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 이어진 저녁시간...
물론 부장의 축일은 7월 12일에 간략하게 축하를 했지만
우리 부서의 유일한 수제 카드를 받지 못했기에
카드와 함께 다시 축하식을 갖기로 한 것이다.
쵸코파이에 생일 초를 2개 꽂은 후 우리는 축하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우리의 저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김치전은 양이 적은 것은 절대 아니었음에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사라져 버렸고,
곧 허전함에 못이긴 우리는 시간에 절대 구애받지 않고
라면을 삶을 물을 버너 위에 올리고 말았다.
(그 뒤로 한 번 더 삶아 먹었다고 하면 모두 뭐라고 할까?)
그리고 동네 가게에서 방금 사온 맥주병을 땄다.
(그 곳은 병따개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돌아가며 잔을 비우고, 맥주가 다 떨어지자 1병뿐인 소주병도 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붉은 빛의 향좋은 포도주로 입가심까지 한 우리는
한동안 못했던 길고 긴 생활나눔 시간에 들어갔다.
일명 ’진실게임’이었다.
말이 없을 것 같았던 은진이가 먼저 말문을 열었고,
우리는 그 동안 은진이가 품고 있었던 많은 이야기들과 함께 하며
은진이가 비로소 편집부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이야기를 듣는 모두는 마음 속으로
’은진아, 사랑한다.’라고 한 번 이상은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만년 막내, 수경이의 이야기.
언제 막내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인지...가 최대의 고민인 수경이.
모르는 사람은 막내여서 좋겠다고, 언제나 막내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 수경이는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모르는 소리 마!"
하긴 새로 들어오는 부서원조차 모두 언니, 오빠들이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벗어나야 그 위치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알지 않을까?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이 새벽이 되고
우리는 하나, 둘씩 잠이 들었다.
다음 날,
11에 미사만 없었다면 우리는 더 느즈막히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래 층(순례자의 미사 후 우리는 윗층으로 거처를 옮겼었다. 1층은 온전히 가좌동 어른들, 원래 2층에 자리잡고 계셨던 수녀님들은 성당과 연결된 피정의 집으로 옮기셨었다.)의
어른들은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사진도 찍고 성당도 구경하고 했던 것 같지만
그 분들에 비하면 우리는 게으름의 극치였다.
마침내 신부님께서 뛰어 오셔서 방문을 두드리시고...
"왜 이렇게 늦게 일어나. 일찍 일어나서 성당도 좀 둘러보고 그러지!!"
우리는 조금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방정리에 짐정리에 들어갔다.
미사하러 성당으로 가면서
신부님께서는 서울 청담동 성당에서 남성분들이 미사에 함께 하신다고,
그 분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오실 거니까
자리가 많이 남을 테니 타고 가게끔 말씀을 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날씨가 갠 것으로도 이미 기쁨이었는데
더 큰 기쁨을 주심에 감사를 드릴 뿐이었다.
(아마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면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고려했을 것이다.)
미사는 뒤에 서서 참례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손님신자가 많았고,
역시 그 손님들을 하나하나 챙기는 신부님의 모습도 또한 볼 수 있었다.
그 날의 특별연주는 ’팬플룻’이었다.
연주해 주신 곡목은 ’주여 이 죄인을...’로 기억하는데
신부님께서 성당을 지으시며 내내 가슴으로 불렀던 노래라고 하셨다.
그래서일까...?
슬픈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렇게 뿌듯함으로 어깨가지 들썩거릴 듯한 기분으로 미사를 마치고
점심을 먹었다.
시골 성당은 그렇듯 미사 후에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손님 신자든, 신자가 아니든, 본당 신자든
미사를 함께 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하는 식사...정말 맛있는 점심이었다.
닭볶음탕에 곤드레밥.
곤드레밥이란 취나물(곤드레 나물이라고 불렀는데...맛이 같았다.)을 밥할 때 함께 넣어
하는 것인데,
다 되면 큰 그릇에 담아 고추장이나 간장으로 비벼먹는 밥이었다.
나물을 부러 집어 넣지 않아도 되니 참 편리했다.
그 독특한 맛은 아마 먹어보지 않고는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밥을 먹고 우리는 드디어 성당을 떠날 준비를 했다.
...마지막 이야기도 준비되어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