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속에서

2018. 7. 31. 오전 5: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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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속에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치유됩니다. 그런데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르며 밀쳐 댔지만, 오직 하혈하던 여인만 치유되었습니다. 그녀만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곁에 머무르며 그분의 뒤를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깁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군중'의 역할은 그런 수준에서 끝납니다. 예수님을 찾아 몰려다니고, 그분의 말씀도 듣고, 그분이 하시는 놀라운 일도 보고, 때로는 그분이 주시는 빵도 얻어먹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면 그냥 집으로 돌아갑니다. (요한6,66참조). 신학자 칼 라너는 이렇게 말했다지요. "미래의 그리스도인은 신비가가 되거나, 아니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소 엉뚱한 방향에서 이 말에 공감하게 해 주는 일화가 떠오릅니다. 페루 산골에서 전기가 없던 시절에는 동네 사람 대부분이 저녁만 되면 성당으로 모였습니다. 깜깜하던 그 동네에서 성당은 발전기로 전깃불을 켜 놓아 유일하게 환한 곳이었습니다. 나중에 모든 가정에 전기가 공급되자, 신심 깊은 소수의 신자들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성당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각 가정마다 텔레비전을 켜 놓고 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눈길 끄는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요즈음,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일 하나만도 상당한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점점 자기 신앙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느는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꾸준히 성당에 나왔어도 아무런 체험이 없었다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겠지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예수님보다는 우리 쪽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치유 받고 싶은 간절함, 저분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감, 군중이 아무리 가로막아도 기어코 그분의 몸에 손을 대겠다는 필사적인 태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냥 모른척하며 가셔도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군중 속에서 하혈하는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워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꼭 보고 싶으셨다는 얘깁니다. 그 사람이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광태 야고보 신부 (전주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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