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씨앗을 심은 후부터

1999. 7. 9. 오후 2: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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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씨앗을 심은 후부터

-영화 <길>에서의 사랑의 고백

 

물오리가 없으면

아가씨가 대신 물오리가 되라고

당신은 말했죠 마을 장터에서

공기총으로 나를 겨냥하면

심장을 엎지르며

나는 죽는 시늉을 했어요

 

해장국도 끓일 줄 모르고

쓸모없이 나뒹구는 돌처럼

한때는 심장의 빈 어둠으로 사는 것이

온통 지긋지긋했지요

그러나 내가 당신 곁을 떠난다면

누가 당신 공기총을 반짝이도록

닦아줄까요 당신이 코를 골며

잠자고 있는 동안에

나는 들로 나가 토마토를 심었답니다

떠도는 우리들이라

토마토의 수확을 기다릴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빈 깡통 안에 무심히 떨군

토마토 씨앗 하나가

내 안에서 싹을 틔웠답니다

 

토마토 씨앗을 심은 후부터

모든 것이 내 안에서 달라졌어요

어쩌면 내가 토마토 씨앗을 심은 그 다음부터

우린 마음 속에 토마토 밭을

안고 다니기 시작한지도 모르죠

자, 그러니 이제 당신의 마음도

내게 말해보세요

 

-백미혜 시집 <<토마토 씨앗을 심은 후부터>>에서

 

**'분노를 다스리는 주문'을 가르쳐 주신 교수님께서 수업 시간에 칠판에 적어 주신 시예요. 여러 번 읽고 소리내어 낭송하면, 그 때마다 빛나는 구절이 새롭게 다가오는 좋은 글이죠. 영화<길>을 보고 이 시를 읽으면 더 아름다워요. 오래되었지만 좋은, 프랑스 흑백 영화랍니다.(명동 바오로딸에도 있음) 마음이 고단할 때 꺼내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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