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과 이혼
북경에서 생활하다 보면 좀처럼 적응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 특히 교통체계가 많이 낯설었습니다.
신호체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심각한
부분은 그 신호조차도 사람들이 잘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임에도 한 가지 놀랐던 부분은 교통사고 발생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불안한 상황이 오히려 모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어 운전시에나
보행시에 주변을 살피고 천천히 가도록 만든 결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불완전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모두 없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실제로 며칠 전 출근 시간에 교차로에서 신호등이 갑자기 꺼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차들이 뒤엉켜 앞으로도 옆으로도 못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결국 저는 이 사건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이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체계는, 비록 그것이 불완전한
것일지라도, 없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하느냐,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율법과 현실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고질적인 딜레마였기 때문에 해결과정에서 자칫 한쪽을
심하게 훼손하거나 파괴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무시하지도,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는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들고 온 문제도 모세 때부터 논란이
되어왔던 문제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번 사례에서 만큼은 율법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판결을 하십니다.
그러나 곰곰이 더 생각해보면 이는 율법을 위해 현실의 삶을 외면한 판결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선악과의 경우처럼, 욕망이 초래하는 비극을 차단하고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회복시켜주기 위한 예수님의 결단이었습니다.
사실 이혼이나 동거는 혼인의 결점에 대한 보완책이 될수 없습니다.
이혼 후나 동거의 삶이 혼인의 삶보다 더 많은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교통신호가 불완전하다하여 신호등을 모두 없애거나 수신호등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비록 혼인이 두 남녀의 행복한 삶을 완전하게 보장해 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혼인 안에서 해결책을 찾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혼인이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인가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나의 배우자가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인가에 대한
확신입니다.
바로 이러한 믿음, 곧 내 혼인은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이기에 현실이지만
동시에 신비이기도 하다는 믿음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배우자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혼인생활을 통해 하느님 신비를 체험하는 행복한 삶을
이뤄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장세훈 시몬 신부 (교포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