예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루살렘 거리란 오늘날 교회를 말함이요, 그 넓은 거리란 교회의 많음을 의미하는데 빨리 돌아다녀야 다 돌아다닐 정도로 그 수가 많음을 뜻합니다. 그러한 중에서도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 얻기가 힘들다는 말씀입니다. 믿기지 않는 말씀 같잖아요.교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여 지고 그렇게 느껴질지 몰라도 하나님의 보시는 눈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으신 것입니다.
교회 안에 회개의 소리는 가득 차 있어도 회개를 행하는 자는 없고, 진리를 소리치는 자는 많아도 진리를 구하는 자는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니, 구하는 자란 받아드리는 자요 갈망하는 자요 사모하는 자이며 진리로 살기를 원하는 자요 노력하는 자이며 이를 위하여 기도하는 자를 말합니다.
진리는 또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인즉 이는 곧 예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구하며 따라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 말씀으로 이 시대를 조명해 보십시오. 말씀이 맞는 가 아니한 가를 잘 관찰해 보시고 이 시대를 두고 하신 예언의 말씀같이 여겨진다면 이제 나 한사람이 이성(교회)의 치료의 명분을 만들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망시키시지는 절대로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의인 한 사람 때문에 당신의 교회를 치료해 주시기도 하신 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람(천국인)으로 만드시기 위함이요, 가려내시기(심판) 위한 것입니다. 선인과 악인이며 의와 불의한 자가 말씀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지 예수님께서도 임의로 결정하시지 아니하시며 또한 하실 수도 없으십니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12:48). 주님의 말씀은 마지막 날의 하나님의 심판의 척도요, 법전(法典)입니다. 말씀을 아느냐 모르느냐를 시험 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위반하였느냐 아니하였느냐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에 거스르는 생각이나 마음에 들어 있는 어떤 것들이 있으면 그것을 깨끗이 씻어내어야 합니다.그렇지 아니하면 그런 것들이 물(말씀)을 받아먹고 자라고 성장해서 열매(행위)가 되고 그 열매는 심판의 증거물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은과 금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약5:2,3).
쌓여있는 재물이 회개치 아니한 증거, 주님의 말씀에 순종치 아니한 증거물이 되어 심판의 재료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회개하는 자는 그 회개에 합당한 일(행위)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행26:20,21.) 그것이 유대인들에게 걸림이 되고 잡아 죽이고자 하는 충동을 가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성경이 요구하시는 회개가 사람들에게 그리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요구하시는 회개는 도적질 한 자에게 돌아서라, 간음한 자에게 회개하라 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일반 인, 세상 모든 사람의 지식수준 마음수준 행동수준에서 완전히 돌아서라 고 하시는 것입니다. 일반의 수준은 욕심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에게 욕심이 있으면 죄의 수준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8:44). 욕심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즉 사람의 마음속에 욕심이 들어 있다는 것은 곧 마귀가 그 속에 들어 있다는 증거요,세상 것을 사랑하는 것도 마귀의 속성이 그 속에 남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약3:14,15). 세상적인 것 정욕적인 것은 다 마귀적인 것으로 마귀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다 씻어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걸맞는) 일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적 정욕적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필수 조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생각을 씻어버리라, 그 길에서 돌아서라, 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욕 적 없이 어떻게 살아가며 세상 적 없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비웃기도 하고 우리도 등한히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맞지 아니한 말씀을 하셨느뇨. 아니라 ‘죽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고 하셨고, 그러기 때문에 ‘천국을 바라보면서 즐거움을 가지라’ 고 하셨으며, “너희끼리 서로 화목” 하고 “형제가 서로 연합하여 동거하라” 고 하셨은즉,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깨달음이 있고 실행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안과 밖으로 깨끗하게 씻어내는 철저한 회개의 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어느 성안을 보아도 어느 구석을 보아도 그리 깨끗하다 할 만한 정결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도 역시 그렇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말씀 하였듯이 내가 지금 얻었다 함도 아니요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다만 앞에 있는 것 위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부르심에 상을 바라보고 좇아가는 자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것들을 다 잊어버리고, 마음속에 들어있는 세상 적 정욕 적 마귀적인 것들을 말끔히 씻어 내버리고, 그 자리에 주님의 말씀(씨)을 담고 때를 따라 내려주시는 이른 비와 늦은 비(말씀)을 받으면 싹을 틔우고 견강하게 자라서 아름다운 결실로 삼십 배 육십 배 백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과 각오로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면, 사람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성령의 능력으로 능히 결실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믿어지는 믿음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적어도 세상사는 일에 걱정하지 아니할 만한 믿음, 매이지 아니할 만한 능력은 가지고 있어야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믿고 순종할 수 있는 은혜가 모두에게 있어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