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불평불만이 터져 나올 때 십자가상에 계신 예수님을 기억하자

2011. 4. 21. 오전 9:48:06

글자
[◆조명연신부 ] 불평불만이 터져 나올 때 십자가상에 계신 예수님을 기억하자
 
수십 년 전, 알래스카의 자연보호 지역에 사슴과 늑대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정부 당국은 이렇게 함께 살다가는 약한 사슴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지요.
그래서 사슴의 천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늑대를 모조리 없앰으로 인해 사슴의 안전을 지켜주기로 계획했고, 실제로 실행했습니다.
그 후 늑대는 완전히 사라졌고, 10년간 4,000여 마리의 사슴이 10배가 넘는 42,000마리로 증가되었습니다. 이렇게 사슴의 안전을 지켜주면서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자, 예기치 못한 결과가 찾아왔습니다. 늑대의 위협이 없자 사슴은 점점 게을러졌고, 운동량의 감소로 인해 체질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차츰 그 수가 줄어들어 오히려 처음의 숫자인 4,000마리 이하가 된 것이지요. 정부 당국은 다시 사슴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도 허사였습니다. 바로 그때 어떤 동물학자가 없앴던 늑대를 투입하라고 권고했고, 다시 투입하자 그때부터 사슴들은 다시 숫자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사슴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늑대에 희생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고 또 뛰어다닌 것이지요. 사슴은 건강해졌고 그래서 그 숫자도 늘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슴과 늑대가 함께 있으면, 힘이 약한 사슴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이 사슴을 오히려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오히려 천적인 늑대였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 역시도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통과 시련. 정말로 감당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그래서 제발 내 곁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고통과 시련이 오히려 내 자신을 더욱 더 성장시켰고 지금의 내 자신이 있도록 만듦으로 인해, 어쩌면 오히려 고마움의 대상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고통과 시련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거부하기 보다는, 이를 통해 주님의 뜻을 찾고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예수님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감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 지를 이미 다 알고 계셨지요. 즉,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겪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육체를 지니신 당신의 몸으로 견디어내기에는 너무나도 큰 고통과 시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피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있었고, 이 아버지의 뜻을 철저히 따라야 하는 것이 당신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불만을 먼저 던지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불평불만이 터져 나올 때 십자가상에 계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불평불만을 던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뜻이 먼저였던 예수님의 모습을 말입니다. 예수님처럼 철저히 하느님 뜻에 따를 때, 우리 역시 부활의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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