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저희가 가서 가라지를 거두어 낼까요?
요즘 세상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숱하게 저질러지는 범죄들의 이야기는 이제 끔찍함과 잔학함에 있어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행위들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이 왜 이럴까 하는 생각에 암담한 마음입니다.
요즈음 세상은 폭포 끝에서 곤두박질치기 직전의 상황에 와 버린 것이
아니냐고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런 때 꼼짝 안하고 계시는 정의의 심판자이신 하느님이 의심되고
원망스러워질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일 전례의 말씀은 이러한 여러 의문들에 대하여 주님의 넓은
뜻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밭에 분명히 좋은 씨만을 뿌렸는데도 줄기가 나고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도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밀만 자라야 할 밭에 가라지도 함께 커 나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세상에,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심지어는 거룩한 교회에까지 가라지가
왜 자리하고 있는가를 알 수 없지만, 이는 선함을 파괴하는 악함이
이 세상 끝날 까지 우리를 괴롭히는 현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본능적으로 가라지를 뽑아 버리려는 충동을 느끼는 우리와는 달리 주인께서는
밀을 잘못 뽑을까 염려하여 수확 때까지 참아 주시고 계실 뿐입니다.
주인께서는 세상에도, 교회 안에도, 우리 마음속에도 선과 악이 얼마만큼 섞여
있는가를 우리보다 훨씬 잘 알고 계십니다.
세상의 여러 가라지들 때문에 밀이 괴로워하더라도 수확 때까지 당신의 심판을
보류하고 계실 뿐입니다.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지만 하느님은 분노하거나 보복하는 쉬운 방법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용서와 인내라는 넓은 자비심으로 우리를 대하시는 데에 그분의 진정한
위대하심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의 원수들로 죽어 마땅한 자들에게까지, 악을 버리고
회개할 시간과 기회를 주심으로써 당신의 관대함을 보여 주십니다.
(지혜 12,20 참조)
그러니 여러분, 우리는 심판관이 되지 말고 주님의 자비를 배우는 지혜로운
자녀가 됩시다.
그리고 주님의 넓으신 마음을 찬미합시다.
한없이 자비로우신 주님, 영원히 찬미 받으소서!
-박종충 레오 신부(전주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