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자유의 길 / 마르코 복음 묵상/안셀름 그륀

2015. 10. 14. 오전 9:13:48

글자


예수, 자유의 길 1/  마르코 복음 묵상
                                                   -안셀름 그륀 분도출판사 2004 230페이지 7,000원 


입문                         

...마르코는 복음서를 쓴 첫 인물이다. 이로써 그는 완전히 새로운 문학장르를 창조하고 놀라운 신학적 업적도 일구었다.

...마르코 복음 전체는 예수께서 악마들과 벌이시는 논쟁으로 일관한다. 이는 오늘날 독자들에게 낯설게 여겨진다.
인간은 오늘날 악에 의해 결정된 세상 속에 맡겨져 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악의 세력에 매력을 느낀다. 상처 입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일이 허다하다. 다른 사람을 괴롭힘으로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이들은 모독과 실패를 거듭하는데서 악으로 빠지기도 한다.
예수는 이런 이들에게 다가간다. 예수는 이런 이들을 일으키시고 받아주시고 존엄을 회복해 준다.

저자

요한마르코/베드로의 통역관/ 이방계 그리스도 인을 위한 복음.
그리스에 거주하는 유다계 그리스도인
마르코는 팔레스티나의 지리에 대해 어둡다.

마르코 복음의 신학 /신뢰의 신학(슈라이버)

...마르코 복음을 묵상할 때 중요한 것은 치유자요 의사이며 하느님에 관해 올바르게 가르치시는 스승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
하느님의 위임으로 인간을 악마의 세력에서 해방시키시고 당신의 목숨을 바치심으로 악마를 이겨내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 (18)


복음의 구성

샌드위치구성....마귀 악령 미신등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도록 공동체에 경고.
갈일래아활동(1,16-8,21)과  예루살렘에서의 운명911,1-15,39)으로 구성

그 사이에 맹인을 치유한 두이야기가 있다(8,22-26, 10,46-52)
제자들의 눈 멂과 관련 .... 눈이 있어도 못봅니까?(8,18)제자들도 바리사이들과 마찬가지로 눈이 멀었다.
제대로 보는 눈으로 예수를 추종했던 유일한 제자는 맹인 바르티오매오다.

... 우리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갈릴래아에 머물기를 원한다. 하지만 길은 우리가 죽을 곳 예루살렘으로 나있다(25 p)


신뢰의 신학

... 그분은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신다는 신뢰로부터 당신의 내적인 권능을 믿었던 분이고 당신 마음속에 있는 바를 단순하게 말씀하시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가차없이 행하시는 분이며 적대자들과의 대결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끝까지 지키시는 분이다.

... 예수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은 무기력과 실패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제자들이 그 사랑을 믿기 어렵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못한다.

마르코는 많은 불안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현대인 들에게 신뢰의 신학을 이야기 한다.

삼중의 긴장선.

1. 세례자 요한이 준비하는 길로 시작하여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 앞서 갈릴레아로 가는 것...제자들의 길, 추종의 길
2. 선교... 예수의 활동에 언제나 "함구령" 백인대장의 고백으로 끝남
3. 세례, 거룩한 변모, 죽음 등의 사건에서 계속되는 예수의 신원에 대한 하늘의 계시
4. 샌드위치 방식의 구성.


해석


시작(1,1-5)
복음(기쁜소식)의 시작이라는 말로 시작 천지 창조를 연상케한다.
하느님께서 예수 안에서 새로운 나라를 이루신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그 나라는 하느님이 다스리시며 인간들이 하느님의 가까이 계심을 행복과 구원으로 체험하는 나라이다.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비둘기는 인간에게 내려온 하느님의 사랑의 상징이다.
그분은 참된 인간이 되기를 방해하거나 전도시키는 모든 세력들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것이다. 그분은 인간을, 하느님께서 한 처음에 세상을 창조할 때 생각해 두셨던 그 본디 모습으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예수에게 일어났던 일은 세례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일어난다. 하늘이 우리에게도 열린다.
그대는 내 마음에 든다. 그대가 존재하니 이 얼마나 좋은가?

요단강.. 우리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많은 죄를 범한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보시지 않으신다. 우리는 죄의 강물에서 올라온다..  

40일의 광야...들짐승과 천사들의 긴장, 충동과 정신, 공격과 사랑, 들짐승의 파괴적인 야수성과 천사의 따뜻한 돌봄 사이의 긴장. 우리는 일생동안 이 두 축 사이를 왕래하며 삶을 영위한다.

때가 차서.... 일상의 시간을 형성하고 완성하는 적절한 순간.. 때가 충만에 이르렀다.
하느님께서 가까이 오셨다.
모든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느님께서 시간 안으로 들어오시고 그러기에 시간은 충만이다.
예수께서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으로 오신다. 인간은 참회가 아니라 회개하는 자세를 취해야한다.
생각을 바꾸는것.... 그러면 하느님께서 가까이 오심을 알게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오시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어디에나 현존하시는 그분을 바라보기 위하여 눈을 뜨기만 하면 된다. (43p)  
히브리인들은 인간이 종종 잘못된 길을 간다고 생각했다. 그런 전도된 길을 그만두고 올바른 길을 걷는 것이 회개이다. 멸망으로 이끄는 길은 접어두고 본래의 길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회개이다.
그러니까 삶의 방향을 전환하여 복음을 믿고 복음을 신뢰해야한다. 기쁜 소식안에 머무는 사람에게는 말씀이 자기 안에 머문다는 식으로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는 ㅅ신뢰가 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신뢰도 회개에 속한다.

악령들린 사람의 치유(1,21-28)

...마르코에게 질병은 악령에 사로잡힌 상태를 뜻한다. 인간을 지배하는 악령들은, 강요, 고정된 이상, 노이로제의 복잡성을 가져다 준다.  악령들은 인간과 하느님의 참 모습도 가린다.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되게 하는 일이 곧 치유이다.
악령은 우리의 병들고 그릇된 하느님 상과 왜곡된 인간상을 대변한다.
그릇된 하느님 상이 우리를 왜곡시킨다.
우리는 하느님을 생각지 못했던 삶의 모든 사건들에 대한 안전장치로 이용한다.
우리는 하느님을 통해 자이를 불필요하게 확장시키고 다른 삶들보다 우월성을 주장하려한다. 우리는 하느님을 이용하여 우리의 이익을 도모하려한다.이런 사람은 예수의 접근을 견디지 못하고 소리 지른다.
환자는 악마의 권세와 예수의 권위 사이에 서 잇다.
십자가 위에서 외치신 예수의 비명은 악마에 대한 승리의 선포이다.바리사이들은 율법을 해석하는데 그 분은 하느님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 자체 안에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게 하신다. 이 가르침은 인간을 해방시켜 자기 자신이 되게한다.    


예수, 자유의 길 2

나병환자의 치유(1,40-45)

... 예수 시대에는 나병환자들은 인간 사회와 차단되었다.
피부는 발진이나 종양을 통해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표현한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 배척받고 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예수께 다가온다.그는 게속 그렇게 인생을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온전한 치유를 위해서는 치유받을 사람이 먼저 침묵해야한다. 그리하여 치유가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에까지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중풍병자의 치유(2,1-12)
중풍병자의 죄? 그의 본질적인 죄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삶을 당당하게 제대로 살지 않았다는데 있다.


바리사이들과의 논쟁(2,18-28)

...마르코는 예수와 바리사이들과의 논쟁을 여러곳에서 이야기한다.
단식논쟁/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은 ㅎㄴ인잔치의 손님들이 단식할 수 없다(2,19)
혼인은 완성된 자기실현을 의미한다.

손 오그라든 병자의 치유(3,1-6)

예수의 비유의 말씀(4,1-34)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네부류가 있다.
1. 말씀이 길가에 떨어진 사람들....새들이 쫀다. 새들은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이리저리 떠 다니는 생각을 의미한다. 늘 수많은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은 악을 행하지는 않지만 결국은 하느님에게 자기 자신을 내맡길 수 없게된다.
2. 말씀이 돌밭에 떨어진 사람들...쉽게 감동하는 사람들..이들은 말씀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말씀을 듣는다. 그러나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이는 예수의 말씀을 기꺼이 대하는 수만은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한다. 이들은 깊이가 없으므로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3. 말씀이 가시덤불에 떨어진 사람들...세상 걱정, 재물의 유혹, 욕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런 걱정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질식시킨다.
우리는 자신의 상처에 집착하는 나머지 우리에게 치유와 해방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 말씀에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는다. 늘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고 일찍이 겪은 모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4. 우리가 하느님 말씀에 마음을 맏기면 말씀이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이다.

삶의 또 다른 전망을 풍성하게 베푸는 일이다. 자기가 받은 것을 대담하게 베푸는 사람은 그의 손이 비어잇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으로 가득 채워짐을 체험한다.

절로 자라는 씨 비유(이는 마르코 복음에만 있다) (4,27)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영혼이나 세상이란 밭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은 늘 하나의 신비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인간의 구원을 이루신다.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이 보이는 것에 바로 하느님의 구원의 위대한 신비가 감추어져 있다. 십자가의 무능에서 하느님께서는 악마를 이겨내시는 당신 권능을 계시하신다.


호수의 풍랑(4,35-41  6,45-52)

...마르코는 예수께서 호수를 건너시는 모습을 세번 전해준다(4,35  :  6,45  :  8,14)
그 때마다 제자들은 위기에 빠져 있다. 예수 께서는 구원자로 나타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예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눈이 먼 상태이다.

...예수께서는 거센 풍랑이 이는 삶의 호수를 건너가는 우리의 여정에 동행하신다.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늘 위기에 빠진다. 우리가 예수께 향하기만 하면 이런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된다.

...우리가 곤경에 빠질 때, 삶의 거센 바람과 폭풍이 우리에게 휘몰아칠 때, 우리의 영혼이 무의식적인 물 속에 잠겨 죽게 되었을 때, 우리는 거의 홀로 남아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배 안에서 자고 계시다.  우리는 그분을 느끼지 못한다.
예수의 말씀이다. "왜 겁냅니까? 아직도 믿지 못합니까?"

...호수에 관한 두째이야기는 제자들만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데 역풍이 불어 밤새 제자들은 수고를 한다.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자주 역풍을 만난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이 되기까지 이들을 내버려 둔다. 항구로 항해하는 우리의 여정에는 온 밤이 소요된다. 이는 악마의 권세가 활동하는 영역들을 거쳐 마침내 해방하시는 하느님의 항구에 이르는 우리 삶의 여정을 상징한다. 새벽은 부활의 시간이다.

...풍랑과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 우리 삶의 여정에 동참해 주시는 분을 깨달아야한다(92p)



게라사에서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의 치유(5,1-20)

... 이 이야기는 마르코에만 있다. 곳은 데카폴리스라는 이방인 지역이다. 이는 예수께서 이방인지역도 자신의 활동무대에서 제외하지 아니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무덤근처에 사는 사람. 어두움이 그를 지배하는 우울증 환자같은 상태이다.
이들은 내면의 무덤에 거주한다. 무덤은 인간의 타락이다.  모든 것에서 죽음과 부패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이들에게는 약동하는 생명력이 없고 자학적이고 파괴적이며 악의 소용돌이에 산다.
이들은 대개 사람을 피한다.  그에게는 엄청난 힘이 솟구쳐 아무도 그를 휘어 잡을 수 없다.  그는 쇠고랑을 부수고 쇠사슬을 끊는다.
그는 또한 밤낮없이 소리 지른다. 이는 아마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욕구의 표출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기 위해 무덤 가까이 살면서 자신에게는 상처를 입힌다. 이는 죽기를 원하지만 또한 자기를 느끼고 싶어하는 자의 유일한 선택이다.
그의 이름은 군단...6000명의 군인...환자는 육천개의 군화로 짓밟힌 상태이다.
더러운 영은 돼지에게로 들어가고 물속으로 빠진다... 물은 무의식 세계다.
돼지떼는 일종의 재산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때때로 재산 때문에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다.
돼지떼의 주인은 이를 보고 예수께 마을을 떠나달라고 한다.  그들은 구원자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구원자가 자신들의 재산과 관습을 무너뜨리고 삶을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치유받은 사람은 예수님 곁에 있고 싶어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는 가족과 이웃에게 예수의 능력과 자비를 전해야한다.  그가 건강해 지기위해서는 그에게 상처를 입혔던 사람들과의 화해가 필요하다.
이를 듣고 모두들 놀란다(5,20)


야이로의 딸과 하혈하는 부인의 치유(5,21-43)

...야이로의 딸의 소생과 하혈하는 부인의 치유를 예술적으로 엮어놓은 이 이야기는 인간관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의 관심을 받지 못한 소녀가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버지는 화당장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열심한 신앙과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딸을 구할 수 없다.
그는 예수를 찾아가 발치에 엎드려 구원을 청한다. 자신의 무능을 인정한 것이다.
예수는 딸을 고치기 전에 문제가 이 아버지에게 잇음을 아신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때딸도 역시 아버지의 손에서 해방될 수 없다.
아버지가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집착을 버리고 하느님의 손에 맡길 때 딸은 건강해 질 수 있다.

..탈리다 쿰...일어나라.
그리고 음식을 주라. 소녀의 원기와 생명력을 강화 시키기 위해서는 음식이 필요하다.
야이로의 딸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12년 동안 하혈하는 부인을 만난다.
이 부인은 이웃과의 관계를 위해 늘 자신을 내 주었다. 피는 힘과 능력과 생명력을 말한다.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얻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고 온 힘을 소진했다.
그녀는 갈수록 점점 약해졌다.
그녀는 많은 것을 필요로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피만이 아니라 가진 모든 재산을 주었다. 재산과 돈은 꿈에서 늘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의미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모든 능력을 발휘하고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인다. 그러나 우리는 늘 손해만 보고 결국 허탈감만 느낀다.
이제 부인은 자신을 내주기를 포기하고 예수의 옷자락을 만진다.
그녀는 치유된다.
우리가 스스로 얻으려하고 완성하려는 노력은 때때로 수포로 돌아간다.
그러나 예수를 신뢰하고 그에 기댈 때 모든 것을 그분께서 받는다.


오천 혹은(6,30-44) 사천명을 먹이신 기적(8,1-10)

... 이 두 기적은 하나의 사건을 두번 전하는 것 같기도하지만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두번째 기적에서 제자들은 첫번째의 기적을 모두 잊은 듯하다.
이 두 기적은 모두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장면들 사이에 있다.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까?
그토록 마음이 둔합니까?
눈이 있어도 못보고 귀가 있어도 못 듣습니까?"
빵을 많게 하신 두번의 기적도 호수를 세번이나 건너신 사건을 통해서도 제자들은 신앙에 마음을 열지 않는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독자에게 복음을 열린 눈과 넓은 마음으로 읽으라는 끊임없는 경고다.

...빵은 떼어 나눌 때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다.
이것은 예수의 죽음을 암시한다.
에수의 죽음은 생명의 원천이다.
두 기적 이야기의 모든 수는다 뜻이 잇다.
빵 다섯개 오천명 열두광주리
빵 일곱개 사천명 일곱광주리
5는 인간을 상징한다. 열두광주리는 교회다. 일곱개는 변화 사천명은 하늘을 가르키는 방위의 수다.
첫 기적은 목자를 잃은 이스라엘 백성에 행해지고 두번째는 사방에서 모여온 이방인에게 행해진다.

이 빵은 곧 제자들과 함께 베에 타고 있었던 그분 자신의 몸이다.
굶주린채 집으로 가다가 기진해 버리겠다....예수님을 만나지 않고는 길을 갈 수 없다는 뜻이다.

...빵을 많게 하신 두 기적과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시는 세 장면은 모두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우리를 위해 바치시어 우리를 하느님의 항구로 인도하신다.
   

예수 자유의 길 3

이방인 여인과 그 딸(7,24-30)

.... 예수님께서는 헤로데의 추적을 피하여 이방인 지역에 안전하게 계실 수 잇었다. 그 때 시로페니키아 출신의 한 여인이 찾아온다.
이 부인은 딸한테서 악령을 쫓아달라고 간청한다.
예수님은 자녀들의 빵을 개에게 줄 수 없다고 하신다.
이 이야기는 이 부인이 딸에게 충분히 음식을 주지 않았다는 질책으로 보인다.
지금도 어떤 사람은 개를 딸보다 중히 여기기도한다는 것을 상기하자.
곧 부인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그녀가 딸을 등한시하면 딸은 병든다.
결국 어머니의 기대와 계획이 딸을 묶는 원인이다.
귀신은 떠나고 딸은 회복된다.



귀먹은 반 벙어리의 치유(7,31-37)

...이번의 치유도 데카폴리스라는 이방인 지역이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목소리에 담겨 있는 감정들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말 할 수 없는 사람은 이웃과의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마침내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도 친분을 나눌 수도 없게 된다.
그는 아마도 말을 못하는 무능력자로 공인된다. 그가 그렇게 된 까닭은 아마도 사람들이 늘 그의 말에 참견하고 교정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가 귀를 먹은 것도 너무 많은 거부외 비판을 받은 까닭이다. 그가 들은 모든 것이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러니 이제 더 들으려하지 않는다.

...예수님 께서는 손가락을 환자의 두 귀에 넣는다.
이는 환자가 자신에게 화해하도록 돕는다. 환자의 두 귀를 막아 더 이상 그를 상처내게하는 모든 소리로 부터 그를 보호한다.
예수님 께선 환자의 혜에 침을 바르신다.  이는 입맞춤의 상징이다. 입맞춤을 통해 사람은 서로 내면적인 것을 주고 받는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셨다.(7,34) 마음을 열어주는 대화는 하늘과 무한한 지평이 열린다는 암시다.
열려라(7,34)  
이제 그대 안에 있는 것을 말하라. 용기를 내어 마음을 열라. 그대가 마음을 닫으면 결코 평활르 누릴 수 없다.

...그분이 모든 것을 좋게하셨다. 귀머거리를 듣게하고 벙어리들을 말하게하셨다"(7,37)
이는 세상의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셨던 일의 반복이다.
그분은 모든 것을 좋게하시는 분이시다.
이제 이방인들은 하느님께서 친히 예수님 안에서 활동하고 계신다고 깨닫는다.



베싸이다의 맹인 치유(8,22-26)

...예수님께서는 맹인의 손을 잡으신다. 그리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신다.
아마도 그가 맹인 이었던 까닥은 한번도 마을 밖을 나가보지 못했기 떼문에, 혹은 좁은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치유를 위해선 특별한 분위기 특별한 장소가 필요하다. 사람들의 눈은 치유를 방해한다.
이는 세상을 볼 수 있는 상태를 뜻하기도한다.

....인간이 자기의 두 눈으로 모든 것을 보기 위하여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은 처음에는 모든 것을 윤곽정도만 본다.  그는 사실 모든 것을 보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대충 둘러보며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지만 그는 아직 얼굴을 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진정 사람들을 만나고 온당하게 대하고 서로의 삶을 변화 시키는 관계를 맺으려면 서로를 자세히 보아야 한다.

... 이는 마지막 예수의 갈릴레아활동이다.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것이다.
예루살렘에 오르시는 동안 제자들은 마치 맹인들 처럼 행동한다.
제자들의 눈은 예수님의 부활을 볼 때까지 닫혀 잇다.  오히려 로마인 백인 대장이 먼저 깨달음에 닫는다.



세번에 걸친 수난 예고(8,31-33  9,30-32  10,32-34)

... 권능은 점점 무능으로 사라지고 바로 이것을 통해 권능이 드러난다.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진정한 신앙고백은 효과가 없다.
자기를 드러내기 위하여  하느님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시는데, 제자들은 큰 사람 대접을 받으려 한다.

...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는 사랑에 개방되어 잇고 새로운 것에 대해 놀랄 수 있는 아이의 마음이 필요하다.
성공과 경쟁의 세상에서 아직 순수한 사랑을 믿기 때문에 권력자들에게 버림받고 실패의 길을 가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걸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아이처럼 취급한다.(133p)

... 제자들의 틀린 모습은 늘 세속적인 생각, 공동체 내에서 큰 사람이 된느 것, 다른 사람보다 높은 위치등이 관심사다. 그들은 늘 자신의 욕구, 자신의 목숨, 위대함, 권세를 추구한다. 그러나 십자가는 이와 정 반대의 것을 요구한다. 목숨의 포기,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기, 자기를 버리고 하느님에게 의존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참 생명의 길이다.



간질병 소년의 치유(9,14-29)

....불은 정열과 성욕을 상징한다.
물은 무의식의 상징이다.


결혼의 의미(10,2-12)

...결혼과 이혼과 어린이.... 부와 지배와 봉사.
가톨릭교회에서 이 구절은 이혼과 재혼한 사람들에게 많은 불안과 좌절 단절을 느끼게한 부분이다.
예수님은 계명에 대해 말하지 않고 당시의 통용된  법율에 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것은 목표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을 죄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하다. 그러나 죄는 용서 받을 수 있다.
교회는 교회법적인 차원이고 예수는 이를 뛰어 넘는다.

십자가에서 당신의 삶이 깨어졌던 예수님의 경우는 어떤가? 이것은 마르코 복음의 기쁜 소식이다.-하느님에 의해 부활하신다. 그분은 새 생명을 누리신다.
따라서 마르코는 십자가를 향한 여정 중에 있었던 제자들의 교육에 이혼구절을 결부시킴으로서 혼인의 실패는 새로운 시작이며 예수와 함께 새로운 사랑과 생명력으로 부활할 수 잇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144p)   


재산의 의미(10,17-31)

...재산이 많았던 젊은이 이야기는 제자들을 심히 불안하게했다. 이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사람만이 예수를 따를 수 잇다는 인상ㅇ르 준다. 그러나 마르코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가 재산을 얼마나 소유할 수 있으며 얼마나 팔아야 하는지 따위의 규법과는 거리가 멀다. 이 이야기는 예수를 추종하는 제자들이 얽매여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내적으로 자유롭게 벗어나야함을 강조한다.
젊은이는 계명을 지키고 올바르게 살고 있다.
에수님은 이 젊은이의 잠재능력을 계발하려고 하신다.
이 젊은이는 자신의 재산을 처분할 때 비로소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를 추종하는 다른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처분해야 할 것은 재산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이룩한 성ㄱ공, 그릇된 하느님 상, 인간관, 선입견, 습관이나 인간관계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한다. 나는 무엇에 집착하고 잇는가?
나를 방해하는 것은 간혹 타인에게 모범이 되는 올곧은 삶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고집한다. 내가 가진 것은 그것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그것을 버린다면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알 길이 없다.
재산이 많앗던 젊은이에게 불안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 참된 삶에 대한 갈망보다 컸다. 그래서 그는 슬픔에 잠겨 예수를 떠난다.

... 그 다음 낙타와 바늘귀 이야기는 더욱 제자들을 어렵게 한다.
예수는 이런 말로 재화를 비난하려하시는 것이 아니다.
재화는 하느님에 속한다.
하느님께서는 부유한 분이시며 당신의 신적 풍요로움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다. 하지만 재화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재화가 참된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방해할 수도 잇으며 자긍심의 결핍을 이로 대체하려 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자아실현이 어렵다.

...제자들이 놀라자 예수님은 또 다른 길을 열어주신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그렇지 않습니다(10,27)
하느님은 부자의 마음에 가까이 가실수도 있고 (실지로 자캐오나 마태의 집에 드신다)
또한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마음을 열게 하실 수 잇다. 재화에 얽매여 잇는 사람도 뜻밖의 체험을 통하여 그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기 삶의 목적이 재산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데 잇음을 깨닫는다. 하느님 안에서 부유하게 되는 것, 하느님 편에서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형성하는 일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다.

... 이러한 말씀 뒤에 베드로는 자기를 비롯한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렷다고 거만하게 대답한다.
우리는 이 지산에서는 영원한 안식의 장소를 찾을 수도 누릴 수도 없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외적인 집이나 고향을 떠날 때만 하느님 안에서 고향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재산을 집요하게 움켜쥐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 기쁨을 누릴 수 없다.
    
... 예수님께서는 재화에 대한 이 가르침을 통해 추종의 길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내적으로 자유로워진 사람만이 예수께서 자신을 어디로 인도하시는지 이해한다. (151p)




지배와 섬김(10,35-45)

...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닥칠 일을 비교적 자세하게 말씀하셨던 세 번째 수난 예고 후에 제베대오의 아들 둘이 하느님 나라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요청한다.  그들은 영광 스러운 자리를 원한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우리의 권세가 아니라 하느님의 다스림이 관건이다. 하느님 중심이지 인간이 중심이 아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잘못 이해했다.

... 예수의 대답에는 그들이 이미 마르코 복음이 집필되기 전에 순교했다는 사실이 암시되고 있다.

...다른 제자들은 이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를 계기로 교회 공동체 네에서 권세가 어떻게 사용되어야하는지를 가르쳐 주신다.(152p)

... 첫째가 되고자하는 사람은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하고....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 어떤 사람이 나를 위해 죽으면 나는 살아난다... 속전psyche프쉬케
속전의 비유는 예수의 죽음을 해방하는 행위로 이해한다. 우리는 노에처럼 이 세상의 주인들과 결합되어 있고 내적 억압에 사로잡혀 있고, 온갖 격정과 욕구에 지배받고 있다. 이런 우리 자신이 악마의 권세에서 풀려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해방되고 구원된다.
우리는 자유롭게 된다.
예수께서는 이런 대리적 죽음을 하나의 섬김으로 이해하신다. 그분은 노예의 신분이 되시어 우리를 섬기심으로써 노예인 우리를 해방하신다.
그분의 섬김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그분의 죽음은 우리를 옭아매는 세력들의 온갖 속박에서 우리를 해방한다.

...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는 것은 사랑으로 이해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존재 전체로 나를 받아 들인다면 나를 조건없이 사랑한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내게 바치는 것이다. 이런 헌신적인 사랑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사랑은 죽음으로 자신의 참된 본질에 이른다.



맹인 바르티매오의 치유(10.46-52)

...마르코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본격적인 수난 보도에 앞서 맹인 바르티메오의 치유 이야기를 전해준다.

...우리는 대개 이 맹인과  반대로 행동한다. 무엇인가 간청할 일이 잇으면 대부분 주춤거린다. 그런 다음 스스로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그, 결과 괴로움만 맛본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향해 소리친다.
사람들이 그를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맹인은 겉옷을 내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로 왔다.
그에게 겉옷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는 자신의 참된 모습을 가리고 있던 역할과 가면을 벗어버린다.

... 그는 신앙의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기를 우너한다.그는 고통 가운데서도 하느님을 보기를 원한다.
그는 자신의 삶 위에 열린 하늘을 바라보기 원한다.
이웃들, 자기 삶의 사건들, 자기 주변의 자연을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야, 곧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바라보는 사람이라야 제대로 볼 수 잇는 눈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 베싸이다에서 예수님은 치유받은 맹인을 마을로 돌려 보내셨다. 그러나 바르티매오는 당신을 따르는 것을 막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이제껏 스승을 이해하지 못하는 맹인의 신세였다면 바르티매오는 열린 눈으로 예수를 추종하는 유일한 제자이다.  
그는 예수의 수난에서 그 이면을, 큰 고통 속에서도 열린 하늘을 바라보고
죽음의 어둠속에서 하느님의 구원의 빛을 깨닫고
십자가의 비참 속에서 악의 세력에 대한 승리를
무덤 속에서 생명을 발견하고 있다.



예루살렘 입성(11,1-25)

...무화과 나무의 저주... 예수께서는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어셨던 분노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것이 아니다.  잎사귀는 무성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기존의 종교적 질서가 마지막에 이르렀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 우리의 종교적 행동도 상거래의 장소가 되고 있지 않은가? 기도ㅓ할 때 하느님이 관건인가 그대의 욕구가 관건인가? 자신이 잘되기 위하여 하느님을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166p)

...예수님께서는 말라버린 무화과 나무와 성전 정화를 통하여 참된 성전과 기도와 참된 종교심의 본질을 깨닫기 위한 세 단어를 주신다.

... 1. 신앙....제자들이 신앙으로 마술을 행해야하는 의미가 아니다. 바다로 빠지는 산은 도리어 종종 실재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현혹하는 산더미같이 많은 문제와 불안들을 상징한다.
바다는 무의식의 세계다. 불안은 그곳으로 사라져야한다.

...2. 기도... 하느님께 대한 무조건 적인 신뢰에 대한 구체적인 단어...
하느님께서 어떤 상황에서든, 십자가에서까지 우리 곁에 계시다는 확고한 신뢰와 깨달음은 우리의 모든 소원을 채워준다.
기ㅣ도중에 하느님을 체험하는 사람은 충만한 상태에 이르러 소원의 성취를 청하지 않는다.

... 3. 이웃과의 관계....순수한 기도는 용서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뭔가 못마땅하게 생각햇던 사람들을 용서할 때만 비로소 하느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예수 자유의 길 4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12,1-12)

... 예수님은 자신의 운명을 말씀하시고 청중은 이를 알아들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 백성
소작인은 이스라엘 백성을 책임 진 대제관과 율사들
종은 예언자들/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부분 이들 에언자들을 살해했다.

... 놀라운 일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많은 인내심을 보이는 것이다.
그들은 예언자 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을 살해한다.

... 소작인 우화에 이어 짧은 우화/집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새 건물의 머릿돌이 된다.
낡은 성전은 예수의 죽음으로 무너지고 그 효력을 상실한다.
"주님으로 말미암은 일은 우리 눈에 졸랍다"(12,11)
악한 소작인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당신 적대자들과 벌이는 논쟁 사이에 들려주시는 이야기이다.

...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신앙은 세기둥으로 지탱된다.
1. 자유....인간은 하느님께 속하고 황제에 속하지 않는다.(12,13-17)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는 것이 본래의 모습이다.

2. 죽은 이들의 부활... 하느님은 산이들의 하느님이다.(12,27)

3.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12,28-34)....


종말에 관한 담론(13,1-37)

... 종말에 관한 게시를 작은 그룹 네 제자들에게만 알리심....1.인자가 오기전 많은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나타난다./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장담한다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겠다고 장담한다면 그는 참된 메시아가 아닐 것이다.
2. 전쟁과 자연 재해...
3. 인자의 내림...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제 빛을 내지 않으며, 별이 떨어짐...견디기 힘든 영혼의 모습...
4. 인자를 맞는 우리의 태도...인자도 모르는 시간에 대하여...내림의 시간은 고려하지 말라.
깨어있음만 강조...

...게세마니 동산의 제자들이 존다.
우리도 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살고 잇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저 그렇게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이 산다. 우리는 삶에 대한 환상을 스스로 만들고 그 환상에 빠져있다.

...제자들은 눈이 닫혀 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한다. 우리는 실재에 대하여 눈을 감고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현존에 대하여 눈을 감는다.
우리는 계명을 지키고 악을 피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존재란 깨어있는 존재를 뜻한다.

...깨어있음이란 주님을 기다리는 것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수난사화(14-15장)

...제자들의 몰이해는 예수님의 수난에서 절정. 악령들의 힘도 절정. 하지만 악령들이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곳에서 패배한다.
바로 이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예수의 철저하고 절대적인 신뢰도 볼 수 잇음.

...예수 죽음에 대한 암시...1. 한쪽손이 오그라든 이의 치유...선한 일을 하고 목숨을 구하는 일이 당신의 일. 바리사이는 물러나고 대제관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밈.
자신의 가르침에 목숨을 내 놓은 스승.
2. 베다니아의 도유...바리사이 시몬의 집에서 이름 안 밝힌 여인(요한복음에서는 마리아)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의 낭비 -온 세상을 향기로 채움. ...십자가에서 낭비하신 예수의 사랑.

...제자들이 에수의 수난 중에 맹인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그분을 배반하고 마침내 그분을 홀로잇게 한 반면 여인들은 수난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동행한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이 신비에 더 가까이 서있다.

...마르코는 단 두번 구약을 인용한다.
시편 22, 69장..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15,34)
이사야 53장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진다...수난으로 목자가 죽으면 양떼들은 흩어진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목자가 되시어 흩어진 양들을 다시 모으시고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해석해 주신다.
피는 유다인의 전통에 의하면 인격적 의미를 지니고 잇다. 피는 죽음 속에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피와 계약을 연결하시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새로운 게약을 맺으신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게약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았다. 잔을 마신다는 것은 계약에 참여한다는 표시이다.

...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예수께 발라 드릴 때 제자들은 낭비라고 비난한다. 게세마니동산에서 제자들은 깨어잇지 못하고 잠을 잔다.
그분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다. 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다.

...입맞춤은 사랑의표현이지만 종종 배신의 표현이기도하다.
제자들은 다 도망간다.
한 젊은이만 예수를 추종하고 그분 곁에 잇기를 우너한다. 하지만 포졸들이 그를 붙잡자 옷을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난다.
우리도 예수곁에 잇고 싶고 예수를 추종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생명의 위협이 닥치면 우리는 벌거벗은 우리의 알몸을 구한다.

...제자들의 배반은 베드로의 배반으로 절정이다. 그는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스승을 배반한다.

... 바라빠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는 우리 모두를 지칭한다. 예수님께서 죽으시면 우리 모두가 자유롭게 될 것이다.  그분의 죽음이 우리를 대신한다.

...정오가 되자...어둠이 온땅에 세시까지...우리 영혼의 내적 재앙은 새로운 것의 표징이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낡은 부분을 죽게하시어 우리의 새로운 것과 분명한 것, 그리고 거룩한 것이 부활하게 하신다.  십자가에서는 지금까지 우리 삶이 보유하고 있던 모든 것이 무너진다. 낡은 삶의 기준과 태도가 무너지는 것은 신적인 것이 이 세상에 개입하고 악한 세력을 무력화 시키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태양은 떨어진다. 참된 태양이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때문이다.
그분이 죽으셨을 때 어둠이 드디어 물러난다.

...예수님께선 자신의 삶의 태도와 대결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협하는 악마의 세력와 싸우신다.

...악령들이 패배한다면 인간은 자유로워 질 것이다.
이 세상이 그분의 영에 의해 가득차면 어둠은 물러나고 세상은 악마의 세력이 아니라 예수의 사랑 안에 놓이게 될 것이다.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지고..(15,38)
성전의 질서는 이제 끝났다. 지성소에 가는 길을 막았던 휘장이 찢어졌다. 이제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 모든 사람에게 트였다. 사람은 이제 하느님께 다가가기 위해 더 이상 성전의 의식을 거칠 필요가 없다.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데는 성전의 제관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 십자가는 사람들이 메시아이신 예수를 그릇되이 이해하는 것을 곧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메시아로 여기는 것을 바로잡아준다.

우리안의 신적 생명은 우리가 무너지는 듯이 보이는 바로 그곳에서 이 세상의  권세를 이겨낸다. 만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 막바지에 치닫는 그곳이다. 버림과 절망, 극심한 어둠과 실망 속에서 온전한 신뢰로 자신을 하느님에게 내맡기는 사람은 예수를 이해한 사람이며 예수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자녀이다.


부활(16,1-8)
... 부활날 아침 무덤으로 가는 세여인이 다시 등장한다.
해가 뜨오를 무렵은 부활을 상징한다. 제자들은 모두 눈먼 사람이 되어 있는 반면 여인들은 부활날 아침 볼 수 잇는 눈을 지니고 있다.
무덤 입구의 돌은 우리 삶을 방해하는 모든 무거운 것들의 상징이다. 돌이 굴러졌다면 죽음의 세력이 무너진 것이다.

...놀라지마시오....하늘의 전령은 이제 여인들을 기쁜소식을 전하는 전령으로 만든다. 그러나 여인들은 무서워 도망친다.

...그분은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레아로 가신다.
그분은 우리보다 먼저 가시는 분이다. 갈릴레아는 제자들의 고향이며 예수께서 활동하셨던 곳이며 또한 이방인의 땅이다.

그대가 거주하고 일하는 곳에서 그대가 이방인들과 한께 사는 곳에서, 그대 내면의 이방인적 요소를 깨닫는 곳에서 그대는 마지막 순간까지 천상의 아버지께 신뢰하시는 에수님을 깨달을 수 잇고 아울러 그분의 신뢰가 하느님에 의해 부활로 인정받으시는 것을 깨닫는다.

...으리가 십자가를 짊어지는 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모진 운명이나 어떤 사람에 의해 늘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 곳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분을 만날 수 있다. 곧 우리의 굳은 신뢰가 하느님에 의해 인정받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실패, 좌절, 환멸, 죽음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다.(215p)

..복음은 광야에서 시작하여 무덤에서 끝난다. 이 광야와 무덤은 죽음의 장소이며 또한 새로운 생명이 솟아나는 장소이다. 마르코는 기쁜소식이란 말로 복음을 시작한다.

...부활하신 분은 우리에 앞서 갈릴레아로 가신다. 그리고 우리도 믿는다면 죽음에서 생명에로 부활할 것이며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과 딸로서 참회와 회개를 통해서가 아니라 새생명에 대한 기쁨을 통해 우리의 길을 갈 수 잇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218p)



맺는말

...마르코의 복음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메세지를 주는가?
악마와 어둠의 세력에 관한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낯설지 않은가?
마르코의 복음신학은 유다인을 겨냥한 마태오 복음과 그리스철학을 대상으로한 루가복음에 뒤떨어지는 것은 아닌가?끝까지 계속된 제자들의 몰이해나 부활의 메세지를 전하지 않는 여인들을 어떻게 이해할까?

1. 예수를 구원자로 제시함.
2. 우리는 예수를 피할 수 없음. 우리는 그분을 대면해야하고 그 순수하고 명확한 현존을 바로보아야함.
3. 복음서가 미결로 끝남.
빈 무덤이 발견되지만 천사의 메세지도 해결되지 않은 비극으로 보임. 여인들은 천사의 지시에 무서워만함.
4. 십자가 신학.
그분의 권능은 무능에서 승리한다.  가장 크게 버림받고 가장 큰 불안을 체험하는 곳에서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리가 이루어짐.
오늘날 우리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부정적인 것을 등한시하려는 경향이 잇다.
우리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통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어 갈 수 잇다는 생각은 과연 옳은가?

...마르코는 두가지 다른 길을 제시한다.
병자를 치유하고 큰 성공을 거두시는 예수, 충만한 권능으로 적대자를 물리치고 하느님의 뜻을 과감하게 실천하시는분.
유다나 베드로의 배반에 저항하지 않으시는 분,

... 그분은 다정하고 친절한 분이 아니다. 그분은 힘찬 권능을 행사하고 분노하실 수 잇는 분이다.
그분은 병자를 고쳐주시나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저주하시는 분이다.
그분은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져들어가는 순간 뱃고물에서 잠을 자신다.
그분은 우리가 당신 자신을 온전히 알 수 잇도록 하지 않으신다.

...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안에서 우리는 불안과 무능, 어둠과 파멸, 악과 악령을 극복하셧고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계신 분을 볼 수 잇다.
그분은 당신의 차단된 모습에서 인간의 생각과는 전혀다른 당신의 모습에서 항상 우리의 길을 걷도록 도와 주시고 그 길에서 겪는 갈등과 우리의 인생관을 무너뜨릴 수 있는 실패에 대해 불안해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신약 공부,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