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2020. 10. 27. 오전 6: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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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루이스 스미즈는 우리가 하느님을 용서하는 단계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는 억울한 고통을 당할 때 하느님께 상처받고, 그 상처로 인해 하느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느님께서 아무것도 하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고통을 겪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느님을 용서하며 화해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용서하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용서하면 정의가 사라지는 것 같고, 타인에 대한 우리의 힘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억울한 상처와 자신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인해 용서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람제이(J. L. RAMSEY)는 용서는 신학적으로 복잡한 개념이라고 설명합니다. 상처가 되기 전에 빨리 잊어버리는 것을 용서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원래 무지한 사람이니 성숙한 내가 이해하자"라는 식의 우월감을 용서로 여기기도 합니다. 자신의 탓으로 떠안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용서를 '회피성 희생'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치료적인 용서도 있고, 사과와 보상을 전제로 하는 용서도 있습니다. 용서에 대한 영성-심리학적 연구로 유명한 몽부르케 (J. MONBOURQUETTE)는, 죽은 사람을 용서한다고 생각할 때 서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용서가 반드시 화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의지적으로 용서했더라도 몸과 마음으로 용서하는 것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마음은 여전히 아프고 표정관리가 잘 안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용서의 은총을 구했습니다. "아버지 그들을 용서하소서"(루카23,34).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기 위한 힘을 다 소진해 버릴 때, 우리는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이는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느끼게 됩니다. 동시에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용서해주셨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깨닫게 됩니다. 굳건한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용서의 은총을 청할 때,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복수를 한다고 상처가 씻기는 것이 아니라, 상처 안에서 사랑이 창조될 때 아물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상처를 통해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연민과 공감의 마음이 자라나게 됩니다. 용서를 거부하는 동안 고통받고 타인의 영향력에 지배받는 사람은 우리 자신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사랑안에서 용서하는 사람은 타인을 내 안에서 자유롭게 내버려두며 자신도 자유롭게 됩니다. '원수'는 여전히 '원수'로 남아 "처음 상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지라도, 자신의 상처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관계안에서 상대방과 지낼 수 있게 됩니다. 상대방에게 잘못에 대한 합당한 책임은 물어야 하지만, 설령 거부당하더라도 용서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됩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모두 기억하지만 용서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죄가 당신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길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의정부교구 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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