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남자유도 60㎏급에서 우승한 최민호 선수

2008. 8. 12. 오후 5:43:24

글자

 
 
눈물이 멈출 줄 몰랐다. 결승에서 이긴 순간부터 터진 눈물은 매트를 떠날 때도, 인터뷰에서도, 시상식에서도 하염없이 흐르고 또 흘렀다. 몸은 비지땀에 젖었지만 얼굴을 적신 건 분명 뜨거운 눈물이었다.

‘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가 9일 베이징 과학기술대 체육관에서 열린 남자 60㎏급 결승에서 한판승을 거둔 뒤 두 주먹을 불꾼 쥔 채 환호하고 있다. 베이징 |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9일 베이징올림픽 남자유도 60㎏급에서 우승한 최민호(28·KRA)는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왜 그토록 울었을까.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과거가 뇌리에 파노라마처럼 스치자 순하디 순한 그의 울음보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있는 힘을 다해서, 진짜 정신력으로, 제 모든 걸 참고 견뎌 가면서, 하루 하루 눈물로 지새면서 정말 참고 또 참았어요.”

머릿 속에 끝까지 남은 잔상은 통한의 동메달에 그친 2004아테네올림픽이었다. 체중을 10㎏이나 빼고나서 다리에 쥐가 난 탓이었다.

“그 때는 동메달도 좋았는데 주위 반응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이)원희와 정말 친해서 계속 같이 다녔는데 항상 나는 뒤에서 혼자 있었어요. 정말 처량했죠. 금과 동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그 땐 미처 몰랐어요.”

그 후 그는 끝모를 방황에 허우적댔다.

2005년 여름, 쾨쾨한 여관방. 그는 앉은 자리에서 소주 7병, 그리고 아이스크림 30개를 먹어치웠다. 눈 뜨면 들이켰고, 취하면 잤다. 그리고 깨면 또 마셨고, 취하면 또 잤다. 몸무게가 순식간에 10㎏가 늘었다. 한마디로 폐인이었다.

운동은 안중에 없었다. 그냥 미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뿐. 그래서 모든 걸 잠시라도 잊게 만드는 술에 의지하고 말았다.

2005년 여름, 쾨쾨한 여관방. 그는 앉은 자리에서 소주 7병, 그리고 아이스크림 30개를 먹어치웠다. 눈 뜨면 들이켰고, 취하면 잤다. 그리고 깨면 또 마셨고, 취하면 또 잤다. 몸무게가 순식간에 10㎏가 늘었다. 한마디로 폐인이었다.

운동은 안중에 없었다. 그냥 미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뿐. 그래서 모든 걸 잠시라도 잊게 만드는 술에 의지하고 말았다.

2005년 겨울, 병역특례자가 받는 4주간 군사훈련이 전환점이 됐다. 규칙적인 훈련, 절제된 식사와 생활…. 퇴소 때 체중은 62㎏으로 돌아왔다. 본의 아니게 원상복구가 된 꼴. 그때 그는 다짐했다.
‘다시 시작하자. 매트에 다시 오르지 못하면 100년을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때마침 구원의 손길이 왔다. 한국마사회(KRA)가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것이다.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강한 훈련과 확실한 자기관리로 보답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이전엔 한번에 아이스크림 50개를 먹었죠. 배가 터지지 않으면 잠도 못 잤어요. 미친 놈 소리까지 들었죠. 근데 꿈이 생기니까 참을 수 있더라고요.”

사선을 넘나드는 훈련, 끊없이 스스로를 다그치는 인내. 서서히 몸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무려 10㎏을 빼야 했던 아테네올림픽은 과거 실수였을 뿐, 최근 2년 동안 그는 매 순간 최고 몸상태를 유지했다. 몸과 마음은 준비 끝. 마지막 남은 운까지도 구했다.

“자기 전에 기도했어요. ‘하느님, 제가 운동을 이렇게 열심히 할지 몰랐죠, 깜짝 놀랐죠’라고. 매일 밤 울 정도로 훈련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그의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러더니 그는 똑같은 단어만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행복”이었다.

“힘들어 쓰러져도, 심지어 울 때도 행복했어요. 운동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한데 왜 옛날에는 입상에만 목을 맸을까 하는 후회도 했죠.”

올림픽을 앞두고 이상하리만큼 계속 이어진 길조도 마음을 가볍게 했다.

“엄마가 꿈을 꾸셨대요. 청와대보다 큰 집 양쪽에 큰불이 났는데 사람들이 촛불시위 때보다 많이 모였대요. 엄마가 왜 이렇게 사람이 많으냐고 물었더니 민호 축하하러 왔다는 겁니다. 아빠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면서 가슴에 태양을 품었대요. 모두 좋은 꿈이죠?”

그도 길몽을 꾸었다. 올림픽 우승하는 꿈, 그것도 같은 꿈을 다섯번이나 꿨다.

“깜짝 놀라 깨면 꿈, 너무 떨렸죠. 처음 꿨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요. 그런데 계속 같은 꿈을 꾸니까 얼마 전부터는 금메달이 그냥 내 것이려니 여겼어요. 그때부터는 올림픽이 너무 기다려졌죠. 진짜로 올림픽에서 우승하면 얼마나 기쁠까라고 생각하면서요.”

드디어 결전의 날. 그는 첫판부터 결승까지 내리 5판을 화끈한 한판승으로 이겼다. 소심한 성격 탓에 제 기량의 100%를 발휘하지 못해 매번 우승문턱에서 주저앉아온 한을 단번에 푼 드라마였다. ‘원조’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조차 “한판승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민호형에게 줘야겠어요. 갖고 있기에는 너무 부끄럽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주민등록상 그의 생일은 8월18일. 그런데 진짜 생일은 올림픽 개막일인 8월8일이었다. 게다가 이번 올림픽은 29회째, 그의 나이도 우리 나이로 29세. 이번 금메달은 29회 생일을 맞은 올림픽이 스물 아홉 살이 된 순박한 청년에게 준 숙명의 선물 같았다.

최민호는 이번 금메달로 ‘3등 전문’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도 뗐다.

“아세요? 제가 동메달 그랜드슬래머라는 거. 어쩔 때는 국내 선발전, 심지어 단체전까지 3등을 했다니까요. 국내외 모든 대회에서 3등은 안 해본 게 없어요. 우리 엄마가 가장 기뻐하실 겁니다.”

최민호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같이 엄마 자랑을 늘어놨다.

우리 엄마가 얼마나 착한지 아세요. 고등학교 때부터 엄마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를 위해 새벽기도를 드리세요. 성당 수녀님이 성당 열쇠를 맡길 정도였죠. 엄마가 너무 봉사를 많이 해서 성당으로 찾아오는 김천 할머니들이 무척 많았어요. 저는 매일 이렇게 기도합니다. 천사같이 착한 엄마를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요.”

그의 눈은 또 글썽글썽해졌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다시 비장해졌다.

“한 체급 올린 66㎏급으로 런던올림픽 금메달에 다시 도전할 거예요.”

서른이 다 돼서야 맛본 유도의 참맛. 서른 두 살이 될 4년 후에도 또다시 이 맛을 느낄 수 있을까.

지금같이 순수하고 성실만 마음만 계속 갖고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불가능이란 없다”는 그의 평생 좌우명처럼 말이다.

<베이징/김세훈기자>

 
 
Offenbach - Les larmes du Jacqueline
<자유게시판의 권태하님 게시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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