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

2011. 5. 11. 오전 10:29:11

글자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 질 것이다.”(루카 14,11)
일본 대지진으로 일어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파괴는 한반도 상공에 꺼지지 않는 방사능 오염의 공포를 가져왔다. 현재도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내 잊어버리고 일상에서 별 다르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즈음 대한민국에서 뛰어난 영재들만 갈 수 있다는 KAIST(한국과학기술원) 학생들 중 몇 명이 학업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살을 하였다. KAIST 교육 시스템은 학생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다하더라도 재적수의 1/4 은 무조건 탈락되는 무한경쟁의 살벌한 시스템이다. 사람들은 KAIST 서남표 총장의 무한경쟁 교육시스템을 두고 대한민국 대학들이 세계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구적 제도라 칭송하였다. 그러다 교수와 학생들이 자살하니 이제는 문제를 지적하고 바꾸어야 함을 주장한다. 갑론을박 말들이 많지만 당사자인 KAIST학생들은 총 학생 투표를 통해 총장의 무한경쟁 교육시스템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경쟁은 모두 다 좋고, 또 모두 다 나쁠 수 없으며, 좋고 나쁨의 양면성을 모두 다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든 살아가며 경쟁을 하지않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경쟁은 인간 삶의 필수불가분 요소이다. 하지만 인간의 고귀한 본성과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무한경쟁은 곤란하다. 또한 이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람처럼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이며, 방사능 오염보다 더 심각한 인간성 파괴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한경쟁을 사회 곳곳에서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자신만은 살아남아 성공하기를 바라며, 밤 낮으로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인간다움이 살아있는 협조와 협동,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나의 유년 시절을 회상해보면 공부를 열심히 한 기억 보다는, 동네 친구들끼리 밥도 굶어가며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훨씬 더 많다. 그렇게 자랐다고 해서 지금 살아가는데 문제가 되는 것 별로 없다. 일등은 단 한 사람뿐이다. 모든 사람이 모두 다 일등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이 길 위에서 자기들 중 누가 제일 높으냐는 문제로 싸웠다. 주님께서 왜 싸웠는지 물으셨을 때, 제자들은 무슨 이유인지 대답하지 못한다. 제자들은 스스로 생각했을 때에도 한심하고 부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은 누가 더 높으냐고 싸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한다.” (마르 9,35)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행복은 능력이 있다고 가질 수 있는 것 아니다. 주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말씀하셨다. 사람의 꿈을 짓밟아야 하는 무한경쟁 속에서는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 해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행복해 질 수 없다.
행복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행복을 전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사랑을 전할 수 있단 말인가?
겸손 하려고 노력 하지 않는 자, 꼴지가 되려는 마음이 없는 자가 어떻게 감히 첫째가 되고 으뜸이 되어 행복한 자가 되려고 하는가?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꼴찌가 되려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올라오지 못하는 일등의 자리인가?
아니면 그 누구도 관심과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꼴찌의 자리인가?
 
 
 
작가 박완서 씨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책에 보면,
사람들은 일등으로 들어오는 선수에게만 박수를 보내지만 말고,
완주를 목표로 들어오는 꼴지 선수에게도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글을 적고 있을 때 우연히 라지쿠마르 히라니(Rajkumar Hirani) 감독의 인도 영화 ‘3 idiots’(세 얼간이)를 보았다. 이 영화에서는 무한경쟁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인간적인 사랑의 체험과 협동심의 교육이 더 우수함을 강조한다.
주님께서는 인간에게 주신 축복의 세상이, 개그맨 유행어처럼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세상이 아무리 험난하고 살벌해도 살아남는 기술만 가르치지 말자.
사랑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배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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