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삶(2011.4.3.주일예배 설교)
본문 / 에베소서 4:25-32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에베소서 4:21-24 말씀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도의 삶은,
1. 거짓을 버려라 말씀합니다(25절)
본문 25절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영국 격언에 “하루를 행복하게 살려면 이발을 하라, 일주일을 행복하게 살려면 옷을 사라, 한 달을 행복하게 살려면 말을 사라, 일 년을 행복하게 살려면 집을 사라, 평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정직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직에 대한 말은 너무나 많습니다. “정직은 인간의 명예이자 영광이다”, “정직은 곧게 가나 거짓은 뱀과 같이 구불구불하게 간다”, “회의실에서 거짓말하지 않고, 상점에서는 가짜를 팔지 말고, 은행에서는 이자 돈을 속이지 않고, 정치판에서는 공약(헛공약)을 하지 않고, 언론기관에서는 사실대로 보도하고, 도로에서는 교통법규를 지키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정직은 처음에는 손해 보지만 나중에는 이익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으로 당장의 이익은 볼 수 있지만 그 다음은 더 큰 손해를 보게 됨
20세 때 미국 일리노이 주 어느 상점에 점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웃에 사는 부인이 물건을 사갔는데, 그 부인에게 3센트를 더 받은 것이 상점 문을 닫고 계산하다 알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예민한 양심 때문에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돌려주기 위해서 일을 마치고 난 후 밤에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길을 걸어가 그 부인에게 사과하고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어머나! 이 3센트는 백금보다 더 귀한 것이네요. 당신의 고귀한 마음은 반드시 참된 것으로 보상받을 때가 있을 거예요” 라고 하더랍니다. 그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그 가게는 날마다 장사가 워싱턴 전기, 프랭클린 전기, 플루타크 영웅전, 법전을 읽으며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미국의 훌륭한 대통령이 되어 흑인 노예를 해방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2. 의분을 조심하라 말씀합니다.
본문 26,27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본문에는 성도가 분을 내는 일이 있다는 말씀을 전제하면서 그 분노를 죄를 짓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 분노합니까? 우리 성도는 죄에 대해 분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거룩한 분노라고 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분노라 해도 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거룩한 분노로 시작했다가 왜 실패로 끝나는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시작한 분노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고 끝나야 하는 가하면, 시작한 것은 공의였지만, 결국 불의에 대한 정죄하는 마음, 거짓에 대해 비난하는 말들이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결과요, 결국 불의에 대한 정죄하는 마음, 거짓에 대해 비난하는 말들이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결과요, 교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고도의 절제력과 조심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마귀에게 틈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3. 덕을 세우는 말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29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더러운 말”은 부패한 말, 악의에 찬 말, 중상모략 등의 말입니다. 남에게 상처 주고, 공동체에 분쟁을 일으키는 말이 더러운 말입니다. “선한 말”은 건실하고 옳은 말, 말을 하는 목적이 교회와 성도 상호간에 덕을 세우며,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 말이 정말 중요합니다.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성당에서 한 신부가 미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부 곁에서 시중들던 소년이 그만 실수를 해서 성찬예식에 사용되는 포도주 잔을 엎질러 버렸습니다. 잔은 깨지고 포도주가 땅에 쏟아졌습니다. 신부가 노하여 소년에게 소리 질렀습니다. “다시는 제단 앞에 나타나지 마라” 하고 호되게 꾸중했습니다. 비슷한 일이 다른 성당에서도 일어났습니다. 그 성당의 신부는 화를 내지 않고 말했습니다.
“괜찮다, 나도 어렸을 때 실수를 많이 했단다. 힘내거라” 라고 소년을 다독였습니다. 성당에서 쫓겨났던 소년은 커서 유고슬라비아의 대통령이 되었으며, 독재로 군립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셉브로즈 티토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쏟고도 따듯한 위로를 받은 소년은 성장해서 천주교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풀턴 쉰 주교입니다.
4.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하십니다.
에베소서 4:10절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 심을 받았느니라.”
여러분 성령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엄위하신 성삼위 중 한 분이십니다. 오순절날 강림하셔서 교회를 태동시키신 분이십니다. 베드로와 바울등 사도들을 통해 선교사역을 일으키신 분입니다. 우리에게 능력과 권능을 주셔서 복음의 증인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령님은 성도 개개인의 생애에 주도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령님이 특별한 사역자에게만 임하셨습니다. 또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강력하게 역사하셨습니다. 하지만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구분을 전혀 하지 않으십니다. 요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만인에게” 부어주실 것을 예언하게 하셨고, 심지어 ‘남종과 여종에게’부어 주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제는 성도들 각 개인의 삶을 성령님께서 친히 주관하시고, 간섭하시고, 다스리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8:9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고, 다스리시고, 간섭하심이 분명하게 나타나야 그리스도의 사람이고, 새로 지으심을 받아 새 사람을 입은 성도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성령님은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5. 서로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31,32절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 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여기 악독, 노함, 떠드는 것, 훼방하는 것 등의 모든 악의는 상처를 입을 때 생기는 것들입니다. 아무리 바르고 선하게 살려고 해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일단 상처를 받고 나면 사람은 악심을 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새사람을 입은 성도는 이런 경우에 있어서도 악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아니 악심을 버리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고, 32절 말씀 같이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우리에게 용서가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복수해야만 마음이 풀리고, 거꾸러뜨려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정말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로마서 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거짓에서 참으로, 도적질에서 구제로, 더러운 말에서 선한 말로, 악독과 악의가 가득한 마음에서 인자와 용서와, 긍휼이 넘치는 마음으로 실천을 해야 합니다. 만약 이런 삶이 없다면, 우리는 아직 의와 거룩하심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고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이 새 사람을 입고 있는지, 아직 인지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다 담당하셨고, 또한 우리를 새롭게 하시어 새 사람을 입고 거룩한 생활을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에 우리 주님의 고난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감사하며, 새 사람을 입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