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에로 가는 길
신앙생활을 하게 된 동기를 곰곰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다만 그 기쁨과 행복이 어떤 것이 진짜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 또는 눈에 보이는 것에 비중을 두고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참 기쁨과 참 행복을 찾지 못합니다.
살면서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지고 누리며 살고 싶은 마음,
죽어서도 영원한 생명을 잃지 않고 천국의 복락을 누리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마음일 것입니다.
이것도 놓치기 싫고 저것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인간의 마음은
이중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합니다.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조건을 제사합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마태 19,17)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고 싶어 하는 우리들에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 복락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섬길 수밖에 없음을 단호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자들에게 비움의 영성을 가르치고 있지만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기쁨보다 슬픔을, 행복보다 불행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의도는 세상의 부유함을 다 가지고서는
천국의 복락을 누리지 못함을 일깨우는 말씀이었습니다.
잠간 머물다 가게 되는 세상의 복락이 행복하게 느껴지고
영원히 살아야할 곳에서 복락을 누리지 못하고 암흑 속에서
처절한 고통에 머물게 된다면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부모의 은공을 모르고 불효를 할 때 호로 자식이라 말하고
부모의 은공을 알고 효도를 할 때 효자라고 칭송합니다.
죄 지음을 용서하시고 당신의 자식으로 거둬주신 하느님께
그 은혜를 잊고 불충실 한다면 배은망덕한 종의 신세를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노래에도 있듯이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선택의 기로 점에서
우리는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가 그 선택을 올바르게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이끌어 주었지만 최종의 몫은 우리들 자신인 것입니다.
답은 정해져 있지만 그 답을 쫓아가기까지 안타까운 마음이
버려야할 것을 버리지 못하게 우리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을 섬기고 찬양 찬미하며 그분의 사랑에 머물면서
우리도 그분의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외는 마지막 순간에 다 부질없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그동안 운명하시는 교우들의 마지막 순간을 보며
느껴왔던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두 주먹을 쥐고 왔다가 빈손을 펴고 죽어갑니다.
그 어떤 것도 가지고 갈 수 없고 오로지 빈손으로 떠납니다.
영원한 생명과 삶은 오로지 온전히 그분에게 속해있을 때
받을 수 있는 축복이고 은총인 것입니다.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