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나라의 도래

2013. 7. 5. 오전 4:56:38

글자


마르코 복음서 9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죽기전에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
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느님의 나라가 와 있는 것인데 맞은지요?
왜 하느님의 나라를 느가지 못하는 걸까요?
    김민수(skykms 2013-07-04

찬미 예수님! 맞습니다. 영성체 중에 우리들 사이에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하느님의 나라를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 초자연적이기 때문입니다. 소순태 (sunsoh) (2013/07/04)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사도 바로오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알려 주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고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니 평화와 서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에 힘을 쏟읍시다."(로마 14,17-19)

성령과 함께 성령 안에서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의 삶을 살아가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삶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삶이고 느끼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이렇습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사도 바오로는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시비하지 말고 서로 시기하지 맙시다."(갈라 5,25-26)
서로 도와주며 성장하여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사셨던 그 삶을 우리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삶 안에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의 그 삶을 보고 아, 하느님의 나라는 저런 나라구나!를 느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를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또한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라고 하셨습니다.

곧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살자고 알려 주시는 방법으로 살아가며 누리는 나라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내가 사는 사람이라면 그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것이고 누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십자가상 죽음으로 보여 주신 그 사랑을 우리도 살아내는 삶이 바로 하느님 나라를 사는 삶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곧 서로 나누고 섬기는 가운데에서 느낄 수 있는 나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섬기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은 내가 느낄 수 있고 또한 나의 그 섬김을 받은 이웃이 나를 그와 같이 섬겨 줄 때에 내가 느끼는 느낌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느끼는 느낌이 아닐까요?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느끼는 행복일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예수님께서 마태오 5ㅡ7장에서 말씀하신 산상 설교의 말씀들을 듣고 그 말씀을 살아내는 삶 가운데 느끼는 나라일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답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들은 말씀을 행동으로 보이는 삶으로 홰개했다면, 행실로 보이는 가운데 느끼는 행복이 하느님 나라를 느끼는 것은 아닐런지요? 

"지금 하느님의 나라가 와 있는 것은 맞는지요?" 예, 이미 와 있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그날부터 이미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와 계신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가톨릭 대사전에서 하느님 나라로 검색해 보시면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나라의 현존이며(마태 12,28; 루카 11,20)라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200주년 기념 주해서에서는 이부분에 대해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 청중 가운데 일부는 살아서 종말을 체험하리라는 종말시한어는 틀림없이 종말이 임박하다는 분위기 아래서 발설되었다. 내용상 비슷한 시한어가 13,30과 마태 10,23; 23,36절에도 있다. 예수 친히 이런 시한어를 발설하셨을까? 아니면 예수 부활 후 초대교회에서 만들었을까? 어쨌든 예수님의 청중이 살아 있는 동안 종말이 도래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마르코는 70년경 복음서를 집필하면서 이 사실 때문에 곤혹을 느꼈다. 그래서 시한어(1절)와 변모사화(2-10절를 연결하여, 예수님의 청중 가운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은 스승의 모습이 변하는 것을 보았으니 "하느님의 나라가 힘차게 오는 것"을 본 거나 진배없다고 풀이했다.  
이정임 (kr3217)


세상의 지혜로 마음이 무뎌지고 세상의 칭찬으로 귀가 닫혔으며 세상의 즐거움에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마태오 13:15) 성령을 받은 사람은 바로 자신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이 세상으로 오는 것을 목격합니다. 성령은 지혜, 자유, 생명의 깨달음을 줍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성령을 내려주십니다. "그들이 나에게 돌아오면 나는 그들을 고쳐 주리라.(마태오 13:15)" 회개는 하느님께 돌아가는 일입니다. 남충희 ( namchunghee)


과연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 오지 않았기에 더 기다려야 할까? 
저는 가톨릭의 확정적 가르침을 잘 모른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주워듣고, 또 혼자 고민한 내용을 공유할까 한다. 누구든 좀 더 자세한 가르침이 있으면 충분히 검토하고 고민하고 받아들일 정도의 열린 마음임을 전제로 한다.
 
제가 지금껏 들어 본 내용은 [이미, 그리고 아직]이다. 예수님의 강생과 함께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했고, 그 자체로 완성됐단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의 완성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단다. 그래서 ''아직''이란다. 도무지 이해 난망이다. 그래서 ''신비''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이 모호하면서도 그럴듯한 표현을 두고 ''유레카''를 외치기엔 나는 아직 불편하다. 그 이유를 적어 보겠다.
 
1. 이미
1-1. 이미!!
교회의 가르침은 하느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직접 내려오심으로써, 그리고 그 하느님께서 몸소 십자가에 달렸다가 다시 하늘로 오르심으로써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완성되었다고 가르친다.
 
예수님께서도 수차례에 걸쳐 제자들과 따르는 군중들에게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들 속에 이미 있다"고 가르치셨다.
 
또한 예수님을 거부하는 율법학자나 서기관들이 "하늘나라가 어디 있는지 보여 달라"고 다그칠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겨자씨나 곡식 등을 비유로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와 있음을 설명하셨다.
 
그런 성경의 내용이나 이런 성경 내용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강론을 들어보면 역시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에서 완성된 게 틀림이 없을 게다.
 
1-2. 이미???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과연 이 세상이 ''하느님의 나라''가 오셨다고 믿을 만한가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도무지 하느님의 나라라고 할 만한 구석이 과연 있는지,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의 통치 -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왕국이란 뜻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느님의 통치가 맞단다 -가 실현되고 있는 곳이 과연 있기나 한지도 의심드러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교회? 교회 안에서는 과연 하느님의 통치가 이뤄지고 있나? 내 답은 글쎄올시다이다.
 
하긴, 밀알이 땅에 뿌려지긴 했지만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아니면 가시덤불에 막혀서, 아니면 뿌리를 내리긴 했어도 뙤약볕에 말라버려서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어쨌든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은 건 2천 년 동안 신자 수 밖에는 달리 확인할 방도가 없다.
 
2. 아직
2-1. 아직?
그럼 ''아직''이란 말인가? 분명 교회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했다고 가르친다. 물론 그 다음에 곧바로 ''아직''을 가르친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분명히 말씀하셨다. "I will be back!!!" 그럼 ''아직''이 맞겠다. 그 말씀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주일이면 성당엘 찾아가 어제 지은 죄, 그제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알고도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고 있는 것이겠다.
 
분명 우리는 매주 성당에 가서 ''이미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통치''를 축하하고 있지는 않다. 아직은 오지 않은 게 확실한가 보다.
 
2-2. 아직!!!
그렇다. 아직 오지 않았다!
 
내 생각이 교회의 가르침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고, 그래서 내가 교회로부터, 사제로부터 어떤 욕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느님의 나라는 아직 오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직 멀었다.
 
가톨릭 교회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무방할 이곳 굿뉴스를 보자.
 
온갖 신앙심 종류를 다 갖다 붙이면서 성인 중의 성인이랄 회원들이 모인 이곳 게시판을 보자. 이들의 기도만 읽으면 분명 이곳은 ''하느님의 나라''다. 이들의 신앙 고백을 한 줄이라도 읽을라 치면 하느님의 통치가 아주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의심은 곧 죽음이요, 반론은 곧 지옥행이다. 연옥도 아깝단다.
 
그런데 나는 왜 이 ''하느님의 나라''에서 지옥의 모습만 보는 걸까?
내가 삐딱해서일까? 내게 마귀가 씌여서 그럴까? 내가 개신교에서 위장 침입해서 그럴까? 아니면 내가 진실을 보고 있는 것일까?
 
이곳은 성인의 이름을 빌린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곳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를 고대하면 온갖 박해와 유혹을 뿌리쳐, 교회로부터 성인이라는 아름다운 작위를 선사받은 신앙의 선배들의 이름을 ''감히'' 얻어다 쓰는 신자들의 모임이다. 나 또한 그런 성인들 중 하나를 빌어 본명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보호 아래 신앙심을 지니고 있다는 이들이 허구한 날 지옥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건 왜일까?
 
 
아직!!!
 
그래, 아직이다. 하느님의 나라든 하느님의 통치든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이 그리도 강조하며, 그리도 애타게 어린양을 찾아다닌 유일한 이유,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그래서 베드로도 바오로도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목이 달아났고, 성경의 마지막을 장식한 묵시록에서도 그 종결을 이렇게 꾸미고 있다. "아멘, 오십시오, 주님!"
 
이천 년을 그렇게도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울고 또 울고, 회개하고 또 회개해도, 박해 받고 또 순교를 해도... 하느님 나라는 아직 멀었다. 설사 그 나라가 왔다 해도 통치는 정말 멀었다. 사제가 수 만, 수십 만이라 해도 통치는 아직 멀었다. 신자 수가 수 억이네 수십 억이네 해도 나라 조차 아직 오지 않았다.
 
 
이곳 게시판이 딱 지옥의 모습이라면 그건 맞다. 지옥에서도 간간히 눈물도 흘리고 웃음도 짓는다.
 
 
나는 그래서 아직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 꼴을 보면 내 생각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슬프다.  문경준(jeunerh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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