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시계 / 하정은

2012. 1. 19. 오후 9: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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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시계 / 하정은

아버지가 흔들리는 내 등뼈 어디쯤 터널을 황급히 빠져 나온다 아린 사과들이 몰래 과원의 바닥으로 붉은 얼룩들을 물어 나르며 더러는 가장 여린 가지에 매달려 웃고 있다 그해 여름 넝쿨 장미가 꽃잎을 다 떨구더니 깡마른 가시를 치켜들고 교회 첨탑을 기어올랐다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아버지의 비망록 속 촘촘히 기록된 절망들은 세상의 이마에 검은 반점을 그리며 터벅터벅 걷고 있다 일당 몇 푼에 혼신을 다한 육신 고통의 부위마다 주름을 잡으며 울어댄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 뉘인 굽은 허리를 은빛 피라미 떼 같은 햇살이 휘돌아 나온다 아직도 세상은 열기로 가득하고 어긋난 길이 저만치 등을 보인다 젊은 날 그 짧은 초췌한 영광이 칠흙의 생애를 달려와 잠 못드는 자정 아버지와 아버지가 포개지고 토막 난 아버지의 꿈이 쉴새없이 째각거리며 방안을 빙빙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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