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장 쉽게 하느님 사랑 체험하기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온 국민의 사랑을 받으시던 추기경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도 교회를 위해서
아니 어려운 모든 국민을 위해서
큰 일을 하시고 떠나시네요! ^^*
그리고
꽃샘추위인지 며칠 간 날씨가 다시 차가왔습니다.
다행히 눈이 내려서 조금이지만 대지의 목마름도 덜어주고
저 같은 사람은 설중 복수초를 찍을 수 있어서 좋은 주간이었습니다.
형제 자매님께도 좋은 주간이었겠죠?
형제 자매님,
우리가 생활하면서 힘든 일이 많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힘든 일은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잘못을 용서하는 차원이 아니라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을 선포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런 하느님께 사랑으로 응답하기는커녕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기보다는
그들에게 경제적인 부를 가져다준다고 믿고 바알우상을 숭배하면서 계속해서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결국엔 죄가 너무 커져서 바빌론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백성들은 유배를 가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거두지 않으시고 새롭게 관계를 맺어주십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다시 팔레스타인 땅으로 데려가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는 “내가 너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형제 자매님,
복음에서는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왔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예수님이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겨내고
중풍병자를 뉘인 들것을 예수님 앞으로 달아내려 보냈습니다.
그들이 어떤 관계의 사람인지 몰라도 환자를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이 아니라 의무감에서 하는 일이라면
“우리가 예수님께 데려왔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가 없어.”라고 포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환자에 대한 사랑이 컸기에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지 환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노력했고 마침내 성공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칠 능력이 있으시고
반드시 이 사람을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렇게 할 수가 있었겠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중병에 걸린 사람은 큰 죄를 지었고
그 죄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죄를 용서받으면 병은 낫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함께 있던 율법 학자들이 깜짝 놀랍니다.
“아니, 하느님만이 죄를 용서해주실 수 있는데, 이 사람이 죄를 용서한다니.
이 사람이 하느님을 모독하는 군.”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좀 아리송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라고 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 것을 가지고 걸어가라.’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물론 말의 길이가 짧은 쪽이 더 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은 점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병이 나았다는 것은 점검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를 용서받았다고 선언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이 짧거나 쉽기 때문에 죄의 용서를 선언하신 것이 아닙니다.
중풍병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다른 사람들이 계속 그렇게 말해왔기에
자신이 하느님께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런 환자의 마음을 치유해주십니다.
마음이 온전히 치유되면 대부분의 병은 낫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외형적인 증상이 나았다 하더라도
마음이 치유되지 않으면 병은 또 재발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러면서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주겠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모든 권한을 갖고 계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결정적으로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하고 말씀하십니다.
병자가 일어나 곧바로 나가는 것을 모든 사람이 다 지켜보았기에
예수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형제 자매님,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고유한 권한을 행사하셨고
장차 그 권한을 당신 제자들에게 맡기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사제를 통해서 하느님께 용서받았음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분명히 죄는 하느님께서 용서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하느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중풍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선언하셨듯이
오늘날 우리도 사제들의 사죄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용서를 확신할 수 있도록
고백성사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이번에 귀천하신 추기경님께서는 신자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을 향해서
“사랑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라는 당부를 늘 하셨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용서와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백성사를 통해서 가장 쉽게 그런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엔 많은 신자들이 고백성사를 받기가 어렵다고 두렵다고 합니다.
고백성사는 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성사입니다.
내가 어떤 잘못을 범했다 하더라도 내가 뉘우치기만 하면 하느님께서는 용서해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치유해주심을 우리는 고백성사를 통해서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유배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하시고 건강한 몸으로 치유해주셨습니다.
인간은 변덕스럽지만 하느님은 언제나 성실하십니다.
하느님은 이런 당신의 사랑을 결코 거두지 않으십니다.
그 사랑은 오늘도 고백소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렇게도 사랑하시는지?
정말 알아듣기 어려운 사랑의 신비입니다.
대구신학교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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