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라
오늘 복음의 핵심은 "원수를 사랑하라"이다.
과연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원수는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원수는 가까운데 있다.
친구나 동료, 잘 아는 사람이 배신하면 원수지간이 된다.
원수는 원한이 맺힐 정도로 나에게 심각한 해를 끼친 사람이다.
내 앞을 가로막는 훼방꾼이기에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훼방꾼이기에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무찔러야할 대상이다.
나의 행복을 앗아가 버린 원수를 사랑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예수님 가르침의 골자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
사랑의 이중 계명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
(1요한 4,20~21 참조).
하느님께서는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이웃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웃은 누구인가?
모든 인간이 우리의 이웃임을 밝혀 주셨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다.
멀리 있는 이들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이들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을 확장하여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충격적인
가르침을 주셨다.
원수는 가까이 있는 우리의 이웃이다.
우리의 용서와 자비, 사랑이 필요한 이웃이다.
원수를 사랑 하는 일은 이웃 사랑의 정점이다.
둘째,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수를 갚으려는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폭력의 악순환은 연결 고리를 끊어야 멈춘다.
보복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용서와 자비가 필요하다.
먼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해야 대화가 이루어지고 화해의 문이
열린다.
서로 용서를 구하고 용서할 때만이 악순환과 악연을 끊을 수 있다.
예수님은 용서를 넘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자신을 못 박은 이들을 용서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원수를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 때 평화가 찾아온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세계평화, 인류애를 달성할 수 없다.
셋째, 사랑의 위대한 힘을 믿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으로 불리움을 받았고 그분의 사랑에 응답했다.
예수님의 사랑은 원수까지 사랑하고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사랑의 위대한 힘은 경계와 장벽을 허물어 서로 하나가 되게 한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특성이다.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우리에게 과도한 부담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애초부터 원수지는 일이 없어야겠다.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우리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느님의 힘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다.
하느님의 사랑이 원수까지 사랑하게 한다.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그리스도교의 위대성과 고유성을 드러낸다.
예수님은 사랑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었고 사랑으로 인류 구원을 완성했다.
우리는 사랑의 위대한 힘을 믿으며 사랑의 승리를 확신한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해야 할 이유는
첫째, 원수는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둘째,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사랑의 위대한 힘을 믿기 때문이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루카 6,27)
-김의철 에드워드 신부 (전주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