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
글 : 최인호 베드로
한용운(1879~1944)은 승려이자 시인이었으며
또한 독립운동가로 우리나라가 낳은 근세기의 뛰어난 사상가였습니다.
자유와 평등, 민족과 민중사상으로 요약되는 그의 불교적 세계관과
독립사상은 그의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26년에 간행된 <님의침묵>은 그러한 미학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참아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질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후략)
의미를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만해 한용운이 노래하였던
"님"이 조국의 해방이라고까지 확대해서 해석하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랑하는 님'이라고만 부르고 싶습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시에서 분명히 영향을 받은
'님의 침묵'은 한마디로 연가입니다.
황금의 꽃과 같은 굳은 옛 맹세를 남기고 떠난 님을
그리워하는 이 시 속에서 특히 한 구절에 나는 가슴이 뜁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그렇습니다.
첫날밤, 첫걸음, 첫눈, 첫사랑 등 무엇이든 한 처음의 추억들은
신새벽의 처녀성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남기고 떠나 버린
님을 어찌 떠나보낼 수가 있겠습니까?
때문에 한용운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주님은 세례를 받고 성령의 인도로
광야로 나아가서 악마의 유혹을 물리친 후
마침내 그리스도로서의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드디어 첫마디의 말씀을 꺼내시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온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해서 생겨났으며(요한 1,10)
마침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오신
그 첫마디의 말씀을 토해내시는 것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그러나 주님이 터뜨리신 말씀은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온 우주와 만물이 숨죽여 기다린 제일성이
누군가에 의해서 행해진 되풀이의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한 발자국 앞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그렇다면 주님이 요한의 말을 앵무새처럼 표절하였다는 말인가요.
그러나 두 분의 말씀은 같지만
두 사람의 행동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요한은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지만
주님은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전도'를 시작하십니다.
'선포'와 '전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있지만
주님은 우리와 똑같은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요한은 메뚜기와 들꿀을 먹었지만
주님은 우리와 똑같이 먹고 마셨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살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셨으며
우리의 병을 고치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셨으며
그리고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이 세상을 향해 선포하였다면
'하늘나라'이신 주님께서 직접 우리의 곁으로 다가오신 것입니다.
요한이 새벽을 알리는 닭이었다면
주님은 새벽 그 자체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비로서 하늘이 열렸다면(마태 3,16)
주님이 전도를 시작하심으로 비로서
하늘이 우리에게 움직여 다가오신 것입니다.
하늘이신 주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심으로써
한용운의 시처럼 하늘과 땅의 입맞춤,
'주님과의 날카로운 첫키스'는 시작된 것입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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