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 까지도 용서해야 한다(마태18,22)
지난 세기 미국과 베트남 전쟁 당시 유명했던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1972년 세계 최고의 언론상인 퓰리처상을 받았던 사진으로, 미군이 베트남인 거주지역인 트랑방이라는 곳을 네이팜탄으로 공격하는 모습입니다.거대한 불길을 일으키는 이 폭탄으로 인해 한 어린 소녀가 화상을 입고 발가벗은 채 소리치며 거리를 질주하는 사진이었습니다. 1996년 미국은 이 소녀를 찾아내 재향 군인의 날 연사로 초청하였습니다.이 소녀의 이름은 ‘킴푹’, 과거의 아픔을 씻고 화해하자는 뜻에서였지요.
그런데 이 사진 때문에 평생을 괴롭게 살아야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그 사람은 당시 네이팜탄을 떨어뜨렸던 존 플리머라는 조종사였습니다.
“내 영혼은 부숴 버릴 것 같은 그 끔찍스런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본국으로 돌아와 보니 잡지, 신문, 텔레비전 등 온 천지에 그 사진이 널려 있었다. 도무지 그 사진을 피할 길이 없었다. 1974년 초에 제대한 후, 나는 절망감에 빠져 불행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고통스런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술을 마셔댔다. 두 번의 결혼은 모두 이혼으로 끝이 났고, 정서적인 장애가 생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열어 놓을 수가 없었다.”이런 고통 가운데 살던 플리머에게 그 소녀가 지금껏 살아있고 미국에 온다는 깜짝 놀랄 소식이 들렸습니다. 플리머는 떨리는 마음으로 킴푹이 온다는 곳으로 갔습니다. 킴푹은 연설에서 그때 그 폭격으로 자기 두 부모는 죽었고, 화상으로 14개월 동안 고생해야 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폭탄을 떨어뜨린 그 조정사를 만날 수 있다면, 저는 그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나간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 지금부터, 또한 앞으로 선한 일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 말에 더욱 고통스러워 흐느껴 울던 플리머는 용기를 내어 단상쪽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킴푹에게 다가가 “내가 그 조정사입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킴푹운 팔을 벌려 그를 안으며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이미 용서했어요.”
플리머는 그때의 만남에 대해 후에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어떻게 2분 동안의 짧은 대화가 자난 24년 동안의 악몽을 깨끗이 지워버릴 수 있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용서는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것은 선물이었습니다. 그저 신비로울 따름입니다.”
존 플리머는 현재 감리교회 목사로 십자가의 용서를 선포하며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용서 없는 곳에 진정한 평화를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플리머의 고백에서도 드러났듯이 우리가 상대에게 행하는 용서는 그저 단순한 용서가 아닙니다.
그를 단번에 죄의 감옥에서 해방시켜주는 놀라운 은총의 선물이요 신비입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18,22).
용서의 절명앞에 우리는 묻습니다.
“왜?”
체험자는 답합니다.
“그것이 바로 평화의 길이니까!. 아니, 그것이 바로 자신을 옭아매는 증오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니까!”
주님, 제가 용서를 하고자 하오니, 저를 도우시어 용서의 결단을 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용서를 결단하였사오니, 저를 도우시어 용서의 선언을 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용서의 선언을 하였사오니, 제가 더 이상 ‘용서’라는 말도 필요없게 하소서.
-차동엽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