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루카 19장 1-10절

2011. 11. 15. 오전 7: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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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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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마카베오 하 6,18-31

그 무렵 18 매우 뛰어난 율법 학자들 가운데 엘아자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이도 많고 풍채도 훌륭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사람들이 강제로 입을 벌리고 돼지고기를 먹이려 하였다. 19 그러나 그는 더럽혀진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 자진해서 형틀로 나아가며 20 돼지고기를 뱉어 버렸다.
이것이 바로 목숨이 아까워도 법에 어긋나는 음식은 맛보는 일조차 거부하는 용기를 지닌 모든 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21 법에 어긋나는 이교 제사의 책임자들이 전부터 엘아자르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따로 데리고 가, 그가 먹어도 괜찮은 고기를 직접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임금의 명령대로 이교 제사 음식을 먹는 체하라고 권하였다. 22 그렇게 하여 엘아자르가 죽음을 면하고, 그들과 맺어 온 오랜 우정을 생각하여 관대한 처분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23 그러나 그는 자기의 생애, 많은 나이에서 오는 위엄, 영예롭게 얻은 백발, 어릴 때부터 보여 온 훌륭한 처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법에 합당하게 고결한 결정을 내린 다음, 자기를 바로 저승으로 보내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24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아흔 살이나 된 엘아자르가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25 또한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려고 내가 취한 가장된 행동을 보고 그들은 나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 이 늙은이에게는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
26 그리고 내가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27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내 자신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28 또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바로 형틀로 갔다. 29 조금 전까지도 그에게 호의를 베풀던 자들은 그가 한 말을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고 악의를 품었다.
30 그는 매를 맞아 죽어 가면서도 신음 중에 큰 소리로 말하였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31 이렇게 그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


복음 루카 19,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희망의 복음>

     예수님 시대 당시 공공연한 대 죄인이자 죄인들의 우두머리였던 자캐오를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개인적으로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나무 위로 올라가 몸을 숨기고 있던 자캐오 앞에 예수님께서 멈춰 서셨습니다. 자캐오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너무나 당혹스러웠던 자캐오는 자꾸 나무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예수님의 시선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오던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무 위에 있는 자캐오에게 향했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자캐오의 내면은 수많은 생각이 오갔을 것입니다. 이 양반이 왜 하필 내 앞에 서는 거지? 오늘 이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창피당하는 것 아닐까?  

    당시 제가 자캐오 앞에 섰더라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등쳐먹던 왕 거머리 같던 사람, 얼마나 흉악하고 지독했던지 ‘명성’이 자자했던 갈 데 까지 간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를 보고 ‘한 성격’ 하는 제가 그냥 지나칠 리 만무합니다. “어이, 나무 뒤에 있는 너! 그렇게 거기 숨으면 내가 모를 줄 알고! 빨리 안 기어 내려와? 너 도대체 언제까지 인생 그렇게 살거야? 언제까지 그렇게 삥 뜯어먹으며 살건데?”

     예수님께서 저처럼 이런 식으로 나갔더라면 자캐오의 회개는 영영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한번 따라가보십시오. 정말 놀랍습니다. 절대로 화를 내지 않습니다. 날카로운 지적도 하지 않으십니다.

     마치 다정다감한 아버지가 아들을 부르듯이, 절친한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르듯이 부드럽게 자캐오의 이름을 부릅니다. “어이, 자캐오!” 아니면 그가 듣기 싫어하는 별명, “어이, 숏다리!”라고도 부르지 않으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자신의 걱정과 두려움과, 오랜 냉담함을 일거에 깨트리는 예수님의 부드러운 음성에 순식간에 마음이 눈녹 듯이 녹아내렸습니다. 하느님의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한 인간의 죄와 오랜 사슬과 갖은 억압과 완고함을 산산조각내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뿐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상담심리의 대가셨던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꿰뚫고 계셨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한 사람, 다정한 친구 한명이 필요했습니다. 별명이 아니라, 비아냥거림이 아니라, 욕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요? “자캐오야, 그간 욕이란 욕은 다 먹어가며 살아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느냐? 자캐오야, 그간 이 세상의 왕따로 살아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느냐? 이제 더 이상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주겠다.”

     오늘 복음은 정녕 희망의 복음입니다. 자캐오 못지않게 숱한 죄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희망과 새로운 기대감을 안겨주는 기쁨의 복음입니다. 그 옛날 자캐오를 부르듯이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부족하고 부족한 우리임에도 또 다시 부르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응답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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