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사두가이들은 사제계급을 포함하여 권력과 재물을 한꺼번에 움켜쥔
귀족계급이었던 만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다.
즉 그들은 밖으로는 힘 있는 로마제국에게 적당히 비위를 맞추며
굽실거리고 안으로는 힘없는 백성들에게 율법 엄수를 내세우며
성직자 중심주의를 지킴으로써 특권층에 머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삶의 정당성을 그들이 보기에
'저승이니 부활이니 하는 비현실적’ 바리사이들과는 달리
'천사는 뭐고 부활은 다 뭐냐, 한 세상 잘 살다 가면 되는 거지.' 하는
현실적이고 현세적인 믿음에서 찾아왔다.
이러한 때 예수라는 시골뜨기가 숙적 바리사이들과 차원을 달리하며
폭발적 인기를 누리며 떠올랐다.
사두가이 몇이서 자신들의 특권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눈엣가시 예수를
혼쭐내기로 작당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께
물었다.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솔깃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아주 고약한 질문이다.
일곱 명의 남편을 연이어 잃어야 했던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은
'귀 기울여 듣고 함께 아파하는 삶의 이야기'이지 결코'저승이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쓰일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을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사안 자체의 무게가 흥미를 끄는 논쟁거리로 만들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 이야기를 예수님 골탕 먹이려고 만들어낸 논쟁거리로만
알아듣자고 하더라도 사두가이들은 피할 길이 없다.
그들이 ‘저승 따위는 없으니 현세에서 행복하게 살자’고 주장하려고 가져온
이야기가 역설적이게도 ‘현세에서 가장 불행했던 여인의 삶’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때 그 사두가이들은 오늘도 모양만 바꾸고 살면서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가족들 생각해서라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영원한 생명을 안 믿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먹고 살자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고종향 가롤로 신부 (병원사목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