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가톨릭 신학 21: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을까요?
다른 종교를 믿어도 구원이 가능할까요?
성부께서 모든 인간의 구원을 바라셔서 성자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셨고, 당신 뜻을 이루기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12사도 안에, 베드로 사도 위에! 예수님의 파견과 성령의 이끄심으로 사도들은
교회를 통해 세상에 복음을 전합니다.
교회는 자신이 먼저(=우선적 혹은 배타적) 구원 대상이 되고,
동시에 모든 이를 위한(=포괄적) 구원의 도구가 되는 '성사'입니다.
그리스도교 이외에서도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네! 교회 이외에도 구원받을 방법이 있고, 교회 밖에도 구원 '가능성'이 있다고
가톨릭교회는 답합니다.
타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면, 왜 선교를 하고, 왜 미사에 나가야 할까요?
가톨릭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며, 올바르게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의 보증과 확증이 주어진다고 가르칩니다.
교회의 성사들을 통해 은총을 얻고, 구원을 미리 맛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앞에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
예수님은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받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받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마르 16,16 참조)
즉 세례 여부만으로 단죄가 결정되지 않을 듯합니다.
하느님은 아직 세례받지 않은 사람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잊지 않고
구원으로 이끌고자 하십니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 16항)
복음과 교회를 모르는데 어떻게 구원될 수 있는가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으로"(「선교교령」 7항)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은 오직 하느님만 아시는 방법이라 인간은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은총은 타종교와 문화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이 가톨릭교회 공식
입장입니다.(「교회헌장」 16항, 「비그리스도인 선언」 2항)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말은 초기 그리스도교 교세
확장 때 교회 중요성 강조와 교회 분열에 대한 경고, 교회 일치 강조가
목적이었습니다.
교회 내 사람들에게 교회 안에 분명 구원이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었습니다.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더 이상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세에 ‘교회 밖에 은총이 없다.'고 주장(=얀세니즘)했던 극단적 사람들을
이단으로 단죄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타종교의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진리의 위계(位階)'에 대해
명확히 언급합니다.
그리스도교에 주어진 구원 은총과 다른 종교에 주어진 것이 같지 않고,
진리와 구원에는 '위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지닌 ‘구원의 보증과 확증’, 타종교들에게 주어진 '구원의 가능성'은
차이가 있습니다.
세례를 통해 교회에 소속되어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구원이 보증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야곱의 장남 르우벤은 부모에게서 첫 번째로 태어난 아기로 장자권을 계승할
장자였기에 당연히 부모와 가족들의 환영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장인 라반에게 속아서 어쩔 수 없이 라헬이 아니라 언니 레아와
결혼합니다.
레아는 예쁜 동생 라헬과 비교되면서 어릴 때부터 자연히 자매간의 경쟁의식과
콤플렉스를 갖고 성장했을 것입니다.
사촌 야곱이 라헬만 좋아했을 때, 레아는 여성으로서 자존심이 상하고 질투심도
느꼈을 것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첫날밤을 치른 대상이 언니 레아였다는 사실에 야곱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물론 시대와 문화가 다르지만 여러분이 야곱이라면 어떤 마음이 드실까요?
일단 결혼한 레아는 야곱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고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녀의 임신은 라헬과 맺는 경쟁 구도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근동 지방에서 자녀, 특히 아들은 어머니의 가족 숫자를 늘리는 것뿐
아니라 어머니 자신의 사회적 위치까지 결정하는 요소였기 때문입니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르우벤이 레아의 태중에 있을 때 레아는 남편 야곱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한편 마음으로 불안했을 것입니다.
"레아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주님께서 나의 괴로움을 보아주셨구나. 이제는 남편이 나를 사랑해 주겠지.' 하면서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였다."(창세 29,32)
레아가 안도하는 모습에서 연민마저 느껴집니다.
그런데 사랑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인간이 마음대로, 생각대로 할 수 없습니다.
야곱은 첫눈에 반했던 라헬을 사실 평생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레아가 불쌍하고 동정심이 가지만 사랑은 전혀 다른 색을 지닙니다.
탄생 이후에도 르우벤은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흠뻑 받지 못하며 자랐을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빨리 어른처럼 행동하려는 습관이 들고 이른바 가족의 인정을
받으려고 장남 콤플렉스에 빠질 가능성도 큽니다.
그런데 레아는 남편 야곱의 마음이 여전히 라헬에게 있음을 알고 계속해서 아이를
원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차지하려고 했던 레아는 르우벤 아래 세 명의 남동생을 연년생으로
낳습니다.
어린 르우벤은 한살이 채 되기도 전에 동생에게 엄마의 젖을 빼앗긴 채 젖먹이
동생들이 계속 태어나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엄마의 젖을 편안히 먹어보지 못한 아이의 심리상태는 박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아이 르우벤은 어머니에게 사랑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르우벤은 밖에 나갔다가 들에서 임신에 좋은 합환채를 발견하고, 자기 어머니
레아에게 갖다 줍니다.(창세 30,14)
르우벤은 어린 나이부터 내적으로는 장남의 책임감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동생들에게 타협안을
제시해서 동생 요셉을 죽이지 않고 이집트에 팔아버린 사건이나(창세 37장) 양식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간 이야기에서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 야곱을 설득하여
용감하게 막내 베냐민을 이집트로 데리고 간 사건으로 잘 나타납니다.(창세 42장)
그는 평생 동생들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했으면서도 아버지 야곱의 칭찬과 격려에
목말랐고 다른 형제들의 인정도 받지 못했습니다.
장남으로 가족들을 책임지면서도 죄책감을 안고 살았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르우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의 따듯한 인정과 격려일 것입니다.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