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생명의 문 /요한복음 묵상/안셀름 그륀 저

2015. 10. 14. 오전 9:07:31

글자

예수, 생명의 문 1 /요한복음 묵상


                                    안셀름 그륀 저/ 김선태 옮김  2004 분도출판사 7,000원


입문(p7)
...마르코복음의 구체적인 구원역사
마태오와 루가의 아름다운 비유들
요한복음/신비의 복음.
이런 신비의 차원이 없이는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기 실은 힘들다.
요한복음은 자기 자신이 되는 길과 하느님과 하나 되는 길을 묘사하고 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는 다른 언어로 말씀하신다.
이 복음에서는 공관복음들에서 전해주는 예수의 말씀을 거의 들을 수 없고 주로 요한의 담론이다.
요한 복음은 예수에 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제공하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분의 충만한 모습을 바라보게하여 하느님의 체험으로 인도하는 분으로 깨닫게한다.
요한 예수를 하느님을 계시하시는 분으로 알려준다. 곧 하느님을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잇게 하신 분이라고 말한다.
곧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나게 하신다.

...우리는 어디서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요한이 확신한 바에 따르면 인간이 하느님과 멀어진 결과 자기 자신에게서 소외되고 아울러 자신의 신적 핵심에서 소외되었다.
인간의 구원이란 인간이 신적 생명에 다시 결합되는 상태 곧 신적 생명으로 가득차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다.

....요한복음의 두드러진 언어는 영광과 계시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계시하신다. 

...영지주의와 모든 신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길과 빛과 생명 그리고 진리다.

...신비의 중요한 형상 가운데 하나는 실재를 제대로 깨닫게하는 형상이다. 우리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세상과 우리 삶에 대한 일정한 표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본질적으로 실재라 여긴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진리이시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참된 실재를 만난다.
자신의 착각에서 벗어나야 참된 구원을 체험한다.
그는 자기 자신과 한나가 되며 하느님과 실재와도 하나가 된다. 신비는 늘 하나되는 체험이다. 익서은 어떤 사변적 개념이 아니라 예수께서 우리에게 맛보게 하시려는 체험이다.

...인간의 참된 구원이란 인간이 참된 자기 자신을 만나고 또한 실재와 만나는데 있으며 자신의 욕구에 얽매여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데 있다.
나에게 요한복음은 나의 상처난 내면을 치유하고 참된생명에 이르는 중요한 길이다.

요한복음 상징의 복음.
...

요한복음 신비의 문헌
...예수의 언어는 신비에 가까우며 이런 신비를 계속 유지한다.
예수의 대화 상대자인 사마리아여인, 니고데모, 제자들, 적대자 유대인들은 말씀을 자주 오해한다.
불교의 공안과 비슷....
이 지상에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단지 비유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진리는 오직 신비한 언어로만 이야기할 수 있다.


요한복음 한 편의 드라마.
...60%가 긴대화 20% 짧은 대화 20%만 설명
나자렛사람 예수 안에서 하느님께서 나타나셨다는 사실에 대한 독자나 관객의 의심과 저항에 대하여 온갖 대답을 통해 설득한다.
요한은 7가지 표징을 통하여 이런 영광을 증언한다. 사람들이 이를 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대화를 통하여 독자는 제대로 이해하고 신앙을 고백할 수 있도록 초대된다.


요한복음의 역사적 차원

...요한은 예수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을 매우 잘 알고 있었고 그의 년대표는 공관복음들보다 역사적으로 더 정확하다.  세례자 요한의 출현 시기와 장소도 가장 정확하다. 하지만 요한은 역사적 정확성에 관심이 없다.
로고스가 참된 육신을 취하시어 역사안에 사람으로 나타나셨던 일이 중요하다.

...요한 복음의 저자와 집필시기.  예수를 사랑했던 익명의 제자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와 관련 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편집자다. 사랑받는 제자는 이 복음이 집필되기 전에 이미 죽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옆자리에 앉고, 십자가 아래 마리아와 같이 있으며, 베드로보다 먼저 무덤에 도착한다. 그는 12제자단에 속하지 않으며 교회 안에서 직무도 맡지 않았고 단지 공동체 안에서 예수를 증언했다.

...요한의 공동체.. 바리사이파의 미움과 증오를 받은 유다계 그리스도인....참된 이스라엘의 대리인,, 이 공동체에는 요한의 제자들과 참된 이스라엘인 그리고 귀의한 사마리아인들과 그리스인이 있었음...
처음엔 요단강 건너편 나중에 에페소로 이주(98-117년까지 존속)...요한복음집필...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시고 모든 이가 구원을 받아야한다고 확신했던 공동체...


예수, 생명의 문 2 /요한복음 묵상

해석
...요한복음은 영성적인 신비의 복음이다. 요한복음은 우리 현존재의 이면을 바라보게 한다.
신비의 체험이 인간에게 치유와 해방을 가져다 준다. 인간은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 안에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깨닫고 만날 경우에 온전한 인간이 된다.


머리말(1,1-18)
...마태오와 루가는 예수께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람으로 태어나셨는지를 보도한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께서 태어나신 경위가 아니라 태어나신 사실만을 보도한다.
예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 요한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를 사람으로 지칭하는 곳이 단 세곳이지만 요한은 무려 19번이나 참사람을 강조한다.

...생명과 죽음은 욯ㄴ복음에서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반대 개념이다. 많은 사람들은 단지 피상적으로 산다.
일하고 먹고 즐기고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서 산다. 이것은 요한이 보기엔 죽음이다. 참된 생명이란 하느님 안에서의 삶이다.

...로고스는 생명임.
생명은 요한에게 있어서 흐름이다.

...우리는 어둠 속에 있는 동안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신을 상실한다. 우리는 못보는 소경이며 죽은 목숨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육신은 이 세상과 결합된 존재, 덧없고 헛된 존재, 기댈 곳이 없는 존재, 인간 실존의 무상함을 상징한다.
장막은 영원히 지속되는 장소들이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신앙은 예수의 육신 안에서 하느님을 바라보는 데서 지속된다.....46p


첫 제자의 증언(1,35-51)

...제자들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상징이다. 제자들 모습에서 우리가 신앙에 이르는 과정을 엿볼 수 있고 추종의 의미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

...1장 40절에서 한 제자는 안드레아며 다른 제자는 익명이다. 아마도 복음 집필자일 것이다. 게파는 첫 제자가 아니다.

...인자 위에 천사가 오르내린다는 것은 예수께서 관상의 장소가 된다는 뜻이다. 그분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을 바라본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하늘을 열어준다.

구원의 표시:가나의 혼인잔치, 장사꾼 추방(2장)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사람들은 잔치를 더 즐기고 싶다.  사람들이 즐기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사랑이 없는 것...이것이 진정한 궁핍이다.
요한에게 잇어서는 죄에서 구원보다 사랑에서의 해방이다.
여섯항아리는 불완전한 수다. 인간의 삶은 불완전하다. 삶은 단지 노동과 수고와 멍에로 이루어 진다. 돌독.--인간의 삶은 경직되어 있다.

... 마리아는 예수의 공생활 첫 머리에 등장하고 십자가 아래에서 등장한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시는 문이다.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때란 부활을 통한 영광의 때다.
그분의 때가 도래하면 그분은 포도주를 충분하게 주실 것이다.
참된 포도주란 예수의 열린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돌 항아리는 가혹하고 엄격한 율법주의의 경직성이다.  포도주는 생동감과 기쁨의 상징이며 인간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주는 복음을 상징한다.
물로서는 잔치를 벌일 수 없다. 우리를 황홀하게하는 잔치에서는 포도주가 필요하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것이 영지주의의 핵심물음이다. 우리는 하느님에겍서 왔다. 우리의 참된 근원은 하느님이다.
예수로 말미암아 포도주를 충분히 마시고 하느님과 잔치를 거행할 때가 도래했다. 요한은 이 기적을 첫째 표징이라 했다. 요한의 복음에는 7개의 표징이 있다. 다른 공관 복음서가 기적이 권능의 행위지만 요한에서는 표징이다.  

... 예수께서는 철저한 포기를 설교한 요한처럼 금욕주의자가 아니다. 그분은 삶의 충만함을 가져다주신다. 그분은 새로운 기쁨과 맛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다.

...공관복음이 성전정화사건을 수난의 임박시에 기술하지만 요한은 공생활 초기에 기술한다.
참된 ㅃ스카는 예수의 죽음이다.
성전 정화사건의 다른 주제는 정화다. 예수의 죽음으로 인간 육신의 성전이 정화된다.
인간의 육신은 상인들이 고함치고 소와 양과 비둘기들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시장 바닥이 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 내면의 상징이다.
우리안의 소는 왕성한 정욕과 성욕이다.
우리 안의 양은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부자유다. 우리 안의 비둘기는 이리저리 푸드득 거리며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생각 잡념이다.

...에수의 죽음은 우리 인간 존재를 기만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정화시킨다. 예수의 죽음은 육신을 하느님의 성전으로 재건하신다.
성전정화 이야기는 구원의 표시이다.


니고데모와의 대화(3,1-13)

...인간의 삶이 어떻게 실현되고 어떻게 온전한 구원에 아르는가?
거듭남이란 이세상으로부터 태어나는 것과 하느님에게서 태어나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어 하느님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상태가 거듭남이다.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이란 뜻은 자신의 근원이 하느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뜻한다.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은 다르게 행동하며 다른 빛을 낸다. 그는 자유롭다.
그는 생명력이 넘친다. 생명이 그 안에 용솟음친다.


 예수, 생명의 문 3 /요한복음 묵상  


예수의 사명(3,14-21)
...구리뱀.
뱀은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모든 원한과 고통의 감정을 나타낸다.

예수께서는 구리뱀처럼 십자가 위에서 높이 들어올려지시고 십자가 기둥에 달리실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은 그분의 상처로 말미암아 구원될 것이다.

...참된 생명의 열쇠는 진리를 바라보는데 있다.
비극을 감수하는 일은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강함의 표시이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 삶의 비극을 바라보는 데 바로 구원이 있다. (73p)

...하느님께서는 마기 자신에게서 소외되고w자기 자신을 상실한 사람들이 멸망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상실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중심을 상실했으며, 자신들의 근원적 모습을 잃었으며 순수성과 사랑하는 힘을 잃어버렸다.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행위다.
영원한 생명은 죽음 이후에 비로소 누리는 생명이 아니다.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생명이다.
만일 내가 현재 이 순간에 온전히 충실하다면 나 자신과 하나가 된다면 나는 영원한 생명의 맛을 느낄수 있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순간에 시간과 영원은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는 이 현재 안에 모아진다.
그런 순간이면 나는 나 자신과 하나이며 하느님과도 하나이다. 나는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께서 나 안에 계심을 느낀다(75p)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미 구원을 얻어 생명을 누리고 있으며 그의 상처들은 그 독성과 죽음의 힘을 잃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심판하지 않으신다.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다.

...신앙이란 있는 것을 그대로 보는 행위를 뜻한다.
믿는 사람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가져다주신 다른 세계, 즉 빛과 진리와 사랑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 우리가 예수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치유하고 생기를 북돋우는 물이 되신다.

...여섯 남자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사랑에 대한 여인의 갈망이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여인을 완전히 설득하셨다. 그녀는 사마리아에서 예수의  최초의 제자가 되었다.
이 여인은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선포하는 첫 사람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부활의 첫 전령이다.
마리아와 마르타도 있다.
요한은 예수께서 이들을 사랑하셨다고 적었다.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요한의 공동체에서 사랑하셨던 제자와 동일한 자리를 차지한다.



마비된 환자의 치유
...믿는 사람의 영혼은 내적으로 새로워진다. 이것이 그의 육신을 치유한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치유하신다. 그분은 말씀을 통하여 환자로 하여금 용솟음쳐 나오는 내적 샘에 다다르게 하신다

...묵상해야할 마지막 내용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치유하셨다는 것이다.
안식일에 치유하신 사건은 인간이 원래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드러낸다(94p)

성체성사에 대한 담론(6,22-59)
...요한에는 최후의 만찬중에 성체성사에 대한 보도가 없다. 대신 물위를 걸은 표징뒤에 빵에 대한 담론을 들려준다.

...예수께서는 생명의 빵으로 지칭되신다.(6,22-51)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그 빵을 먹는다.
두째부분은 성체성사의 본질이다(6, 51-59)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갈증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여기서는 배고픔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내가 생명의 빵입니다. 그분께서 바로 음식이시다.
믿음은 갈증을 해소시켜주며 예수와 맺은 인격적 관계는 배고픔을 해결해준다. 갈증은 생명에 대한 갈망이다. 배고픔은 사랑에 대한 굶주림을 뜻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짚트에서 탈출할 때 광야에서의 배고픔에서 만나를 받았을 때...하느님의 음식은 곧 인간의 내면인 영혼을 기르는 음식으로 여겨졌다.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6,47)
나는 빵입니다(6,51)
이것은 자신의 생명을 세상을 위해 내놓겟다는 의미이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시어 우리로 하여금 영우너한 생명을 누리게 하신다.

...우리는 빵으로 갱생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먹는다.
이로써 그 사랑이 우리에게 스며들고 우리를 변화 시킨다. 성체는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가운데 가장 농축된 관계다. 이 관계는 내면의 관계를 형성한다. 곧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안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호적인 하나 됨에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된다.

...가나의 혼인자치도 성체성사에 관한 문헌이다.
성체성사는 신랑이신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나누시는 혼인잔치다.
공관복음사가들이 성체성사를 언급하는 그자리에는 요한은 발씻김에 대한 이야기를 넣었다.
이것도 성체성사의 상징이다.
이 세상을 거닐면서 날마다 더러워진 발까지도 깨끗하게 됨을 체험한다.
요한은 또한 부활후 티베리아 호수가에서 제자들과 함께하는 아침식사 장면에서 성체성사를 언급한다.
그분은 빵만 아니라 물고기도 주신다.
물고기는 낙원의 음식 불사의 음식이다.
이 음식은 부활하신 분의 신적인 불사불멸의 생명에 참여하게하는 음식이다.


예수를 둘러싼 논쟁(7,14-52)

...5장에서 10장까지 요한은 예수께서 유다인들과 벌인 많은 논쟁들을 전해준다.

...예수의 가르침은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셨던 분이 왜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는가?
모세는 할례를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으로 선포했다 유다인은 안식일에도 할례를 한다. 예수는 안식일에 치유를 했다는 일로 고발된다.
예수는 환자의 치유에서 안식일의 의미를 설명한다.
인간이 치유되고 온전하게 되는 것,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안식일의 의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예수께서 생명을 가져다 주셨다는 이유로 죽으셔야했다는 것이다.
에수의 죽음은 하느님의 계획을 저버리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된다. 다른 한 편으로는 예수의 죽음은 하느님의 참된 모습, 곧 사랑과 빛의 하느님으로 계시한다. 

..누구든 목마른 사람은 내게와 마시시오.
이는 요한복음 모든 비유중 가장 아름다운 말씀다.
예수의 죽음은 찔리신 그분의 가슴에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흘러내리시어 우리 안에 생수의 샘이되시는 때가 될것이다. 우리 각자는 성령의 샘으로서 항상 신선한 물을 솟아나게하는 성전이된다.
예수의 몸은 참된 성전이다.
이 성전에서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수가 솟아난다.

예수님의 감가으로는 예배를 거행하는 일은 어ㅓㄴ 의식을 성대하게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샘과 접촉하는 일이다.
예배는 어떤 장소에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인격과 결합되어 있다.

...성전 경비병들이 예수를 잡지 못하고 돌아온다. 일찍이 아무도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없다(7,46)


예수, 생명의 문 4 /요한복음 묵상

간음한 여인 (7,53-8,11)
...죄인들에 대한 예수의 태도를 아주 잘 보여주는 권위있는 문헌이다.
바리사이들은 여인을 이용하여 예수를 함정에 빠뜨린다.
에수께서 이 여인을 변호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되고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는 구실을 제공하게된다. 반면 야인을 죄인이라고 보는 입장을 취하면 이는 지금까지 선포한 모든 용서의 복음과 어긋난다.

..나이 많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들이다.그들은 삶을 영위하는 오랜 기간동안 죄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예수는 여인에게 죄를 고백하게 하지 않으신다.
나도 단죄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죄 속에서도 그녀의 존엄을 바라보신다.
예수께서는 여인에게 뉘우침과 자책감을 가지도록 강요하지 않으신다.
곧 여인을 새로운 삶으로 해방하신다.


해방하는 진리.(8,30-36)
...요한에게 죄란 계명을 어기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께서 닫힌 마음을 가지는 태도를 뜻한다.모든 것은 신앙에 달려있다. 신앙이란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일이다.

바울은 신앙이란 말을 150번 이상 사용한다.
신앙하다는 바울이 54회 요한이 98회 사용한다.

...신앙은 그분 말씀안에 머물고 그분 말씀으로 살고 그 말씀 안에 거처함을 뜻한다. 하지만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의 말씀 안에 머무는 사람은 진리를 깨달으며 진리안에 있다.
그는 참된 실재와 만나고 있다.(122p)
여기서 신앙은 신비적이다. 실재에 눈뜨게 한다.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8,32)
여기서 진리는 참되고 믿어야만하는 명제나 이론이 아니라 참된 실재, 하느님의 실재를 뜻한다.
진리 안에서 인간은 자신을 깨달으며 현존재가 밝혀진다. 익서이 바로 자유다.

... 유다인들은 그들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씀에 이의를 제기한다.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다(8,34)"
죄는 여기서 계명을 어기는 행위가 아니라 환영이나 비본질적인 일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 진리에 마음을 열고 아들을 믿는 것을 거부하는 행위를 뜻한다.
미망에 사는 사람은 종이다.

...참된 자아는 자유롭다.
신앙은 우리를 자유케한다.
믿는 사람은 자유롭게된다.
그는 사람들의 주장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전체를 바라보고 본질적인 것을 식별한다.
그는 단순해지고 온전한 존재가 된다.
순수에 도달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말하는 것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소유, 명성, 환영 등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과거와 상처를 받은 사건에 맴도는 일에서 벗어난다.
그는 존재 안에 머문다.
그는 현재의 순간 안에 있고 진리와 자유 안에 있다.
아무도 그를 좌우하지 못한다.
그는 거져 거기에 있다.
순수한 존재는 진리며 동시에 자유다.




태생 맹인의 치유(9,1-12)
...맹인이란 보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태생 맹인이란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멀어 실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예수는 이 세상의 참된 빛이고 그분은 우리 현존재를 밝혀주신다.
그분은 참 실재를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주신다.
예수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의 눈이 열리고 자신의 진리를 볼 수 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바라보는 것, 오점을 인정하는 일, 더러운 것과 하찮은 것을 주시하는 일 등을 거부하는 태도를 뜻한다.

..흙으로 치유하는 것은 우리가 흙에서 왔음을 상기시킨다.
"그대안에 있는 더러운 것을 바라보라. 그대가 그대의 어두운 면을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대는 닷기 볼 수 있다. "
자신의 어두운 면을 한사코 보지 못하는 맹인은 교만한 사람이다.

...실로암아란 "보냄받은 이"란 뜻이다.
맹인은 눈에 진흙을 바른채 보냄받은 분이신 예수께가서 그분의 사랑 안에서 성장해야한다. 그런 다음, 그는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착한 목자(10,1-18)
...목자는 문을 통하여 출입한다. 도둑과 강도는 다른 방식으로 양우리를 넘나든다.
도둑과 강도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왔지만 맡겨진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상징한다.

나느...이다는 네가지
나는 문이다.
나는 포도나무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이다.

문은 예로부터 인간을 가르키는 원 상징이고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곧 이세상의 영역에서 천상 영역으로 넘어가는 통로를 상징한다.
우리는 예수를 묵상함으로써 예수를 통해서 마치 문처럼 자신의 내적 문에 들어가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예수는 문이다.
나는 예수를 이해함으로써 나 자신을 이해하고 내가 참으로 누구인지를 인식하고 마침내 참된 자아에 이르는 통로를 발견한다.

...예수께서는 우리 자신에게 이르는 문이실 뿐아니라, 이 세상에 나가는 출구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는 문이신 당신을 통해서 푸른 풀밭에 이르는 길을 찾고 좋은 목초를 배불리 먹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양들을 알고 또 각자를 개인적으로 사랑하시기 떄문에 그들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 놓으신다. 그들은 그분의 친구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15,13)

...예수께서는 자신을 문과 착한목자로 표현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문과 착한 목자가 되도록 우리를 부르시기도한다.


라자로의 소생(11,1-44)
...라자로의 소생은 예수께서 보여주신 일곱표징중 맨 나중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표징으로 자신이 생명의 주인이심을 보여준다.

...요한에게 부활은 죽음 이후에야 누릴 수 있는 실재가 아니다. 부활은 지금 여기서 누리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 실존 방식을 뜻한다.

마리아는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으로 등장하지만 대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말없이 믿는 여인이다.

마르타가 지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은 관계의 상실, 역겨운 냄새, ㄱ파괴적인 영향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부패의 악취를 우리의 삶에서 몰아내신다.

소생의 첫 단계는 돌을 치우는 일이다.
손과 발이 묶인채로 걸어 나온다.
그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묶임은 인간의 종속성, 혹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내적 폐쇄, 삶의 이상 등을 상징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죽음의 힘을 없애바렸기 때문이다. 죽음으로 끝나는 세상은 우리에게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 세삿의 경계선을 넘어 있다.  (146p)


예수, 생명의 문 5 / 요한복음 묵상 

베다니아의 도유(12,1-8)
...마리아와 마르타 그리고 라자로는 해방절 엿새전 그러나까 일요일 저녁 무렵에 예수를 위한 만찬을 준비한다.

집안을 향기로 가득차게 한 것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베풀어 주셨던 포도주의 충만을 상기시킨다.
이 혼인잔치에서는 삶의 새로운 맛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예수의 죽음으로 완성에 이르는 하느님의 사랑은 은은한 향기를 내며 온 세상에 퍼져나간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인식의 향기가 온 세상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요한은 이런 상징들을 통하여 우리 인간이 하느님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다고 말하려고한다. 인간의 영혼 안에 내재하는 하느님의 흔적은 바로 향기, 새로운 맛, 감미로움, 기쁨 등이다.
값진 기름의 도유는 사랑을 상징한다.
수난이 시작될 무렵 여인의 사랑이 자리잡는다.
마르코와 마태가 예수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반면 요한은 발에 기름을 발랐다고 말한다. 발에 기름을 바르는 행위는 아주 개인적이고 육감적인 행위로서 부인이나 딸에게만 허용되는 행위다.

...요한은 향유바름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의 수난과 부활에서 완성되는 사랑에는 결코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랑은 늘 과분한 것이고 이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사랑은 실용적이고 이성에 밝은 사람에 의해 파악되지 않는다. 사랑은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이해될 수있다.

예수의 마지막 말씀(12,30-36)
...인자가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습니다...
...우리 자신에 너무 집착하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진다(154p)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높이 들어 올려지심으로써 세상의 모든 것 위에 자리하신다.
...예수께서는 모든 인간을 부르시고 당신께로 이끌기 위하여 당신 팔을 벌리신다..

발 씻음(13,1-15)
...우리는 발로 세상에 들어가 우리 자신을 더럽힌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세속적 측면을 어루만지시며 세상의 세력에서 우리를 해방하신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죽음에서 우리의 죽음의 상처를 치유하신다. 우리를 더럽게 하는 모든 것에서 우리를 꺠끗하게 하신다.

고별담론(14,1-14)
...우리는 죽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느님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앙은 우리 자신을 지금 여기서 세속적 실존에서 천상적 실존으로 건너가게 한다.

예수께서는 늘 다른 곳으로 건너가는 우리의 삶에 동행하신다. 
...예수께서는 길이시다.
...예수께서는 생명이시다
...예수께서는 진리이시다.

위로의 말씀(14,15-23)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계명이나 말씀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면 우리도 우리 자신 안에 머무를 수 있고 우리는 참된 존재에 다가가 진정한 평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포도나무의 비유(15,1-17)
...나는 참된 포도나무요...
내가 포도나무, 나무, 문, 빵 등을 바라본다면 내가 세상의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극소에서 마침내 예수의 신비, 하느님과 인간의 신비를 깨달을 것이다. 모든 것은 예수ㅡ 안에서 사람이 되셨던 하느님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잇다.
그대들이 동경하는 모든 것은 실제로 나다.
세상 안에서 그대들의 배고픔과 목마름, 생명에 대한 갈망을 채워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은 실제로는 환영일 뿐이다. 오직 내 안에서만 그대들의 갈망은 제대로 채워질 것이다. 그대들이 내 안에 머물러 있다면 그대는 열매를 맺을 것이며 그대들의 삶은 의미있고 풍성해질 것이다.

...그대는 있는 그대로가 좋다. 그대는 이미 꺠끗하다.
그대는 하느님에 의해 선하게 창조되었다. 선과 깨끗함은 모든 죄보다 더 강하다.
그대가 내 사랑에 마음을 연다면 그대의 모든 것은 깨끗하게 될 것이며 더러운 모든 것은 정화되고 영광스럽게 변화될 것이다.

...참된 열매는 외형적으로 위대한 일들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베푸는 사랑으로 맺어진다. 우리가 행하는 ㅁㅗ든 것은 사랑에서 비롯되는 경우에만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내사라 안에 머무시오(15,9)
사랑은 분명히 사람들이 들어서고 거주할 수 있는 공간과 같다.

우리는 예수의 친구들이다.

대사제의 기도(17,1-26)
...십자가는 모든 대립의 일치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서로 갈라져 분열되어 있는 인간에게 예수의 사랑이 가차없이 서로 대립하고 싸우는 모든 것을 하나로 모은다는 희망의 표징이다. 예수께서는 강생하신 하느님으로써 이런 일치의 형상이시다. 그분 안에서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 빛과 어둠, 정신과 물질 등의 일치가 실현된다.

..자기 자신과 하나 된 사람은 다른 사람과도 하나되는 능력을 갗추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 하느님, 우주 전체와 내적 일치를 이룰 경우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고유성을 발견할 수 있다.(193p)


예수, 생명의 문 6 / 요한복음 수난과 부활


수난사화(18,19장)
...성금요일/요한의 수난사화 선포/십자가는 승리와 구원의 표징

요한은 연대적으로나 구체적 장소를 소개하는 면에서 실제 사실과 가장 일치한다.
모든 기술은 심오한 상징으로 가득하다. 볼 수 있는 것은 볼 수 없는 것, 곧 수난에서 완성되는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를 상징한다.

...예수를 체포하러 갔던 일행들이 예수 앞에서 넘어진다. 로마 군사들과 유다교 지도자들이 횄불을 들고 있다. 이는 다 예수에 대한 경배의 상징이다.

..."나다"(18,6)는 불타오르는 가시덤불 속에서 하느님께서 계시하시던 장면이다.
로마인과 유다인이 공동으로 체포하는 일에 실지 가담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는 온 세상, 유다인과 로마인을 위해서 일어난 것이란 상징이다. 온 세상은 예수를 경배한다. 예수께서는 군사들에 의해 결박당하심으로써 제자들을 자유롭게 하신다.

...가야파가 전체를 위해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이롭다한 것은 예수의 죽음을 백성을 위한 죽음, 우리를 위한 희생이라는 뜻이다. 예수의 죽음으로 우리가 생명을 충만하게 누리게 된다.

...나는 세상에 드러나게 말했다(18,20)
유다인들은 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는 닫힌 마음을 가진 이 세상을 대변한다.

...요한의 빌라도 심문도 예술적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잔인한 총독이었는데 여기서는 독자를 상징한다.
우리도 빌라도처럼 예수를 택할 지 세상의 주장을 택할지 망서린다.

..."떄는 이른 아침"(18,28)
이는 세상에 대한 예수 승리의 날이 오고 있는 순간을 뜻한다.

...유다인들은 해방절 음식을 먹기위해 관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18,28)
유다인들이 율법조항을 잘 지켰고 그 결과 메시아를 죽인다.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는 일, 율법에 얽매이는 일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해방을 위해 보내셨던 메시아를 죽인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18,36)
이 세상은 그 분에게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다.
우리 각자는 왕이다. 우리 안에는 이 세상에서 비롯되지 않은 품위가 있다. 역설적인 것은 그 품위가 바로 수난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나약하고 억압을 받는 곳에서 단죄받고 채찍질 당하고 상처를 입고, 온갖 모욕을 당하고, 넘어지고, 못에 박히고, 창에 찔리고 십자가를 지는 곳에서 그 품위가 나타난다.

...빌라도는 눈을 뜨고 진리를 선택할 기회를 놓친다. 그는 진리에 흥미가 없다.
오직 권력에만 매달린다. 그리하여 인간의 노릿개감으로 전락된다.

...말씀이 육신이 되다(1,14)는 여기서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고, 멸시를 당하는 육신이 되신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하느님의 진리가 빛난다.

...빌라도와 유다인은 그들 각자의 삶의 계획에 대한 허구성을 서로에게 알려주는 셈이다.  유다인들은 권력자인 빌라도에게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알려준다. 빌라도는 유다인을 두려워하고 황제를 두려워한다.
유다인은 하느님을 거역하고 세상을 선택한다.유다인은 우리 자신이다.

1장면/친히 십자가를 지시다.

2장면/두사람 사이에 달리시다...예수가 참된 중심이다.

3장면/세가지 언어로 유다인의 왕이라 씀(19,19)..예수의 본질을 온 세상에 드러냄. 세 언어는 온세상의 지혜.

4장면/예수의 겉옷을 나누는 4군인/ 우주의 숫자. 겉옷은 온 세상에 내주신 예수의 육신을 상징.
이를 통해 이 세상은 거룩하고 온전하게 된다.

5장면/통으로 짠 속옷(19,23) 아담과 모세가 입었던 옷,...참된 아담 상징.
예수의 육신이 하늘에서 왔음을 상징.

6장면/십자가 죽음...하느님의 강생 완성.
예수의 죽음으로 온 우주 위에서 하느님에 의해 새로 짜여지고 완전히 사로잡히고 영광스럽게 변화하여 구원받는다.

7장면/네여인...남자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여자들은 참아낸다.
네여인은 예수를 받아들이는 세상을 상징한다.
예수의 신비에 개방되어 있는 우리 존재의 여성적인 측면, 곧 우리의 영혼을 상징한다.
마리아는 제자공동체와 같은 길을 걷는 예수의 가족을 상징.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서로 먼저 배려해야된다.
십자가에서 대립되는 것들이 하느님과 인간, 남자와 여자, 유다인과 유다인 등이 하나가 된다.
남자들은 예수와 논쟁을 벌이고 여자들은 사마리아 여인이나 마리아와 마르타같이 사랑을 드린다.
사랑하는제자도 우리 자신의 상징이다.

...다 이루었다..

...목마르다(19,28) 인간만이 하느님을 목말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도 예수 안에서 당신의 사랑에 응답할 인간에 대해 목말라하신다.

...예수께서는 죽음의 순간에 인간을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인간에게 머리를 숙이신다(19,30).그리고 우리에게 영광을 넘겨 주신다.

...창으로 옆구릴르 찌르고 피와 물이 쏟아져 내린다. 모세가 바위를 친것 상기..피는 그분의 사랑을 상징..물은 성령을 상징.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영은 온 세상에 부어졌다. 그분의 마음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다. 상처입은 인간은 참된 인간의 상징이다.

...그들은 자기가 찌른 이를 바라본다(19,37)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은 변화한다.
바라봄능 통하여 통찰에 이르고 통찰을 통하여 삶은 변화하고 쇄신된다. 바라봄을 통하여 바라보는 대상에 참여하고 바라보는 것과 하나가 된다.


부활의 의미(20장)
...요한의 부활에 대한 해석도 독특하다.
3장면...
이른 아침 막달라마리아는 예수의 무덤을 찾고 시신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다.
마리아는 몸을 돌려 예수를 본다. 예수님은 "마리아"하고 부른다.
마리아는 예수를 만지려 한다. 붙잡아 놓고 만지는 것은 인간이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분을 그렇게 파악할 수 없다.
그분은 우리 손으로 만질 수 없다.
우리는 부활하신 분을 붙잡을 수 없다.
부활이란 사랑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요한은 부활을 하느님과 인간이 나누던 사랑 역사의 완성으로 생각한다.(219p)

...요한은 부활을 십자가 사건의 완성으로 묘사한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영을 우리에게 넘겨 주셨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날 당신의 영을 우리에게 불어넣으시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사절로서 세상에 죄의 용서를 선포하게 하신다.
죄의 용서와 삶의 정화, 새로운 삶의 기회를 선포하는 행위는 하느님의 생명을 전달하는 일이다. 용서는 부활하신 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했다(20,20)요한은 부활을 불안의 극복으로 닫힌 마음의 열림으로 이해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닫힌 문을 통해 오신다.

...토마는 예수에 관해 듣기만 하고 그분을 직접 뵙지도 만지지도 못해본 지금의 우리 자신을 대변하고 있다.
토마처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의 메세지를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토마를 인정해 주시고 또한 우리도 인정해 주신다.

...요한이 기록한 것을 신앙의 눈으로 읽는다면 우리는 실제적 삶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 것이고 모든 존재의 진리를 깨달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참된 삶을 살 것이며 우리의 의식이 쇄신되어 우리 자신의 중심으로부터 살 것이다. 곧 하느님과의 관계로부터 새롭게 영광스러이 변화한 부활한 사람으로 살 것이다.



일상 가운데서의 부활 체험(21,1-14)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세번이나 더 계시하신다.
새벽 고기잡이...제자들은 그들의 일상적인 일...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새벽까지 헛되다. 그들의 상황은 우리 모두가 체험하는 무익한 밤과 같다. 모든 것이 소용없다.
우리의 노력에도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절망하고 좌절한다.
부활하신 분께서 우리에게 들어오신다.
그분께서 오시면 암울한 밤은 희망이 가득한 아침이 될 것이며 헛된 밤은 변할 것이다.
"얘들아 먹을 것이 좀 없니?"(21,5)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제자들은 그들의 손이 비어 잇음을 고백해야한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예수께서는 특별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는다.그들은 자신들이 늘 하던 대로 하면 된다.
그러나 그분의 지시에 따를 때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엄청난 수확이 따른다.
고기잡이는 우리 자신의 깁숙한 곳, 곧 내면 세계의 탐구를 상징한다.
153마리...이도 틀림없는 상징이다.
"주님이다" 사랑하는 제자는 이제 예수님을 깨닫는다.
일터에서 책상에서, 나사를 조이는 중에 그분을 깨닫는다.
물고기는 불멸의 양식을 의미한다.
우리는 없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한다.
요한에게 부활은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통해 이루어 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체험된다.


예수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응답(21,15-25)
...나를 사랑합니까?
이 세번의 베드로에 대한 질문으로 복음은 끝난다.
우리는 사랑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얼마나 쉽게 사랑을 배반하게ㅐ 되는지 잘 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21,17)
에수께서는 모든 것을 보신다. 그분은 비겁, 불안, 이기적인 게산 등을 모두 보신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배반에서도 우리의 비겁함에서도 우리의 도전적 태도에서도 피상적인 감동에서도 사랑을 찾아 내신다.

...만일 낱낱이 적는다면...이 세상의 모든 책으로도...
우리는 예수에 관해 기록한 모든 것을 읽을 필요가 없다.
사랑받던 제자가 전해준 것만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마음을 열어 본질적인 것을 바라보기만 하면 도니다.
예수 사건의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휘장을 걷어내고 본질적인 것을 바라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실재와 하나가 되면 된다.

하느님의 영을 책으로 ek  담아낼 수는 없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삶을 밝히시어 참되고 영우너한 생명ㅇ르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시려고(10,10)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2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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