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물고 태어난 사나이, 예수

2019. 12. 27. 오전 6: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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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물고 태어난 사나이, 예수

 

 

새로운 복음화를 향하여 예전에 '노숙인 다시 서기' 활동을 하던 어느 성공회 신부가 한 말이 새록 새삼 떠오른다. 한 노숙인 여성이 '더러운' 공중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았단다. 빈부귀천을 떠나 세상의 모든 아기들은 하느님 은총 안에서 지상으로 초대받은 손님이라는데, 과연 이 아기에게도 축복이었을까? 아기를 낳은 노숙인 산모에게도 그날이 기쁜 날이었을까? "나는 자신할 수 없다"고 이 사제는 고백했다. 성탄절, 많은 이들은 "기쁘다, 구세주 오셨네"라고 예수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외양간의 냄새와 함께 이 세상에 침입했다"고 해방신학자 구티에레즈는 적었다. 그분의 양친은 산모의 몸을 풀 방 한 칸 구하기 어려웠다. 아기가 누워있던 곳은 짐승의 밥통이었다. 이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은 목자들이었는데, 그들은 유대에서 가장 천대받던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더러운 짐승의 똥을 만져야 하고, 밤새 남의 양을 치던 이들은 한밤중 마을에 도둑이 들면 제일 먼저 의심받았다.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국가권력의 폭력에 시달렸다. 헤로데는 그의 탄생을 달갑게 여기지 않아서 병사들을 시켜 죽이려 했기 때문에 예수님과 그의 부모는 이집트로 도망가서 '이주노동자' 가족으로 객지에서 살아야 했다. 평생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던 예수님이 공생활 벽두에 나자렛 회당에서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고 선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축복했던 예수님은 유대 지배층과 로마 권력의 공모에 의해 십자가에서 살해되었다.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의 운명을 제 운명으로 받아들이셨는데, 아빠 하느님이 그분을 사흘 만에 부활시킨 것처럼, 가난한 이들도 마침내 해방되리라고 우리는 믿는다. 이게 그리스도교 신앙이다. 예수님은 누추하게 태어났으나 나중에는 '그리스도' '왕'으로 대접받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어느 여인은 청와대에서 근사하고 은혜롭게 성장해서 결국 '왕 노릇'까지 했으나 결국 '파렴치범'으로 낙인찍혔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복음서의 말씀이 예사롭지 않다. 이 어리석은 여인은 아비와 스승과 친구를 잘못 만났다. 예수님의 아빠(abba)는 히브리 노예들의 하느님이었다. 이집트에서 고통받는 신음소리를 듣고 그들을 해방시킨 하느님이다. 그러니, 그분의 아들인 예수님 역시 로마의 식민지 유대의 노동자 집안에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이들과 뿌리 깊은 연대감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가엾은 여인은 독재자의 딸이었고 공주처럼 자랐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변호인이었고, 그 가운데 마지막 예언자라고 불리던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의 직접적인 스승이었다. 요한은 권력에 빌붙어 있는 탐욕스런 인사들을 가혹하게 비판하였고, 결국 당대 최고 권력자에 의해 살해당했다. 예수님의 친구들은 어부이고 세리이며 창녀들 이었다. 제 힘으로 정직하게 일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었고,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주변으로 밀려난 인생들이었다. 하느님 아버지는 '사랑 그 자체'이신 분이고, 그 사랑이 예수님을 통해 노예들과 세상의 가난한 이들에게 쏟아져 내렸다고 복음서는 증언한다. -한상봉 이시도로(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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