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창립

2005. 8. 18. 오후 7: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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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르실료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1970년 6월경에는 서울,대구,광주,부산,전주,인천,마산 등 7개 교구에서 이 운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이 무렵 꾸르실리스따는 1,200여 명을 헤아렸 다. 이에 꾸르실료 운동은 더욱 효과적으로 운영되어야 했고 모든 문제를 전국적인 입장에서 정 리하고 때로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또한 꾸르실료 운동의 통일성과 순수성 및 정체성을 위해 각 교구가 뜻을 같이할 필요가 있었다. 더욱이 교구간, 국제간의 교류와 각종 자료 교환 및 꾸 르실료 운동의 발전적인 토착화를 위해 공동 연구가 필요했다. 그것은 꾸르실료 운동의 사고 방 식을 더욱 자유롭게 창조적이며 각 교구간에 협조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했 다. 또한 협의회의 필요성은 어떤 규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세우는 작업이었다. 기준 은 자유롭게 해주는 반면에 규칙은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때로는 흐름을 막을 수도 있고, 때 로는 흐름을 질식시키거나 마비시킬 수도 있다. 또 한 꾸르실료 운동은 그 흐름이 끝난 것이 아 니라 일상 생활과 더불어 끝없이 흐르고 있기에 단일성과 그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서울의 꾸르실료 운동 초창기 주역들은 꾸르실료 전국 협의회를 창립하자는 데에 뜻을 모으고 회칙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그리하여 1970년 6월 30일 서울 가톨릭 학생회관에서 전 국의 꾸르실료 주간, 지도신부, 그리고 추천자들이 모여 꾸르실료 한국 협의회(National Secre- tariat of Cursillo in Christianity Movement in Korea)가 창립되었다.
창립 총회는 서울대교구 꾸르실료 주간 문창준 형제와 부산 주간 박우순 형제를 부회장으로 선 출하고 총무에 송찬규, 재무에 서정열, 기획에 김정진, 관리에 김기철, 감사에 김수옥 형제를 각각 선임했다.
드디어 주교회의 임시총회에서는 7월 2일자로 꾸르실료 한국 협의회를 인정하고 임원도 그대로 임명했다. 이렇게 해서 발족을 한 꾸르실료 한국 협의회는 매년 한 번씩 총회를 열고 꾸르실료 운동의 참된방향과 발전 및 공동의 노력을 꾀하게 되었다. 협의회의 실무는 지역적인 특수성에 따라서 처음부터 서울대교구 꾸르실료 사무국에서 맡았다.
1970년 6월 30일 창립된 꾸르실료 한국 협의회는 그 후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매년 총회를 개최 하여 각 교구의 꾸르실료 현황을 파악하고, 전국 차원의 문제들을 논의하여 꾸르실료 운동의 발 전과 내실화에 한층 더 기여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제3편 한국 꾸르실료 운동의 현황에서 다루기로 하고 1997년 제28차 총회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특징적인 내용들만 간추려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73년 6월 광주 예수 고난회 피정의 집에서 열린 제4차 총회에서는 7년에 걸친 한국 꾸르실료 운동의 방향과 운영 방안을 재검토하고, 양산에만 주력해 온 종래의 방법을 지양하며 꾸르실리 스따의 사후 관리 등이 심도있게 논의되었다. 그리고 1975년 7월 서울에서 열린 제6차 총회에서 는 꾸르실료 운동이 교회 운동임을 감안하여 성직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하고 전국 꾸르실 료 주간들과 지도신부들이 회의를 갖기로 결의하였다.
1978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제9차 총회에서는 외래어 심의 위원회가 꾸르실료 용어를 쉬운 우리 말로 바꾸어 사용토록 하는 토착화 방안을 내놓아 16개의 용어를 바꾸거나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한편 20주년을 앞둔 1986년 서울에서 열린 제17차 총회에서는 꾸르실료 20주년을 기념 하여 "한국 꾸르실료 운동 20년사"를 발간할 것과 20주년 전국 울뜨레야 개최에 관해 논의하고 드디어 1987년 5월 5일 대구에서 감격스런 20주년 기념 전국 울뜨레야 행사를 개최하였다.
1992년에 서울에서 열린 제23차 총회에서는 그해 9월에 한국에서 개최될 아시아 태평양 꾸르실 료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계획했으며, 1994년 안동에서 열린 제25차 총회에서는 7월 1일부터 우 리 나라가 울뜨레야 세계 협의회(OMCC) 의장국을 만 4년 간 맡게 되므로 그 인수팀을 구성하는 문제 등을 논의하였고 "꾸르실료 운동의 기본 정신"의 개정판을 발행하기로 결의하였다.
1995년 2월 대구에서 열린 제26차 총회에서는 꾸르실료 세계 협의회 의장국 인수 경과를 보고받고 한국협의회 회장이 당연히 의장이 되어야 하지만 부회장 중 봉두완 형제를 세계 협의회 의장 으로 임명하기로 하였다. 또한 1997년 세계 울뜨레야를 우리 나라에서 개최하는 문제를 논의하 였다. 이렇게 꾸르실료 한국 협의회는 꾸르실료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자칫 정체성과 순수성 및 통일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조율하며 필요한 결정들을 제때에 내려 교구간, 국 제간의 교류를 원활하게 하여 꾸르실료 운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꾸르실료 한국 협의회는 회의를 통해 꾸르실료 운동에 관한 참고 자료와 기초적인 책자들을 번 역하기로 결정하고 이에 따라 자료와 책자들을 발행해 왔다. 이에 따라 1974년에 스페인에서 출 간된 좥꾸르실료 운동의 기본 정신좦을 1988년 12월에 우리말로 펴냈다. 이 책은 1972년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열린 제3차 꾸르실료 세계대회에서 전세계 꾸르실료 운동의 정체성과 순수성 및 통일성을 유지하고 모든 국가의 지도자들이게 기본 정신을 설명해 주기 위해 발행하기로 결의하 고 1974년 출간했다. 이어 미국 울뜨레야 출판사가 1981년에 출판한 '지도자 메뉴얼'(Leader's Manual)도 번역하여 1990년에 좥꾸르실료 운동 지도자 교본좦이란 제목으로 펴냈다. 그리고 1994년에 열린 제25차 전국 총회에서 결의한 대로 1996년 2월에 좥꾸르실료 운동의 기본 사상집 을 펴냈다. 이 책은 1974년에 스페인에서 출간된 좥꾸르실료 운동의 기본 정신좦의 개정판으로 1988년 제4차 꾸르실료 세계대회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새로운 복음화'에 초첨을 맞추어 1990년 12월에 개정판을 출간했는데 한국 협의회에서는 1994년에 영어판 좥꾸르실료 운동의 기 본 사상좦을 입수하여 우리말로 번역한 후 1996년 2월에 좥꾸르실료 운동의 기본 사상좦이라고 제목을 바꿔 펴낸 바 있다. 이 책은 꾸르실료 도입 30년을 맞으며 꾸르실료 운동을 더 깊이 이 해하고 발전시키는 데 무엇보다도 유용한 자료가 되었다. 또 '꾸르실료 형제 자매들의 대화의 광장'이 되고 있는 전국 좥울뜨레야좦지도 계간으로 꾸준히 발행되어 오고 있다.
초기 10년이 꾸르실료를 전국에 전수하고 성장케 하도록 노력했던 기간이라면, 10년에서 20년 사이의 기간은 꾸르실료를 토착화하려는 노력을 경주한 기간이었으나, 한편 시련과 위축 그리고 꾸르실료 운동의 영성의 본질이 조금은 왜곡된, 즉 회심의 여정인 꾸르실료가 교육의 장으로 전 이된 기간이었다. 그리고 20년 이후 꾸르실료 운동은 양적 팽창을 거듭해 왔는데, 질적인 면에 서 영성적으로 발전된 꾸르실료가 되도록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매년 개최되고 있는 한국 협의 회 총회에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총회에서 선출된 역대 회장 및 임원은 다음 〈표 2〉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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