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시계 / 하정은
아버지가 흔들리는 내 등뼈 어디쯤
터널을 황급히 빠져 나온다
아린 사과들이 몰래 과원의 바닥으로
붉은 얼룩들을 물어 나르며
더러는 가장 여린 가지에 매달려 웃고 있다
그해 여름 넝쿨 장미가 꽃잎을 다 떨구더니
깡마른 가시를 치켜들고
교회 첨탑을 기어올랐다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아버지의 비망록 속
촘촘히 기록된 절망들은 세상의 이마에
검은 반점을 그리며 터벅터벅 걷고 있다
일당 몇 푼에 혼신을 다한 육신
고통의 부위마다 주름을 잡으며 울어댄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 뉘인 굽은 허리를
은빛 피라미 떼 같은 햇살이 휘돌아 나온다
아직도 세상은 열기로 가득하고
어긋난 길이 저만치 등을 보인다
젊은 날 그 짧은 초췌한 영광이
칠흙의 생애를 달려와 잠 못드는 자정
아버지와 아버지가 포개지고
토막 난 아버지의 꿈이
쉴새없이 째각거리며 방안을 빙빙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