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찬양 찬미하는 삶 중에 미사 때만큼 “주님과 함께”라는 인사말을 하는 일은 드물게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살려고 하는 사람은 미사에 참례하고 미사가 뜻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인사말을 서로 나누며 사는 사람은 믿음을 통해 모두의 마음속에 주님께서 머물도록 해주시기를 기도하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산다는 의미는 현존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모든 신자와 함께 주님 현존의 신비를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길이를 깊이 깨닫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 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에페소 3, 17-19>
미사는 이런 하느님의 보물 창고가 미사 전례 안에 있어서 공의회 개혁의 첫 번째가 전례 헌장이었습니다.
저는 몹시 어려운 조건에도 모든 것을 견뎌내고 은총을 받게 된 것은 미사를 중요시하고 18살부터 동네 아이들 모아서 성당에 다녔습니다. 미사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과의 대화가 저를 깊은 믿음으로 초대하고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많은 장애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항상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로 해결해주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고,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의 현존을 갖고 살아가면서 주님과 함께 사는 신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사의 은총에 감싸여 있으면 세상의 어떤 것과도 주님을 바꿀 수 없으며 세상의 모든 가치인 권력, 재력, 명예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질서를 잡게 됩니다. tv 영상 미사와 실질적 미사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영상 미사가 현실화해가고 있으나 이는 그림의 떡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기억 속에 남아있지 마음 깊이 은총의 흐름은 없습니다.
라틴어로만 미사 드리는 시대에 신자들은 “미사 보러 가자”라고 했듯이 영상을 통한 미사는 참례가 아니라 구경을 하는 것입니다. 형식에 흐르고 공동체와 함께하지 못하는 전례는 신자들과 함께 성장하는 교회가 아니라 개별적 믿음입니다. 짝 교우의 신앙은 쉽게 사라지고, 공동체적 믿음이야말로 굳게굳게 성장합니다. 사람은 혼자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자라고 진리와 선과 미의 길을 가야만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어디나 계신 주님을 어디서나 찾아 만날 수 있습니다. 감실 앞에서 성체조배, 미사 중에 현존하시는 주님께 감사, 찬미, 찬송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 어제와 같은 아침이 아니라 새로운 날 아침입니다. 새 아침을 맞이하면서 오늘 하루 어제보다 후회 없는 날 보내고 아침마다 “좋은 아침” 하며 인사하듯이 새날을 새롭게 맞이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매일 새로운 날의 새로운 은총 속에 살고, 어제보다 더 희망찬 날을 맞이하듯이 매일 미사는 어제보다 더 큰 은혜와 은총 속에 하루를 시작하고 더 좋은 날을 살도록 합니다.
매일 미사 참례하는 신자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더욱 실천하는 것은 본당 신부 때 너무나 분명히 체험했습니다. 매일 미사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만나서 자유, 평화, 기쁨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에 살기 위해 매일 미사에 참례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