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 수립 60돌 - 정부 수립과 가톨릭 교회

2008. 8. 27. 오후 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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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수립 60돌 - 정부 수립과 가톨릭 교회

 

한국 정부가 국제적 승인받는데 일조

 

 
▲ 한국 천주교회와 교황청은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적으로 승인받는데 큰 역할을 했다.
사진은 1949년 6월 14일 명동성당 문화관에서 거행된 초대 교황사절 번 주교의 주교 서품식 축하 만찬으로 앞줄 왼쪽부터 이기준 신부, 김구 선생, 라리보 주교, 노기남 주교, 번 주교가 보인다.
 
 


  "이승만 대통령과 각료들에게 축복을 보내며 앞길에 천상의 특별 보호를 기원합니다"

 교황 비오 12세(1939~1958년 재위)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거행된 대한 독립 선포식에 보낸 축전 내용이다.
 한국 천주교회와 교황청은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적으로 승인받는데 큰 역할을 했다.

▲ 민족사에 동참하려는 의지
해방은 한국 천주교회에도 큰 기쁨이었다. 해방 당시 한국 천주교 교세는 6개 교구 3개 지목구, 1개 수도원구에 사제 300여 명, 신자 수 18만여 명이었다. 복음화율은 남북한 총인구 대비 0.72%에 불과했다.
 은둔을 깨고 민족사에 동참하려는 한국 천주교회의 의지는 민족 국가 건설에 대한 참여로 나타났다.
 일제 강점기 치하에서 정치적으로 튼튼하지 못한 곳에선 기본적인 자유를 지킬 수 없음을 뼈저리게 경험한 당시 서울교구장 노기남 주교는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신앙인으로서' 또한 '국민으로서' 민족사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고했다.
 이같은 노 주교의 태도와 활동은 일제 강점기 한국 천주교회가 유지했던 정교분리원칙이나 정치 불간섭주의 노선을 철폐했음을 뜻한다. 노 주교의 권고에 따라 조종국ㆍ박병래ㆍ장면 등 40여 명의 평신도 지도자들은 한국민주당에 입당했다.

▲ 반공 이데올로기와 교황청
 해방 이후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된 동서 냉전의 결과는 남북한에 각기 다른 분단 정권을 성립시켰다. 이 분단 정권이 성립된 배경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있었다.
 이 대립 과정에서 한국 천주교회는 반공주의 입장을 견지했다. 그 배경에는 세계교회에서 이미 19세기 말부터 유신론 대 무신론, 정신주의 대 물질주의, 창조론 대 진화론이라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를 통해 공산주의를 반종교 세력으로 규정해 왔기 때문이다.
 세계교회의 반공주의 태도는 교황 비오 12세가 즉위하면서 더욱 강화됐다. 비오 12세는 각종 회칙을 통해 공산주의의 위험을 경계했고, 1949년 7월에는 공산주의자를 파문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사제품을 받을 때 반공산주의 선서를 하게 한 당시 교황청의 분위기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반공 입장을 견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노길명(고려대 사회학) 교수는 "당시 한국 천주교회에서 반공이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숙명'이자 '의무'였다"고 설명했다.

▲ 교황 비오 12세
 교황 비오 12세는 냉전 구도가 첨예화 되고 있던 한반도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교황 비오 12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공산 국가로 바뀌어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하자 미국과 동맹 관계를 구축했다.
 그는 남한만의 단독 정부가 수립되기 1년 전인 1947년에 이미 교황 사절을 파견해 38도선 이남을 하나의 독립 국가로 인정했다. 이것은 국제 사회에서 남한을 독립국가로 인정한 최초의 사례로, 후일 남한 정부가 국제 사회에서 승인받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 정부 수립을 위한 천주교의 직간접 활동
 한국 천주교회는 1948년 총선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적극 지지하며, 신자들에게 총선거 참여를 독려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정부 수립에 대한 국제 승인을 얻기 위해 파리에서 개최되는 제3차 유엔 총회에 대표단을 파견할 때 노기남 주교가 추천한 운석 장면(요한)을 수석 대표로 임명했다.
 장면 박사는 파리로 가기 전 미국에 들러 미국 정계에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스펠만 대주교에게 이승만 대통령 친서를 전달하면서 협조를 구했고, 스펠만 대주교는 이에 적극 부응했다.
 또 교황 사절 번 주교는 자신의 외교력을 총동원해 캐나다 주재 교황청 대표 안토니우티 대주교와 캐나다 외무장관 로렌에게 편지를 보내 장면 박사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교황 비오 12세도 교황청 국무장관인 몬티니 대주교와 재 프랑스 교황청 대표인 론칼리 대주교(훗날 요한 23세 교황으로 즉위)에게 한국 대표에게 모든 지원을 제공할 것을 명했다.
 이에 론칼리 대주교는 한국 대표를 여러 나라 대표들에게 소개했고, 그후 50여 개 나라로부터 개별적인 대한민국 승인을 얻을 수 있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기사원문 보기]
[평화신문  200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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