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현존 체험

2013. 11. 15. 오전 6: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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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 현존 체험

     

     

    매일 반복되는 일과의 어수선함을 피해서 하루를 좀 더 보람되고 알차고 휘망적인 삶을 살 수 없을까?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바라고 행복한 삶을 바라지만 여전히 우리는 생활에 쫓기고 세속의 거센 바람에 시련을 받고 있는 것은 마음의 시공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신 팔복의 향기는 많은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지금도 귓전을 두드리며 동떨어진 삶이 아니라고 전해집니다. 문명이 만든 최신형의 물질은 반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고물이 되는데 주님의 말씀은 몇 천 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말씀으로 전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주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신앙의 신비이며 우리의 신념과 신앙이 우리의 행복과 안녕을 지켜가는 열쇠가 아니라면 과연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을 수 있을까요? 똑같은 생활 속이지만 하느님 현존 속으로 들어서도록 자신이 거룩한 자리를 만들어갈 대와 그러지 않고 세속의 일에만 쫓겨 갈 때의 삶의 차이는 극과 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세속의 삶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 이외엔 믿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매일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들을 의혹을 가지고 바라봐야하는 두려움이 따르지만 신앙으로 하루를 열어가는 사람은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하느님의 숨결 안에서 그분의 이끄심에 따르기 때문에 꿈에 희망을 더할 수 있으며 언제나 새로움 속에서 새 생명을 얻는 차이가 생겨나게 됩니다. 하느님의 현존 체험은 아주 작은 의미 하나에서도 느낄 수 있으며 그분이 나와 함께 해주신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신이 믿는 절대자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이 따라야만 살아있는 신앙이 될 것입니다. 언제나 새벽이 오면 밝은 태양은 성스럽게 떠오릅니다. 성스런 새벽공기가 우리의 해안을 밝게 해주고 새로운 새 생명의 정기를 뿜어주지만 우리는 맑은 정기를 마시려하기 보다 세속의 바쁨 속으로 쫓겨들어 갑니다. 많은 것을 주시는 하느님이시지만 닫힌 시공으로 인해 은총을 놓치게 되고 거친 세속의 비바람 속으로 우리는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희망적이고 기쁜 보람은 막연한 기대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 현존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을 인식할 때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게 되며 그분이 주시는 빛으로 충만 되고 힘찬 하루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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