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지각을 했다. 초조하게(사실 요즘은 매일 지각을 해서 별로 초조하지도 않다.) 시계를 보면서 천천히 안전운행을 하는 지하철 안에서 혹시 전교생조회같은 건수가 있어서 나의 지각이 그냥 어수선하게 묻혀질 만한 일이 없나 생각했다. 아, 그렇지. 오늘 종강미사. 다행이다. 이런 날은 그냥 일찍 온 척 하면서 혜화동 성당에 스윽 들어가 떠드는 아이들을 막 조용히 시키면서 열성적인 척하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오늘은 나의 도착이 너무 이르거나 늦었다. 성당으로 줄지어 가는 대규모 행렬과 정면으로 교문에서 마주친 것이다. 이런 망신이. 아무튼 내가 담임을 했던 모든 놈들은 ’선생님, 학교 좀 일찍 오세요. 맨날 교감선생님 들어오시잖아요. 실내화며 이것 저것 걸릴게 얼마나 많은데...’하고 질타아닌 질타를 한다. 그럼 난 ’가르치는 학생들이 예쁘냐? 예쁜 여선생님이 있냐? 윗분들이 나를 이뻐하냐? 너희들 같으면 학교 일찍 오고 싶겠어?’라고 하거나 ’괜히 윗사람이 일찍와서 공포 분위기 조성하는거 아주 안좋은 관례란다.’라고 대충 넘긴다.
오늘 종강미사에서는 밴드부의 새로운 리드싱어가 노래를 불렀다. 애띤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게 참 귀여웠다. 우리 창4동 성가대에도 저렇게 예쁜 소리를 가진 아이는 참 많은데... 하고 생각했다. 다음 주에는 특송으로 꼭 ’사요라망(필리핀 성가)’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아이들이 좋아할까?
토마스 사도의 축일인 오늘 역시 토마스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장면을 들었다. 신자 경력 20년에 가까운 나, ’다 그게 그 복음이지 머’ 생각하며 대충 흘려듣는데, 갑자기 맘을 두드리는 몇 구절이 들렸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 오셔서’ 우리가 두려움과 절망으로 문을 걸어 잠가두어도 그분이 오신다. 나는 늘 닫힌 문만 본다. 아니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어디에도 희망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안다.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은 계속되며, 사랑은 수락되지 않고, 선의는 꺽이고, 남모른 수고는 기억되지 않고, 병이 들어 고통스러워 하고, 전쟁은 계속 되고, 인생의 거친 파도는 지금 잠시 우리에게 닥치지 않았을 뿐... 모두 닫힌 문처럼 절망적인데, 그분은 오신다니.
어제는 사실 우리 본당의 캠프 회합 날이었다. 가야했지만, 가지 않았다. 대신 레크 재교육 연습을 가는 헬렌에게 ’레크공주님 레크집중훈련 잘 다녀오세요. 전 15지구 회합갑니다.’라고 메세지를 보내서 나의 결석을 암시적으로 알렸다. 신정동은 기억이 전혀 없지만 사실 내가 태어난 동네다. 상습 수몰지구여서 거기 사는 동안 수재를 당한 적이 있다는 얘기만 어머니께 들었을 뿐...
젬마선생님의 심부름으로 문화상품권을 사러 가는동안 ’네가 그토록 원하는 사랑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너에게 이미 주어졌다.’라고 중얼거렸다. 요즘은 그걸 자주 중얼거린다. 젬마 선생님이 그런 걸 사오라고 심부름하는 일 자체에서 또 신정동의 복잡하고 정돈되지 않은 가게며, 놀이터며 그런 걸 지나면서 이제 집에 왔구나 하는 평화를 느꼈다.
희정 선생님의 말은 정말 옳다. 교사의 기도를 부를 때마다 울컥 치미는 것은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해주시고, 또 그동안 교사들과 아이들과 함께 했던 보석같은 기억들이 다 되살아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순전히 서러워서이다. 추운 겨울 그으름이 계속 나는 석유 난로 하나만 놓고, 아이들 손과 입술이 파랗게 어는 걸 보면서 성탄제 연습한 것, 신부님하고 사이가 안좋아서 예산 지원 못받고, 사발면만 먹고 일했던 날들, 선의를 가지고 했던 일로 신부님이나 선배들에게 욕만 먹었던 일, 수퍼란 수퍼는 다 돌아다니면서 ’박스 좀 남은거 있으면 주세요.’하고 몇 번씩 돌아다닌 일, 후배들과 오해가 생겨서 싸웠던 일, 혼자만 일하다가 신경질이 나서 화를 냈더니 아이들과 후배들이 왜 화를 내냐며 이해해 주지 못했던 일, 과로로 병을 얻어서 몇 달씩 병원에 다녔던 일들 모두 교사의 기도할 때마다 떠오르는 서러운 기억들이다.
데레사 선생님께서 ’교사하다가 제일 힘든 일이 무엇이었나요?’하고 물었을 때, 다른 것으로 답변했지만,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더 힘든 것이 있었다. 내게 교사하다가 가장 힘들 었던 건, 같이 일하는 여교사 중에 누군가가가 너무 좋아졌을 때였다. 회합시간 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혹 그녀가 아닐까 하고 가슴 철렁하게 쳐다 보는 일, 간식거리를 먹을 때, 가까이 있으면 젓가락을 챙겨주고, 또 멀리 있으면 잘 챙겨서 먹고 있는지 살피고, 그녀가 레크나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면 앞에 나가서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을 때 묘한 질투심을 느끼고...캠프나 엠티 때 다른 조에 편성되어 있으며, 괜히 서운하고, 또 같은 조가 되면 어쩔 줄 몰라서 괴롭고. 그녀가 없으면 교사실이나 성당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밥이 모래알 같고, 그동안 즐겁게 놀던 다른 교사들이 다 귀찮게 여겨지고. 그리고 이렇게 아무리 나혼자 설레여 해봐야 결국은 아무렇지도 않은 사이가 될 것을 예측하면 너무 절망적이다. ’그녀는 네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테니, 시간과 정서를 낭비하지 말렴.’이라는 충고를 들을 때는 더욱 힘들다.
두루두루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하고 해야할 일이 많은 교사회에서 늘 한 쪽으로만 마음의 문을 열어 두고 있는 건 참 괴로운 일이다.
빈센트 반 고호의 글을 읽으니 오히려 희망이 생겼다. 그는 사촌인 케이를 사랑했지만, 모두의 만류에 시달렸고, 케이로부터도 ’절대 안된다.’는 단호한 거절을 당했다. 그는 용기있게도 그는 동생에게 이렇게 편지에 썼다. "네가 사랑에 빠졌을 때 ’절대 안 된다.’는 대답을 듣게 된다 해도, 체념하지 말아라. 물론 너는 행운아이니 그런 일은 없으리라 믿는다... 사랑에 빠질 때 그것을 이룰 가능성을 미리 헤아려야 하는걸까? 이 문제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는 안되겠지.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지.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니까’
나는 다시 생각을 바꿨다.
문이 다 닫혀 있을 때도 오시는 그분처럼, 희망은 늘 있다.
기대를 못한다고 희망마저 저버릴 수는 없다.
’재선아, 그거 알아? 사랑은 섬기는거야. 그냥 주는 거지.’
처음 대학 들어갈 때 선배교사인 이사벨라 누나가 해 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